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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01. 2021

일상을 위한 여행

(2020년에 쓴 글들을 올리는 중입니다^^)


첫 시작은 그랬다.

2004년 8월 14일 결혼식을 올린 다음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간 우리들.

그곳엔 폭우주의보와 태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빠른 속도로 와이퍼를 움직여도 앞은 보이지 않았기에 감각을 의지한 채 기어가는 속도로 호텔에 돌아갔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가 여행을 떠나려고만 하면 해외든 국내든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익숙한 우리들은 차 안에 우의와 우산을 항시 준비했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날 때만큼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맑은 날씨를 기대한다.

그러나 물은 언제나처럼 우리를 따라왔다.


'그럼 우리가 슬퍼할 줄 알았지?'

우리 가족은 비가 내리는 것에는 도통한 가족이다.

모두 일제히 우산을 쓰고 "더운 거 보다는 낫지 않냐?? 살짝 비 오는 거 운치 있고 좋잖아."라며 긍정을 쥐어짠다.

때때로 옴짝 달짝할 수 없는 폭우 앞에서 가슴이 쓰라리기도 하지만, 비를 피해 신나게 실내 활동을 하며 놀기에 그렇게 아쉽지가 않다.

돈을 실컷 바꿔 실내 오락실에서 신나게 놀고, 볼링 치고, 쇼핑하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제약이 생겼다.

남편은 회사로부터 뷔페 금지, 고위험 시설 금지, 실내 스포츠 금지 등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린... 그저 편의점에서 과자를 잔뜩 사 와 티브이 시청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게다가 오래된 리조트는 TV 프로그램도 몇 개 없다는 슬픈 이야기)

왜 집에서 해야 할 일을 강원도 리조트 좁은 마루에서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우리 셋은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흔들리는 연애관계에 대한 조언을 얻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우리 셋은 '감 놔라~ 배 놔라' 오만 참견을 하며(프로그램 이름도 연애의 참견이다) 낄낄거리기도, 한 바가지 욕을 쏟아붓기도,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지 가정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다음날은 꼭 맑은 날씨가 되길 바라며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잠에서 깰랑말랑, 의식이 들랑말랑 하는 순간에 온 감각을 귀로 집중하고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려는데... 헐!  내 귓소리에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커튼을 확 재껴보니 비가 물러가고 서서히 햇님이 기지개를 켜며 화창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가 그토록 보고 싶던 바다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평창에서 짐을 챙겨 강릉으로 떠났다.

설레는 마음 한 가득 싣은 딸아이는 바다에서 인생샷을 찍겠다며 차 안에서부터 화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으나... 자꾸 차 앞유리로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릉에 가까워질수록 차량 와이퍼는 쉬지 않고 열일을 해야 했다.

거센 빗방울! 앞이 보이지 않는다.

신경질이 난 나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오 진짜 지긋지긋하다. 어째 3일 내내 비가 오냐? 어쩌면 우리가 비 내리는 곳만 쫓아가나 보다. 평창은 오늘 날씨 괜찮은 거 같던데... 에휴..."


거센 바람과 빗방울 속에서 바다는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배가 고픈 우리는 자전거 세워두는 가림판 아래 옹기종기 모여 닭강정을 먹고, 커피콩 빵을 먹고, 떡볶이를 먹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물었다.

"대체 여행 가는 날짜는 누가 잡는 거야?? 왜 비 오는 날만 잡는 거야?"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네 엄마지. 논문 쓰고 우울해서 하루라도 놀러 가야 한다고 당장 연차 쓰라고 해서 썼더니 이러네. 우리 집의 대통령이 정하는 거야. 아빠는 힘없어."라는 말로 나의 침묵을 종결시켰다.

 "무슨 소리야! 오빠가 잡아도 비는 맨날 왔잖아. 저번에 담양 갈 때 누가 날짜 잡았어? 작년에 전라도 갈 때도 오빠가 잡았잖아. 오빠 이름에 물수변 있는 거 아냐? 난 한글 이름이니까 오빠 같은데~~~~ 근데 뭐가 되었든 이제 받아들일 법도 하잖아~~"


누가 원인인지 알면 무엇을 할꼬.

늘 비가 오는 일인 것을...

비라도 안 올라 치면 미세먼지가 최악의 경보를 울려 '외출금지'가 뜰 때도 있다.

날씨뿐인가?

"나 몸이 좀 아픈 거 같아. 머리도 아프고, 으슬으슬 추워."

"응급실 가야 될 거 같아. 앉아있을 수가 없어..."

이런 멘트는 항상 함께 하기에 체온계를 비롯해 상비약을 총동원해 여행을 떠난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놀러 가는 것이 좋다.

비를 피해 뛰어다니고, 작전을 세워 이동하는 것도 즐겁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다 그곳에 들어가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다.

엄마 아빠 이쁘게 찍어준다고 사진 찍어주는 딸아이를 보는 것도 좋다.

장염만큼은 걸리지 말자는 주의로 제일 입맛이 예민한 내가 먼저 검수한 뒤 "먹어"라는 말이 떨어질 때까지 나를 응시하는 남편과 딸아이도 귀엽다.


여행만 가면 우리 셋이 똘똘 뭉쳐 사이가 얼마나 돈독해지는지 모른다.

"어디 아픈 건 아니야?"

"나중에 말하지 말고,  아픈데 있으면 바로 말해줘."

"다리 아프진 않니?"

"슬슬 배고플 시간인데 뭐라도 조금 먹을까?"

"춥지 않아? 차에서 담요 챙겨 올까?"

"비 오는데 먼저 차에서 내려. 다 같이 비 맞을 필요 없잖아. 얼른 주차하고 갈게."

"음식 맛 어때? 입맛에 맞는 거 같아?"


새로운 환경에서 서로를 살피고, 배려해주고 보살피는 시간들.

오직 서로에게만 관심을 쏟아붓는 이 시간들.


그렇게 여행은 끝이 나고,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와~ 아무리 여행이 좋아도, 내 집이 최고다!"

집에 들어가서도 "집이 젤루 좋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침대에 눕는 순간 "우리 침대가 최고다!"라고 외치는 우리들...


어쩌면 여행은 우리의 루틴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매번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나에게 '지금 아파트'의 소중함을.

그리고 매일 걷는 집 앞 산책로가 얼마나 예쁜 곳인지를...


이렇게 우리는 현재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고, 똘똘 뭉쳤던 거리를 다시 느슨하게 한 채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을 마음속에 꼭꼭 간직한 채.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이 그리워질 때면 다시 속으로 뛰어 들어가 가족 단합대회라도 벌일 것을 다짐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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