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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춘식 Jul 10. 2021

‘죽을 맛’은 죽음의 맛일까

당신에게 들려드릴 '오늘의 맛' #3

“오늘 죽을 맛이네요”     


박카스 같은 자양강장제를 아무리 들이켜도 힘이 나지 않는 날이 있다. 이럴 때면 밥맛도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면 빨리 업무시간이 끝나길 바라면서 시계만 바라보고 있고 학생들은 교실이나 강의실 창문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죽을 맛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 누구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지옥 같겠지만 유독 힘든 시점이 있듯이 내게는 지금이 그렇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죽을 맛은 죽음의 맛일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힘들 때 공상만큼 좋은 시간 때우기도 없다. 우선 죽음을 부르는 맛, 죽음의 맛이 무엇일지 떠올려봤다. 첩첩산중에서 3일간 굶었다가 발견한 버섯을 날 걸로 먹었는데 그게 독버섯일 때 느낌일까. 아니면 희한하게 생긴 동그란 생선을 먹었는데 옆에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볼 때 든 아찔한 생각일까. 뭐가 됐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실이 눈앞에 다가온 기분인 건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말 죽음을 앞두고 맛을 느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버섯은 맛보다 향과 식감으로 먹는 음식 재료고 복어는 회로 먹건 탕으로 먹건 흰 살에서 무언가 특별한 맛이 느껴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면 고소한 맛 정도랄까. 독이 퍼져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는데, 맛을 느낄 리가 없다. 고통이 온몸을 지배할 뿐 감각은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그렇다면 죽을 맛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어떤 상태인 걸까. 흠... 앞선 말을 다시 요약하자면 살만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힘들지만 죽지 않은 상태, 견딜 수 없을 거 같으면서도 버티고 있는 상황. 마치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은 마음이랄까.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도 고통은 너무나도 선명했던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몸에 상처가 나지 않아도 너무 심하게 아프면 뼈가 아리듯이 영혼이 고통받으면 마음이 아프다. 잘 뛰던 심장도 멈출 것만 같고 이대로 모든 게 끝난다는 문장만 머리를 맴돌 뿐이다. 그리고 그 문장마저 어느새 뇌리에서 지워진다. 이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음식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았고 맛도 느끼지 못했다.      


죽을 맛이 난다는 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또 다른 방증이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죽어야지.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게 죽겠다는 말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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