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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ug 06. 2021

이 구역의 미친X

"아... 이 까칠하고 더러운 성격, 도대체 왜 이렇게 예민한 건데!! 진짜 넌덜머리 난다."

나는 늘 나를 향해 이렇게 해석하곤 했다.


지난주 6일 나는 연속으로 매일 세 시간씩 강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였다.

강의하는 내내 두 개의 모니터에 보이는 많은 학습자들의 표정을 보며 지금 내 설명이 이해가 되는지, 피곤해 하진 않은지, 흥미를 느끼는지 알기 위해 나의 눈동자는 쉼 없이 돌아갔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고 싶어 손톱만 한 웹카메라를 향해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며 작은 것 하나하나에 열을 올리는 내가 존재했다.

 

에너자이저 같던 나는 정확히 카메라가 꺼짐과 동시에 방전을 알렸고,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밥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먹는 거 다음으로 좋아하는 잠자기 시간에는 강의 중 만족스럽지 않던 부분이 생각나 새벽에 벌떡벌떡 깨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뿐인가?! 강의만 마치면 숨쉬기가 불편해 한 시간 가까이 밖을 걸어 다녀야 했다.


지속되는 강의에 아이에게 밥 차려줄 힘도 없던 나는 배달 어플에서 아이가 먹고 싶다는 돈가스를 주문했다.

돈가스를 앞에 두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엄마가 점심 못 차려주고 미안해. 힘이 없어. 엄마 까칠한 성격 알지? 강의가 연달아 있어서 좀 그러네... 성질머리 못된 엄마 만나서 고생한다!"

아이는 그토록 먹고 싶다던 돈가스 앞에서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이야기한다.

"엄마! 강의하느라 힘들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든 거야?"

"엄마가 예민하니까... 보통 하루 강의하고 쉬면 좀 괜찮은데.. 연속으로 하니까 성격 나쁜 거 나오는 거지 뭐... 엄만 왜 이런 걸까?"

"아니... 엄마~~~ 자꾸 예민하다고만 하지 말고... 엄마는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 건데?"


아이의 반복되는 질문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엇 때문에 지치는지 한참을 고민했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엄마가 예상하는 그림대로 되지 않을 때, 계획한 거랑 달라질 때... 그럴 때 너무 많이 힘들어. 계속 후회되고..."

아이는 차분하게 낮은 톤으로 나를 불렀다.

"엄마... 엄마가 정말 잘하고 싶었나 보다. 엄마는 강사라는 직업을 정말 사랑하는 거 같아.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그랬던 건 아닐까?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속상하지만 그래도 난 지금 엄마가 너무 멋있어! 엄마의 일을 사랑하고 더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잖아~!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예민하니까 지금까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거 같고~"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눈에선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있었다.

늘 스스로를 '예민이', '까칠이'로 부르며 비난하기 바빴던 나에게...

'아니라고! 일을 잘하고 싶어서,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일을 사랑해서'라고 알려주는 딸아이의 말에 너무 고마웠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온 나는 아이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왜 나는 단 한 번도 저런 생각을 못하고, 늘 나를 책망하며 '나는 OO한 사람이야'라며 정의 내리기 바빴을까? 왜 그렇게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천천히 글을 쓰다 보니 10여 년 전 딸아이와 함께 어린이 도서관에서 읽었던 그림책이 떠올랐다.

'내 말 좀 들어주세요' 글-윤영선, 그림-전금하

그림을 보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한 아이는 얌전히 앉아 있다.

그림책 아래에는 우리가 그 아이를 향해 부르던 단어가 적혀있었다.

"겁쟁이"

그러나 옆 페이지에서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무엇을 처음 해야 할 때는 겁이 나요. 그래서 친구가 하는 걸 보기만 하지요."


동화책은 우리가 쉽게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정의했던 단어들을 나열한다.

"외돌톨이"

"외톨이는 아니에요. 그냥 혼자 노는 걸 좋아해요."

"응석받이"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그냥 엄마 옆에 있는 게 편해요."

<'내 말 좀 들어주세요'의 일부>


동화책의 마지막은 자신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아이의 말로 끝마친다.

나 역시 나의 마음에 대해 알아가고 글로 표현하면서 편안해졌다.

나도 나를 향해 부르던 "예민이", "까칠이"에서 벗어나 다르게 말하려 한다.

"일 할 때만큼은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고도의 집중을 하게 돼요. 더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날카로워질 때도 있고, 먹지 못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일을 마치고 나면 금방 회복이 돼요."


이제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쉽게 정의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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