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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춘식 Jul 10. 2021

생각 없이 지나가는 ‘먹을만한 맛’의 유혹

당신에게 들려드릴 '오늘의 맛' #2

“먹을만해요?”    

 

가끔 식사를 대접하는 이와 밥을 먹을 때 듣는 말이다. ‘먹을만하다’ 부정과 긍정 어디쯤 있을 거 같은 말인 동시에 상대를 대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내리까는 느낌도 드는 단어다. 대부분 직장인이나 학생들... 생각해보니 현대인으로 범위를 넓혀도 될 듯하다. 우리들은 어느 순간 목구멍으로 넘어갈만하면 그것을 식사 메뉴로 삼고 먹는다. 6.25 직후 먹고살게 없어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달여 먹는 시절이 아니라서 이젠 돈만 있으면 뭐든 먹을 수 있다.      


사회적인 개념은 그렇다. 돈이 있으면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우리에게 먹는 행위는 아주 요식적인,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행동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그건 돈이 많건 적건 다르지 않다. 종로 3가에 있는 Y영어학원 옆에는 순댓국과 굴보쌈을 파는 골목이 있다. 분명 간판은 굴보쌈이 더 많은데 북적이는 곳은 골목 앞쪽에 있는 순댓국 가게다. 주변을 지나다 보면 누가 봐도 알 정도로 고기 잡내가 진하게 난다. 나이 든 어르신부터 토익 공부를 하는 수험생, 근처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까지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저 다음 일과를 위해 주린 배를 채우거나 근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먹을 수 있는 안주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순댓국을 시킨다.     


강남 한복판 압구정동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G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들른다. 그곳에는 캐주얼 다이닝이나 비스트로보다는 조금 고급스럽고 레스토랑이라고 하기엔 조금 가벼운 그런 느낌의 음식점이 있다. 거기에 가면 순댓국에 돈을 좀 더 보탠, 아니다... 순댓국 두세 그릇 정도 되는 샐러드나 일품 음식, 빵 종류를 먹을 수 있다. 먹긴 했는데 그 음식의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살을 빼야 해서 다이어트식을 먹어야 한다느니, 치팅데이인데도 먹을 게 없다고 하기도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는다.      


돈이 많건 적건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하루하루 에너지를 내기 위해 먹는 건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먹을만하면’ 삼킨다. 어쩌면 사람들의 삶에 있어 가장 위험한 유혹도 이와 같지 않을까.  

    

버틸만하니까. 먹을만하니까. 지낼만하니까. 나쁘지 않으니까.    

  

그래도 머무르려고 한다.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무조건 옳다는 뜻은 아니지만 애매하거나 분명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옛 성현들은 ‘고진감래’라고 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은 삼키면서 달다고 느낀 것이나 너무 써서 뱉어버린 것이 아니다. 두 가지는 분명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 위험이 될지 인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먹을만한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특별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몸에서 독이 축적될 때처럼 의도치 않았던 것이 차곡차곡 쌓이면 가끔 돌이킬 수 없을 때가 생긴다. 가만히 있으면 쌀 가마니로 보는 사람이 생기듯 그대로 두면 그대로 가버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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