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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l 20. 2021

'사랑해'라는 말로 담을 수 없는 마음

"음.... 자궁내막이... 내일 당장 수술하고 조직 검사해봅시다."


'고작 마흔인데 뭐만 했다 하면 조직검사로구나.'

한숨을 짙게 뱉어냈던 나는 다음 날 바로 수술대 위에 올랐다.

초조하고 두려운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하얀 수면마취제가 내 혈관에 들어왔고 나는 "팔이 아파요."라는 한마디만 내지른 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일어나라며 나를 흔들어 깨웠고, 나는 간곡한 호소에 못 이겨 두 분의 부축을 받아 회복실로 옮겨졌다.


비몽사몽 한 채로 누워있던 중 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응애응애 응애응애 응애~~~~~~~~~~~"

평소 아기의 울음소리와는 다른 숨통이 탁!하고 트인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

아마도 아기는 이제 막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게다가 이 곳은 산부인과가 아닌가!).

내 예상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듯 흥분에 가득 찬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가야! 아빠야~아빠! 우리 아가~"

내 귀에 들려오는 아빠라는 남자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자신이 아빠임을 수차례 이야기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가 너무 사랑해"라는 고백으로 아이와 첫인사를 나눴다.

내가 애를 낳은 것도 아닌데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침대에 누워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시간이 떠올랐다.               

첫 초음파 사진

내 뱃속에 자리 잡은 작은 아기의 집.

'엄마 내가 여기 있어요!'라며 큰소리로 들려주던 아기의 심장소리.

어느덧 뱃속에서 꼬물거리며 엄마 배를 밀던 아기.

한참이 지나 아기는 엄마 배가 좁은지 넓은 세상으로 나오겠다고 신호를 보냈다.


의사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힘 빼면 아이 숨 못 쉬어요. 힘!!!!!!"

온몸이 부서지듯 아프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힘들까,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될까 눈물로 몸부림치며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때... 나 역시 숨통이 트이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은 우리 아기를 만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천천히 신생아실로 걸어갈 때의 마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유리창 너머로 간호사 선생님의 손에 안겨져 있는 작고 여린 아기.'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기.'

'잠에서 깨어 불편한 건지 얼굴을 찡그리는 아기.'

깨질 듯이 연약한 아기를 그저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힘들게 한 거 같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말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기를 어떻게 키우는 건지, 어떻게 목욕시키는지, 심지어 언제 우유를 먹이는 건지 모르는 나였지만

아기를 보는 순간... 난 반드시 좋은 엄마가 되겠노라고 아기를 향해 눈물로 도장을 찍으며 약속했다.


아기는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엄마'가 되어가는 행복을 알려주었다.

-갑자기 옆으로 돌아누워서는 있는 힘을 끌어모아 자신의 몸을 뒤집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었다 내려놨다 반복하다가 기어가기도 하고,

-무언가를 잡고 일어났다가 갑자기 잡은 것을 과감하게 놓고 흔들흔들 서 있기도 하고,

-서 있는 것도 초조해 아무 말없이 숨죽이고 바라보고 있는데... 한 발을 들어 다시 바닥에 발을 붙이기까지!


살아가면서 나에게 이렇게 많은 감격을 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물론 힘든 날도 있었겠지만, 되돌아보면 엄마인 나는 아이가 주었던 기쁨만 떠오른다.


손잡지 않고 혼자 걷겠다며 손을 뿌리치던 모습도.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길바닥에 드러눕던 모습도.

한 겨울에는 샌들을, 한 여름에는 오리털 패딩을 입겠다던 모습도.

심지어 사탕 달라고 떼쓰는 모습이 너무 미워서 남편 보여주려고 찍은 동영상을 이제 와서 보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한 번만이라도 그 어린 시절의 '우리 아기'를 다시 만나고 싶다.

고사리 같던 아이의 손을 잡아보고, 내 품 안에 쏙 들어왔던 '우리 아기'를 한 번만 안아본다면 나는 뭐라고 말할까?

나는 단번에 아이를 꼭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눈을 맞추며 "엄마가 이렇게 예쁜 우리 딸을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던 거 미안해. 더 많이 안아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우리 딸... 너무 사랑해"라며 아이를 바라보겠지...


과거에도, 현재도 내 나름 최선을 다하며 아이를 돌보고 키웠지만 나는 딸아이만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려서 모르고, 무지했던 매 순간의 나를 탓하며...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소중해서 아이를 향한 감정은 단순한 '사랑'이라는 감정에 담아낼 수가 없는 것인가?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소중해서 미안한 마음만 남는 것일까?


드라마를 보면 병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마는 울고 있는 자녀의 손을 잡은 채 속삭인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먼저 가서 미안해..."

삶의 끝자락에도 그저 자녀를 향한 미안한 마음뿐인 엄마...


책 속에 한 문장이 떠오른다.

'엄마는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죽음을 미안해했다.'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엄마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이 마음...

딸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왜 그토록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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