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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r 03. 2020

여보! 내 브래지어 어딨지?

 어린 시절 엄마는 잠에서 깨거나, 외출을 위해 옷을 차려입기 전 늘상하는 말이 있었다.

여보! 내 브래지어 어딨지?

그럴 때면 아빠는 분주하게 브래지어를 찾으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너네 엄마는 가슴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거면 진즉 없어졌다.
너희들은 젖도 못 먹었을 거다!

그 말은 하던 아빠는 엄마의 브래지어를 그 누구보다 빨리 찾아 엄마에게 건네주곤 했다


엄마의 스토리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금뭉치를 잘 싸놓은 뒤 쓰레기랑 같이 버리기도 했고, 가스불을 켜고 외출을 해 온 집안을 연기투성이와 탄 냄새로 가득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네 현관에는 아빠가 손수 한글자 한글자 정성스럽게 쓴  "가스 확인"이란  종이가 오랜 시간 붙어 있었다.

다행히 무조건 30분 뒤에는 알아서 가스가 잠기는 뭔가를 설치하고 나서 그 종이는 사라졌다.


엄마는 볼 때마다 "그게 어디갔지?"라며 무언가를 쉬지 않고 찾기에 우리 세 딸은 엄마에게 '찾는 인생'이라고 놀려대곤 했다.

근데 억울하게도 나는 엄마를 그렇게 놀리지도 않았는데, 왜 그런 나쁜 유전자가 딸 셋 중에 나한테 몰빵된 것일까?

나는 지하철에서 자다가 가방을 두고 내리기는 일쑤였고, 학교 갈 때 책가방도 안 메고 실내화 가방만 들고 갈 때도 많았다. 엄마보다 더 진화했던 나는 깜빡하고 브래지어를 안 입고 나갔다가 놀란 나머지 밴드를 사서 급한 불을 끄곤 했다.

그거야 어렸을 때니 봐줄 만하지만, 강의 현장에 갔을 때 노트북 연결선이 없다거나, 차 키를 못 찾거나...

뭐 글로 다 쓸 수 없을 정도다.


지금의 남편은 연애시절 덤벙대는 나를 참 좋아했다. 챙겨줄 수 있는 동생이 생긴 거 같다며 행복해했다.

난 내 뒤에서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남자친구가 좋았지만, 남편이 되는 동시에 그는 변해버렸다.

눈을 치켜뜨고는                                               

"또? 어디에 놨어? 난 몰라! 니가 찾아!"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마도 남편이 이렇게 변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23년 한결같은 내 모습에 지긋지긋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유전자를 몽땅 물려받은 딸까지 챙겨야 하니 버거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어쩜 너네 둘은 그렇게 하는 짓이 똑같냐??!!!" 라는 말을 입에서 오물거린다.


딸아... 왜 하필 엄마를 닮았어...

이 아이는 나를 쏙 빼닮아 잃어버리는 것은 기본이요, 가는 곳마다 뭘 그렇게 부순다.

어릴 땐 친구들이랑 놀다 교회 벽을 부쉈고, 학교에서도 기물 파손으로 돈을 많이 물어줘야 했다.

집에 있는 책상 유리, 식탁 유리를 깨고...

늘 토끼같이 귀여운 얼굴로 "어머!! 이게 왜 깨지지?"(뭘 왜 깨져? 아 진짜....)    

                                          

3대에 걸쳐서 우리의 나쁜 유전자는 더욱 진화하고 발전했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변해 있었다.


그토록 본인들도 실수투성이에 허구한 날 잃어버리면서, 자신을 쏙 빼닮은 자녀들이 잃어버리거나 실수할 때면 그렇게 호통을 치곤했다.

엄마 역시 덤벙대는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넌 애가 어쩜 그러니?"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이 혼나는 스스로가 가여워 다음에 태어날 나의 자식에게는 친절한 엄마가 되겠노라고 결심했지만, 나 역시 딸에게 "난 그 정도는 아니었다. 넌 진짜 징글징글하다."라는 말을 입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핸드폰으로 웃긴 이야기가 모여져 있는 뿜을 보고 있었다.

그중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을 발견했다.                                              


출처: 트위터

난 이 그림을 보고 매우 동의했다.


난 아이의 잦은 실수에 늘 격노한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아이는 물컵을 바닥에 쏟았다. 내 눈을 피해 수건으로 닦으려고 하는 걸 못 본 체 하기는커녕 "야! 거기에 컵을 왜 뒀어??!!!"

내가 아이의 실수에 화를 낼 때면 저 멀리서 공감 못하는 1인- 남편은 자꾸 웃음을 참고 있다.

분명 비웃음이다.

참다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 남편을 쫓아가 "오빠 웃었지? 왜 웃는데?? 왜 웃냐고?"

차라리 안 웃었다고 말하면 좋을 것을 남편은    


솔직히 말해도 돼? 난 네가 다민이 혼내는 게 너무 웃겨서...
딱 너야~ 너랑 하는 짓이 똑같아.  뭘 그렇게 화내냐?
내가 너 중 3 때부터 봤잖아. 진짜 너야. 100프로 너야."

                                                                                                                        

나도 여전히 밥을 먹다 물을 잘 쏟고, 잘 엎지른다.

다만 나는 그때마다 "아이고~~"하며 귀여운 목소리로 청소를 시작한다.

반면 아이는 물을 쏟는 동시에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나도 광고에 나오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광고 설명)

가족이 식당에 갔는데, 아이는 케첩을 음식에 뿌리려다 엄마의 밝은 옷에 새빨간 케첩을 뿌려버렸다.

(아이도 얼음, 엄마도 얼음)

그때 엄마는 "으~~~"하며 총에 맞은 연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아마도 세제 광고였나?)

누가 광고의 모델이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당시 광고를 보며 나 또한 그런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차피 케첩은 뿌려졌고, 지나버린 일이 아닌가!

화를 낸들 열을 낸들 케첩은 없어지지도 않을 것인데... 라고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알다시피 광고에 나오는 엄마가 되지 못했고, 감정 그대로 화부터 내는 엄마가 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댓가가 있듯이, 실수에 쉽게 화를 냈던 댓가로 때때로 아이의 진심과 진실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상 유리를 깼던 아이는 "이게 왜 이러지?"라며 한사코 자신이 한 일이 아님을 강조하였고,  일주일을 숨기다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줄거에요?"라는 질문으로 이실직고를 했다.


혼나는 게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은 아이가 잘못한 일이지만, 아이가 숨기고, 일주일간 끙끙 앓게 한 것에는 분명한 나의 책임도 있었다.


한 명 한 명 각자가 성장하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른인 부모가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를 보듬어주면 어떨까?

'내가 나한테만 관대했던 것은 아닐까?'

'이 실수를 내가 했다면?' 과 같은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아이의 실수 앞에서 조금 더 차분하게 "다음에는 조심해 줬으면 좋겠어."라는 말까지만 해야겠다.

아이가 실수한 다음 첫 행동이 '엄마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는 그 날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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