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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n 02. 2021

제발 '왜'냐고 묻지 말라고!!!

우리 부부는 급전이 필요했기에 공동명의로 된 집을 담보로 대출을 계획했다.

대출 담당자와의 미팅을 앞두고 남편은 세상 스윗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대출 업무 끝나고 나면 오빠가 점심 사주려고 일부러 11시에 만나자고 했어. 회사로 시간 맞춰서 와."


오랜만에 남편과 하는 데이트에 설렘을 느낀 나는 한참 거울을 보며 화장품을 만지작댄다.

화장할 때가 제일 못생겼다는 남편의 취향을 존중해 '꾸안꾸' 스타일을 연출한다.

준비 완료!

돈 빌리러 가는 순간임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자동차에 올라타자마자 상큼 발랄한 노래를 틀고는 한참을 흥얼거리며 도로를 누볐다. 그런데 너무 누볐다. 남편 회사 방향과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은지도 모른 채 한참을 가버렸으니...

화들짝 놀란 나는 내비게이션을 켰고, 남편 회사를 입력했으나... 이미 망해버린 터였다.

도착 예상시간은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을 7분이나 넘겨버렸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남편에게 뭐라고 말할까? 게다가 다른 사람까지 만나는 자리인데 이를 어쩌나...'라는 불편한 마음과 초조한 마음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남편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빠... 어쩌다 생각 없이 다른 길을 타버렸어. 미안해. 최대한 빨리 갈게. 담당자한테 양해 좀 구해줘... 미안..."이라는 말로 상황을 전달했지만, 수화기 너머로는 남편의 깊고도 깊은 한숨소리만 전해졌다.


'나는 도대체 왜왜왜!!! 목적지를 어버리는 것일까?'

이런 일은 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한참 서울로 강의를 가다가 지방 일정이 생기면 내비게이션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서울방향의 차선을 타곤 했다. 오늘 역시 '남편의 회사'라는 목적지를 가고자 했으나 아무 생각 없이 최근 자주 오고 다니던 고속도로를 향해 가버린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똑같은 실수를 처음 하듯 하는 사람'

'하나를 기억하면, 하나를 잊어버리는 사람'

'조심성 제로, 꼼꼼함 제로, 덜렁 거림 100%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일하면서, 살림하면서, 애 키우면서 살아가는 내가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기특함은 잠깐잠깐 스치는 감정일 뿐, 40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참 많은 질문을 하곤 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나는 왜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할까?'

이런 질문들은 '내가 너무나도 싫고 지긋지긋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었고, 스스로를 향해 경멸의 눈빛을 던지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랬던 내가! 이제는 달라졌다.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어디서 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책의 저자를 통해 말이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왜?'라고 묻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피해의식에 사로잡힙니다. 결국 부정적인 감정들을 불러일으켜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WHAT'에 해당하는 질문으로 바꿔보세요! 그렇다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 오래 살려면 "왜"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야지!

지금 나는 약속 시간에 늦었고, 내 감정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마음에 미안하고 초조해. 내가 할 일 도착해서 남편과 담당자에게 한 번 더 사과를 하고... 이후로 차에 탈 때면 꼭 목적지를 기억하도록 노력해야겠어!!!"

다행히 그 이후로 나는 다른 목적지로 가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도 안돼 "나는 도대체 왜?!!!!"로 시작되는 질문이 입에서 세어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건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먹성 좋은 가족들을 위해 식량 보충을 하고자 집앞 쇼핑몰에 입성한 우리 부부.  

내 귀에 떡집 사장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만원에 세 팩 드려요~~ 떡 세일해요~ 만원에 세 팩"


나는 남편과 떡집을 향해 걸어가며 떡집 사장님 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오빠~ 어제는 만원에 네 팩 아니었어?"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때 떡 세 팩을 들고 있던 어떤 손님은 떡을 내려놓더니 떡집을 떠나갔고, 사장님은 마스크 위로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며 "아이고~ 살짝 말하면 내가 네 팩 주지~~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떡해!!!"라고 내게 아쉬움을 전했다.

'앗.... 정말이지 내 목소리 데시벨도 측정할 여유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툭 튀어나와버린 말들....'


"죄송해요. 제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라... 난감하게 해서 죄송해요..."라는 말만 여러 차례 하고는 부끄러워 떡집을 떠나버렸다.


'아 이놈의 주둥이... 왜 갑자기 나불거리는데!!!!! 대체 왜 생각 없이 말하냐고!!!'라며 한참을 우울했던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겠고... 지금 내 감정은 미안한 마음과 당황스러운 마음이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그래 가서 다시 사과하고 떡이나 많이 사가자!!!"

나는 용기를 내 다시 떡집으로 향했고...

평소의 두배 양의 떡을 사며 거듭 사과를 했다.

사장님은 괜찮다며 내게 떡 한팩을 서비스로 주셨고, 다음날 "만원에 세팩"이라는 글귀를 크게 써 붙이셨다.


나는 이후로도 분명 실수투성이겠지만...

"왜"에 갇히지 않으려 한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성장해보려 한다.


100세 넘은 김형석 교수님도... 60은 넘어야 본인 인생에 후회가 적어졌다고 했으니...

20년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나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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