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우리 가족은 전라도 투어를 했다.
군산-전주-담양-여수-순천-남원
비행기를 타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국내로 가서 아쉽다고 투덜거렸지만, 막상 군산에 도착하면서부터 너무 좋았다.
남편은 '남원'이라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어쨌든 남원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면 '광한루'가 나온다. 다행히 우리가 묵는 호텔 옆에 있어 우리는 그곳을 걸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폐장시간이라 사람도 없고, 나무 사이를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남편과 아이는 물고기 밥을 사서 연못에 뿌려주고, 큰 잉어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난 깊어 보이는 물 옆에는 잘 못 간다. 옆에 안전벽이 쳐져 있지 않는 다리를 건널 때면 속이 울렁거린다.
나의 이런 증상은 아이가 물에 빠져 정신을 잃고 엎드린 자세로 물에 떠다니는 걸 발견한 이후부터다. 30초만 늦게 발견했어도 아이는 위험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물 옆을 걸으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그런 어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조심성 없이 그 주변을 신나게 뛰어다닌다.
아이는 분명 내가 얼마만큼의 괴성을 지를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게 확실하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야~~~~~~~"하고 목이 찢어질만큼 외칠 때까지 천방지축 날뛰어 다니는 걸 보면...
어쨌든 광한루가 너무 좋아서, 우리는 내일 아침을 먹고 이곳에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다시 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 엄청난 일을 겪어야 했다.
물 옆을 기피하는 나를 빼고 남편과 딸아이만 연못 앞에서 놀고, 난 그늘을 찾아 흥얼거리며 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뭐가 후다닥 날아오더니 내 모자를 잡아 뜯으며, 내 머리를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받은 나는 너무 놀라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나를 향해 다시 무언가 내 머리 위로 날아왔다.
그때 깨달았다. '새구나'
모자가 벗겨진 내 머리 위로 다시 날아온 새는 날카로운 발로 내 머리를 잡았고, 나를 또 쪼았다.(사실 쪼는 건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압이 강하게 느껴졌다.)
난 이제 정신을 차리고 이곳을 피해야 한다고 판단해 놀란 가슴을 쥐어 잡고 일어나 자리를 이동하려 했다.
몇 걸음 이동하니 또 새가 내 머리로 와서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빠르게 달리며 큰소리를 내질렀다.
"여보~~~~~~~~~~~"
남편에게 달려간 나는 그냥 울었다.
너무 무서웠다. 왜 나한테 그것도 세 번이나....
새도 엄청 컸던 기억이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터라 정신이 반 나간 나의 모습을 본 광한루의 관리자는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저기요... 새가 있잖아요. 저를 막 공격했어요. 제 모자를 잡아당기고 제 머리를 쪼고 그랬어요.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요" 어린애가 고자질하듯 난 관리자에게 이야기했다.
그때 관리자는 차분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 아마 어미 새가 그랬을 거예요. 아기 새가 무슨 이유인지 죽었어요.
그래서 바닥에 죽은 아기 새들이 있거든요.
근데 그 주변을 걸어가면 자기 새를 공격한 것으로 착각하고 어미 새가 그렇게 공격을 하더라고요. 저희도 그래서 못 치우고 있어요.
어미 새가 불쌍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놀란 가슴이 가라앉은 것이 아니었다.
남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의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내 머리 위로 비둘기나 무슨 새가 날아가기라도 하면 난 바닥에 주저앉아버리고, 숨을 죽였다.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여름, 가을, 겨울이 되었다.
계절이 바뀔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새에 대한 공포증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런 내가 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계기가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알게 된 코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코치님과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내 앞에 새가 있었다.
"으.... 전 새가 싫어요."라며 세 차례나 새로부터 공격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코치님은 그런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새와 대화를 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이다.
또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긍정적 의도'에 관한 이야기가 내 마음에 남아있다.
모든 행동에는 '긍정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해주신 코치님...
가난했던 유년시절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했으나 자신에게 돌아온 건 말할 수 없는 꾸중이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상처를 입은 마음...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하지만 공부를 하며 인간의 행동에는(그 행동이 아무리 잘못된 행동이라 여겨지더라도) 보이지 않는 무의식적인 '긍정적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공부는 자신의 삶에 적용할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을 코치님을 보며 깨달았다.
긍정적 의도에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끄집어내, 아버지의 긍정적 의도를 찾고자 했던 코치님.
저희 아버지는요. 어려운 환경에서 자식들을 기르고, 가정을 세워가는 게 가장 먼저였던 거죠. 빨리 한 푼이라도 모아 집을 장만하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정말 악착같이 일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뭘 배우고 싶다고 하니 답답하셨겠죠. 빨리 집을 사서 가족을 지키려고 했던 아버지 입장에서는요.
'자녀들을 먹이고, 가정을 세워가야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하는 자녀에게 '얘야~ 너의 마음도 알지만, 지금은 그것이 우선이 아니란다."라고 말하지 못했던, 표현이 서툴렀던 아버지였음을...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던 나는 돌아가는 길에 새에게서 '긍정적 의도'를 찾아보고자 했다.
광한루의 관리자 말에 내 마음까지 더해서 고민해보았다.
'내가 미워서가 아닌 혹시라도 새끼가 살아있진 않을까 싶어 더 이상 내 새끼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의도로 가까이 오는 나를 적으로 알고 공격했던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나는 코치님이 알려주신 대로 '새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새야... 새끼들이 너의 품을 떠나서 많이 슬프지? 나도 너처럼 힘든 일을 겪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지도 몰라. 너는 나를 쫓기 위해 내 머리를 쪼았지만, 난 더했을 거야... 많이 힘들었지? 아기 새들이 바닥에 버려진 모습을 보았을 때 마음이 무너졌지? 울지 마...
난 마음이 너무 쓰라렸다. 나 역시 물에 둥둥 떠있는 아이를 발견하자마자 너무 놀라 바닥에 바로 주저앉아 버렸던 것처럼 어미 새도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
그 후로도 새가 좋아졌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난 여전히 별로다.
근데 그게 엄청날 정도로 몸서리치는 수준은 아닌 거 같다. 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긍정적 의도'를 찾고 대화도 해서인지 길을 지날 때 새가 있으면 대화도 시도한다.
"얘들아~ 난 너희들을 싫어해. 내 앞으로 오지 말렴"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아서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상처'라는 말을 참 많이 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남편의 작은 행동에도 "나 진짜 상처 받았어."라고 삐진 마음을 표현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표현이라도 하면 큰 상처는 아닌 것 같다.(지극히도 내 생각)
정말 마음속 깊은 상처는 꺼내기도 싫어서, 꼭꼭 숨겨놓을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한 번쯤은 그 상처를 건넨 이에 대한 '긍정적 의도'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상대를 용서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진 않아도, 내 상처를 의식하고 '밴드'하나 붙여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