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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pr 18. 2021

내 머리 내놔!!!!!!!!!

난 분명히, 똑똑히, 명확하게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사장님, 앞머리는 눈썹 위로 올라가지 않게 잘라주세요!"

가위질이 예사롭지 않다. 얄쌍한 가위는 인정사정없이 내 머리카락을 잘라대고 있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혹시 눈썹 위로 올라가게 잘라달라고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한 번 더 말해야 하나?'

용기를 내서 "사장님, 앞머리는 눈썹 위로 올라가지 않는 길이로 잘라주시겠어요?"라고 말했고, 커트에 초집중한 사장님은 "네~ 이 정도 길이는 돼야 해요."라는 대답을 전했다.


내 말은 들은 거 같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순간, 가위는 한 번 더 내 앞머리에 머무르더니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앞머리를 잘라댔다.

불안한 내 심장은 "사장님, 눈썹 위로 올라가는 길이 같아요."라는 말을 토해냈지만, 무언가 결의에 차 보였던 사장님은 "앞머리 길면 눈 찔러서 안돼! 그리고 앞머리 금방금방 자라~ 이 정도는 잘라줘야 돼!"라는 말을 전해주셨다.


친절하게 계산을 마치고 나온 나는 남편을 향해 울부짖었다.

"진짜 저 아줌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눈썹 위로 자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눈 찔러서 안된다니! 진짜 어이가 없네. 내가 미쳤지. 괜히 가던 곳 안 가고... 집 앞에서 잘랐다가 이런 낭패를 보다니... 나 이제 이 머리로 어떻게 다녀~~ 오빠 나 어떡해...!!!!"

남편은 나만 보면 사진을 찍어댔다ㅜㅜ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반려견 사랑이와 산책을 했다.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기에 미용실 사장님을 욕하며 걷던 중... '그 사장님 나랑 좀 비슷한 구석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이 앞머리가 눈썹 위로 올라가지 않게 해달라고 말을 하건 말건, 오직 고객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고객의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는 마음. 그리고 내 머리를 보고는 '어려 보이네'라며 흡족해하던 모습.


'머리카락에 찔릴 내 눈을 보호하고 싶었던 것일까?'

'금방 자라는 앞머리로 내 주머니 지갑 사정을 배려했던 것일까?'



아이는 간절한 표정으로 무언가 요청을 한다.

나는 늘 아이를 이해할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의 생각과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결국 내 생각대로, 내 고집대로 상황이 연출될 때면 "거봐~ 엄마가 하란대로 하니까 훨씬 낫지?"라는 말로 흡족해하곤 했다.


내 앞머리는 당분간 내 눈을 찌르지 않을 것이며, 한참을 길러야 하기에 돈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다.


내 아이도 그랬을까?

내 아이도 자신의 목소리를 짓밟히는 그때, 나처럼 힘들었을까?


머리가 잘려 슬펐지만,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기에 감사함으로 정신승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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