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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Sep 23. 2021

무조건 '한식'만 먹어야 하는 시어머니

한식, 무조건 한식, 그냥 한식, 고민할 것 없이 한식.

시어머니의 무한 사랑 '한식'은 특히 명절에 빛을 발한다.

밥과 각가지 김치, 국, 고기, 생선 반찬으로 아침-점심-저녁 삼시 세 끼를 차려내시는 어머니.

며느리가 설거지라도 하면 뭐가 그리 걱정인지 "다 내가 하는 방법이 있으니까 너는 너네 집에 가서나 해!"라며 한사코 부엌을 장악한다.


아기새 마냥 "어머니 밥 언제 먹어요? 나 배고픈데..."라며 소파에 앉아 TV나 보고 있는 며느리라면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결국 마음속의 말들을 입 밖으로 내고 있었다.

"어무니~ 난 명절날 밥만 먹으니까 이제 진짜 밥이 먹기 싫은데... 집밥 먹기 싫어~~~ 어무니 우리 나가서 다른 거 먹음 안돼??? 어무니 저녁에 밥하고, 점심은 나가서 먹어요~~~~"

옆에 있던 남편은 나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이 안 될 말들을 나불거렸다.

"엄마~ 한나는 명절만 지나고 집에 가면 밥이 너무 싫다고 하는 애야. 우리 명절만 끝나면 피자랑 파스타만 먹는다니까. 어차피 명절 지나고 먹어야 될 거 뻔한데... 미리 나가서 한 번 먹자. 근데 엄마 피자, 파스타 한 입도 못 먹잖아??!"

그랬다. 어머니가 우리와 합류한 이상 메뉴는 정해졌다.

어머니는 내가 자신의 부엌을 벗어나도 밥을 먹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시 시켜 주었다.

"한나야. 밥이 그렇게 싫으니? 너 피자를 무슨 맛으로 먹니? 그게 맛있어? 김치에 밥을 먹어야지!!"

나를 실의에 빠뜨린 시어머니는 갑자기 이상한 말들을 이어갔다.

"근데 말이야. 나 피자 먹어본 적 있어. 수영장에서 일할 때 젊은 애들이 그렇게 피자를 시켜먹더라. 먹어봤어. 그러니까 오늘은 그거 먹자. 나 지금 별로 배도 안고파서 어차피 조금만 먹을 건데 너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들어가자!"


하... 결혼생활 17년 만에 처음 들어본 어머니의 양식 도전 이야기.

나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양식당에 앉아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사실 나는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아이고...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비벼먹으면 딱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물론 못 들은 척 했다). 그런 어머니가 "괜찮다. 먹을만하다"는 말을 건네며 고르곤졸라 피자 두 조각을 드시고 있었다. 겉절이를 먹으면 먹었지 생전 처음 맛 본 카프레제 샐러드, 막걸리빵을 먹으면 먹었지 치즈만 잔뜩 올라간 고르곤졸라, 국수를 먹으면 먹었지 요상한 로제크림 파스타까지...


어머니는 알까?

어머니의 배려에 내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나만큼이나 '좋고, 싫고'가 명확한 어머니임을 알기에 나와 함께 피자를 먹어 준 어머니의 마음이 참 크게 느껴졌다.

"어머니, 다음은 제 차례예요. 어머니가 하고 싶은 것 마음에 잘 담아두셔요. 제가 피자보다 더 큰 것으로 갚을게요~! 그리고 저도 어머니가 맛있게 피자를 드신 것처럼 즐겁게 함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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