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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한나
Sep 28. 2021
재택근무가 길어지면 남편은 오징어가 된다
"제발 이발 좀 하고 오라고! 같이 사는 나는 무슨 죄야? 이마 덮고 있는 앞머리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힌다니까!!! 핀이라도 꽂던가!"
남편은 내 말은 귓구멍으로 듣는지 마는지 씩 웃으며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거야?"
라고 되묻는다.
백신 휴가부터 시작해서 재택근무로 일주일 내내 같이 있으니 이 남자 점점 못생겨진다.
아침에 깔끔하게 차려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물론 퇴근할 때쯤이면 깔끔함이 조금 무너지긴 하지만 그 모습 또한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아... 근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남편은 정말 너무 아니다.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안 감고, 양치도 안 하는... 더럽고, 점점 못생겨지는 아저씨.
이 아저씨는 밥 실컷 먹고 낮잠 한 번 잤다 하면 깨울 때까지 안 일어난다. 나는 우리집 규칙
'먹고 눕지 않기'
를 시도때도 없이 어기는 남편에게 다가가 불을 확 켜고
"일어나~~!"
라고 외쳤다.
'에이씨~ 그냥 불끄고 깨울 걸!'
후회가 밀려온다.
웬 오징어가 나를 보고 씩 웃는데... 안구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다.
자다 깬 남편은 느끼한 표정으로
"이리 와~ 내 옆에 누워서 같이 자자!"
라는 말도 안 되는 멘트를 날린다.
그런데 제길... 이 입은 짜증을 내면서도 몸뚱이는 왜!!! 남편 옆에 조용히 따라 눕는 것일까?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진지하게 묻는다.
"오빤 왜 자꾸 못생겨지는 거야? 지금 정말 못생겼어. 그리고 내 옷도 입지마!"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오빠 면도하면 금방 잘생겨진다! 알지? 금방 잘생겨져~ 이따 뻑가지 말고~"
라는 망언을 늘어놓는다.
금방 잘 생겨진다는 이 남자는 집에서 내 원피스를 입고 다닌다.
그뿐인가? 내 서랍장에 있는 머리띠를 죄다 꺼내 큼지막한 머리 위에 올린다.
(머리띠는 안정환이나 멋있었다고!!!)
남편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못생겨지기로 결심한 것이 확실했다.
태극기를 날려먹은 나에게 폭풍 잔소리중인 남편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이 면도하고 씻고 나오는데... 이 남자 정말 잘생겨졌다.
그뿐인가! 주말에 이발을 한 남편은 순식간에 연예인이 되어버렸다.
"우리 신랑 왜 이렇게 잘생겼어? 너무 멋있는 거 아니야?"
남편은 나를 향해 턱을 살짝 내밀더니 윙크 한번 날리고 방에 들어갔다.
한 때 연예인에 열광했던 10대 소녀처럼 나는 남편을 따라 쫓아다녔다.
그랬다. 나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에 60세가 훌쩍 넘으신 여성분도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
어느 날 그 여성분과 함께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술술 꺼내놓으셨다.
"우리 남편이 그때 나한테 반해서 차로 4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일주일에 몇 번을 내려왔나 몰라. 나도 좋았지.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하고 벌써 40년이 넘게 살았네.
우리 남편
젊었을 때 얼마나 잘생겼나 몰라."
오래된 러브스토리를 재밌게 듣고 있는데 그분이 갑자기 내게 질문을 하신다.
"솔직히 지금도 잘생기긴 했잖아. 그렇지? 우리 남편 참 그대로야~ 잘생겼지?"
"아... 네...."
라며 어쩔 수 없는 대답했지만... 나는 속으로 한참을 깔깔거렸다.
외모를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정말 잘생기지 않았다.
그분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잘생김'
을 강조했고, 나는 묵묵히 설거지를 했다.
그분 이야기를 생각해 보니... 나와 같이 사는 이 남자도 내 눈에만 킹카이겠지 싶다.
"오빠는 웃으면 너무 잘생겨서~ 다른 사람들이 반할지도 몰라. 오빠는 나 말고 다른 여자한테 절대 웃으면 안 돼~ 차라리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니까~"
이런 쓸데없는 소리는 정말 어디 가서 입도 뻥긋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내 눈에 덮여있는 이 콩깍지가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60이 넘어서도
이
남자가 내 눈에서 한없이 멋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17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편에게 이 글을 선물한다.
여보!!! 사랑해!!!
(내일부터 재택이 시작되는데... 여보 꼭 씻을 거지??)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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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딸아이와 젊은 아빠 엄마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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