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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ug 31. 2021

왜 마스크를 안 쓰는데?!!!

 동네 정보를 얻고 싶어 네이버 지역 카페에 가입을 했다. 정보 얻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쓴 이야기를 읽고 댓글로 소통하며 가볍게 활동을 했다. 열혈 회원도 아니고, 우수회원도 아니고, 간신히 얻은 '정회원'정도로.

그렇게 오랜 시간 눈팅 위주의 활동을 하던 내가 '나도 여기에 글 한번 올려볼까?'라는 마음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던 나는 브런치에 써 놓은 글들을 하나씩 옮겨보았다. 그런데 브런치와는 다른 또 다른 느낌... 뭐랄까? 같은 지역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댓글이 동네 마실 나온 아주머니들과의 대화처럼 친근함이 있었다. 내 글에 적힌 댓글에 또 대댓글을 열심히 달고 있는 나를 향해 남편은 본래 캐릭터 깐쭉이 모드에 불이 켜졌다.

"브런치에서 반응 좋았던 글들만 올리는 거야? 그런 글 다 떨어지면 어떡할라고 그래? 요즘 쓰는 글들 다 그저 그렇잖아~크크크~~"

남편은 더 신이 났는지 "다 너 잘 쓰라고 하는 말이야. 요즘 영 심금을 울리는 글들이 없단 말이야. 마음을 울리는 그런 글을 써보란 말이야~~~"라며 내 어깨를 토닥인다.

그렇지 않아도 글 쓰는 재주가 없음에 한탄을 하는 나였기에 나는 바로 주먹을 들어 남편의 등짝을 한대 후려갈겼다. 그럼에도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쫑알거린다.

"근데 여보~ 지역 카페에 올리는 거잖아. 게다가 책 나눔까지 했으니 얼굴 다 팔렸어. 거기 회원들도 엄청 많고 활성화되어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저 사람이 카페 회원일 수도 있는 거야. 너 이제 착하게 살아야 돼. 진상짓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사람들한테 성질도 부리면 안돼!"

대체 내가 언제 그렇게 못되게 굴었다는 것인가!!!

내 마음은 짜증에서 억울함으로 바뀌며 "내가 뭘?? 내가 사람들한테 어쨌다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야?"라는 말을 토해냈고, 남편은  재빨리 바턴을 받았다.

"너 사람들한테 막 마스크 끼라고 하잖아. 너 필라테스 가서도 마스크 잘 쓰라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민망하겠어?"

'심금을 울리는 글이 없다'는 말보다 더 열이 올랐던 나는 콧김을 쒹쒹 내뿜으며 거친 숨으로 이야기했다.

"마스크 써야 하는 곳에서 마스크를 안 끼는 사람이 잘못한 거지. 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잘못이야? 이제 웃으면서 '써주시겠어요?'라고 말이 안 나와. 마스크를 왜 손에 들고 안 쓰는데! 왜 마스크를 턱에다 걸치고 운동하는 곳에 들어오는데?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이야! 다른 사람은 안 답답해? 다 덥고 숨쉬기 힘들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이라고! 산책할 때만 해도 반 이상은 마스크를 안 끼고 다녀~ 그렇게 마스크 쓰기 싫으면 나오질 말던가! 진짜 꼴도 보기 싫어! 난 상냥하게 말하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뭐 욕을 했어? 마스크 좀 써주세요! 이게 뭐 나쁜 말이야?"


"옳소! 암만! 여보 말이 다 옳지! 마스크 안 쓰는 사람들 우리 색시한테 다 혼 좀 나봐야돼! 그럼 그럼! 우리 색시는 하고 싶은 말 하고 살아~ 오빠처럼 참지 말고! 알았지?? 너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해~~!"

나의 꽤나 높은 흥분지수를 체감한 남편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듯했으나 끝까지 깐죽거림을 버리지 않았다.


남편의 억지스러운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나는 요즘 유난히 짜증도 많고, 쉽게 분노했다. 물론 복잡한 일들이 많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그냥 넘어갈 일에도 깐깐하게 굴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사는 게 힘들어서' 혹은 '코로나 탓'이라고 뭉그러뜨리기엔 내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태도 같았다.


나는 왜 그랬을까?

문득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남편의 누나가 떠올랐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늘 인내를 선택하고, 환불도 하기 어려워하는 여리디 여린 남편의 누님이자 내게는 그런 형님이었다.

'남한테 말할 바에야 그냥 내가 참는다'의 인생 모토를 가진 형님이 내가 본 이래 최대로 흥분하면서 화를 낸 이야기가 생각났다. 형님은 그 당시 분이 풀리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애들하고 마트를 갔는데 내가 다른 거 사는 동안 애들이 시식을 하고 있었나 봐. 살 거 사고 애들 옆에 가보니 많이 먹는다고 우리 애들한테 뭐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먹어되면 되냐부터 시작해서 다른 데로 가라고 애들한테 뭐라고 하는데 정말 화가 나는 거 있지! 나도 못 참고 우리 애들이 거지냐고 가서 나도 큰소리쳤어. 애들이 맛있게 먹으면 엄마가 이것도 사는 거지 왜 우리 애들한테 그렇게 말하냐고!"

그 당시 형님의 말을 들으며 '형님이?? 오~ 의외네~!'라며 별생각 없이 넘겼던 상황이 이제 와서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누구나에게 존재하듯 형님에게도 무던하고, 평온한 삶의 태도를 깨버릴 만큼의 중요한 삶의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무언가가 있었다.

유난히 호흡기가 약했던 나는 마루를 비롯해 곳곳마다 공기청정기를 두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고, 내 가방에는 다양한 황사마스크가 준비되어 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에는 외출도 하지 않는 나를 향해 남들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유별을 떤다고 말했다.

하지만 걸렸다 하면 한 달 이상 넘는 감기는 나의 직업에 있어서도 치명적이었기에 나는 건강 특히나 호흡기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날을 세웠다. 형님 역시 칠삭둥이로 900그램에 낳아 인큐베이터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자녀에게만큼은 자신의 삶에 1순위였을 것이다.


'다름의 이해'를 강의하는 내가 다시 한번 몸소 깨달음을 얻는다.

과거 "너는 별 것도 아닌 거에 그렇게 목숨을 걸더라.",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이야?", "네가 화내는 상황은 좀 이해가 안가. 뭐랄까 일반적이지 않다고 할까?"라고 나불거렸던 내 주둥이가 떠오르며 숨고 싶었다.


각자의 기준, 각자의 공식, 각자의 가치관은 스스로의 생각을 견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견고한 성곽을 누군가 침범하려 할 때 재빨리 수문병을 세워 철저하게 방어하고 공격한다.

나에게 있어 견고한 성곽은'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은 힘들어도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굳이 해야 된다면 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나에게 잦은 부탁을 하거나, 귀찮게 하거나, 무례한 사람들을 향해 절대 가까워지지 않을 만큼의 거리와 철벽을 만들어냈다.


마흔이 되면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는 서서히 나를 느끼고, 알아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무엇에 예민한지...'

그래서일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향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 같다..... 고 쓰고 싶지만... 그저 머리로 아주 조금 이해할 정도인 것 같다.


그랬다. 불편하면, 아니다 싶으면 무 자르듯 '내가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라고 규정했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저 사람 나름대로의 삶의 기준이 있겠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런 코로나 시기에 제발 마스크는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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