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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23. 2021

맨날  '사랑해'야? 다른 거 없어?

해변에 널린 수많은 조개껍데기 중에서 가장 커 보이고 듬직한 조개껍데기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는 남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오빠! 여기 모래사장에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써봐~ 꼭 하고 싶은 말 그런 거 있잖아."

남편은 귀찮다는 표정을 하며 오랫동안 연마한  실력으로 정답을 확인한다.

"사랑해???? 이런 거?????"

"암튼~~ 나한테 하고 싶은 말 그런 거 없어? 빨리 적어봐~~~"


남편은 쪼그려 앉았고, 고민하기도 싫었는지 처음 말했던 식상한 애정표현 '사랑해'적기 시작했다.

뻔하디 뻔한 세 글자지만 큰 몸을 쭈그려 앉아 열심히 적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이 남자 세 글자를 다 적고도 일어나지 않은 채 무언가를 적는다.

남편은 '사랑해'라는 표현 뒤 살면서 가장 많이 듣던 내 이름을 써 내려갔다.

'한나야'

'한나'라는 내 이름이 큰 모래사장에 적힐 때 마흔 먹은 아줌마의 마음에 살짝살짝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고 설레었다.


전에도 이런 기억이 있었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아파트 1층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했던 나는 분주하게 준비를 마치고 내려갔다.

멀리서 걸어오는 남편을 못 알아본 나는 여기저기 주변을 둘러봤고, 누군가 날 부르기 시작했다.

"한나야!~~~"

평소와 똑같은 남편의 모습이 그날따라 멋져 보인 건 뭐 때문이었을까?


그랬다. 나의 이름은 '한나'였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살면서 저를 잊었어요.'와 같은 멘트를 날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려 애쓴다. 뿐만 아니라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어색치 않다.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운동을 가서도 내 이름 석자 '이한나'를 충분히 말하고 있다.

'이한나 님'

'이한나 회원님'

'이한나 고객님'

'이한나 환자분'

'이한나 강사' 등으로 수없이 말이다.


아마도 잔잔한 아줌마의 가슴에 핑크빛 파도가 일렁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자 나의 짝꿍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좋아서였던 것은 아닐까?

찰나였지만 억센 아줌마에서 소녀가 되는 듯했고... 연애시절 사랑을 속삭이던 그가 돌아온 듯했다.


나는 그에게 '한나'이고 싶었다.

어쩌면 그도 그랬을지 모른다.

"오빠가 회사에서 말이야~~~"

"오빠가 해줄게~~~"

그도 어린 소녀를 사랑하고 지켜주려 했던 오빠가 되고 싶었나 보다.


우리는 현재의 나이를 기억하며 어른들의 삶을 살아가려 하지만... 깊은 내면에는 젊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소녀를, 그 시절의 소년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어여쁜 소녀를 깨우는 이가 다른 이가 아닌 나와 평생을 약속한 당신이길...


더 바람이 있다면... 내 안에 소녀가 섭섭함을 느끼지 않게 자주자주 깨워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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