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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an 03. 2022

불륜은 차 안에서 시작된다고? 확 그냥!

"밥도 배부르게 먹었으니 어디 가서 커피나 한 잔 할까?"

나의 제안에 단번에 "응"이라고 말할 인간이 아니었다.

"누나~ 원래 불륜은 차 안에서 시작하는 거야. 우리 커피 사서 차에서 마실까?"

이 자슥은 욕을 못 들어 쳐 먹어 안달난 게 확실했다.

"야! 이 미친! 불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일루 와! 죽을래 진짜?"

나의 거침없는 입놀림을 멈춰야겠다고 판단했는지 동생은 태세를 전환해 "누나 누나! 뻥이야! 아~~ 진짜~ 나도 누나 스타일 싫거든. 난 우리 와이프만 아는 남자라고~ 나를 뭘로 보고! 나는 진짜 편의점 커피가 맛있단 말이야. 카페 커피는 그 맛이 안나~ 그거 사서 드라이브나 하자!"며 나의 열을 잠재웠다.


참고로 이 동생은 내가 처음 사업할 때 알바생으로 들어와 십 년이 한참 넘는 시간 동안 누나, 동생하며 지내 온 각별한 녀석이다. 내가 일손이 급할 때마다 광고에 나오는 멘트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와 나를 도와주는 너무나 고마운 동생.


어쨌든 녀석의 바람대로 우리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구매하였다. 나는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동생은 본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편의점에서 파는 라테를.

이 사진이 쓰일 줄이야~

잠시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커피를 마시며 폭풍 수다를 떨던 중... 우리 앞에 어떤 차가 후진을 하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담아 조잘거렸다.

"야! 저 차 왜 저래!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거 같은...데"라는 말을 다하기도 전에 작은 충돌음이 들렸다.

퍽~~ 찌이익~~


다행히 낮은 속도의 후진이었기에 차만 살짝 스크래치를 입었을 뿐 사람은 모두 괜찮았다.

하지만 동생은 불안했는지 "누나, 혹시 모르니까 아프면 꼭 병원 가! 알겠지?"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우리 집 작은 강아지가 나를 밀 정도의 강도보다 훨씬 작은 충격에 아플 리가 없었지만, 보험사의 전화를 받고 나니 많은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1) 합의금을 받아서 쓴다. (오예!)

2) 물리치료 및 마사지 겸 도수치료를 공짜로 받는다. (오예!)

3) 안 아픈데... 충격 1도 없는데... 해도 되나??? (심기 불편)


과거의 사고가 떠올랐다. 가만히 가고 있는데 건물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가 직진하고 있는 내 차를 반대 방향으로 박았고, 보험사가 오기 전까지 박은 적이 없다고 빡빡 우기는 상황이었다.

억울했지만 슬금슬금 나오는 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에게도 10%의 과실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90%의 과실이 있는 아줌마, 심지어 박은 줄도 모를 정도라던 아줌마는 어디가 아픈 건지 대인 접수를 했고, 뭘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해 내 자동차 보험금의 할인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가해차량이 엄청나게 비싼 차였기에 나는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나의 억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꼭 아파야 대인 접수를 하는 건가? 지금 아프건 안 아프건 상관없이 예전에 뜯겼던 거를 생각해보면 이게 다 쌤쌤인 거야. 해도 된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합리적 주장에 수긍이 되었는지 내 고개는 빠르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옳소 옳은 말이오!'라며 고개가 움직이니 내 마음은 곧장 '합의금을 받아 무엇을 살지 고민해보시오'라는 행복한 숙제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상하게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저기요. 저도 있어요!"라며 손짓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불편함과 찝찝함'이었다.


'그깟 돈이 뭐라고!'

 vs

'나도 많이 당했는데 이번엔 내가 받을 차례!'

갈팡질팡하며 눈알을 굴려대는 내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남편은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아파? 아프면 치료받는 게 맞는데... 그게 아니면 하지 말아야지."


감사하게도 아플 이유가 없던 나는 용기를 내 보험 담당자에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저 이 사고로 인해 아픈 건 없는 거 같아요. 여기서 마무리 지어도 될 거 같습니다."

(아이구~~ 이한나~~~ 그랬져요??? 그렇게 갈등하더니 돈에 끌려가지 않기로 한 거예요?? 우쭈쭈 잘했어요!)

스스로가 얼마나 기특하던지 혼자서라도 궁딩이를 팡팡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마음을 알 길 없는 담당자는 아주 건조하게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시면 상대방에게 베푸는 거죠. 그럼 이렇게 마무리 짓겠습니다."는 말과 인사로 급하게 통화를 종료하였다.

뭘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인사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텅 비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라면 그렇게 말 안 해. 아이고~ 고객님, 안 아프시다니 정말 천만다행이네요. 게다가 이렇게 상대방까지 생각해주시는 마음 참 감사합니다. 제가 상대 차주님께 잘 전달하겠습니다. 아마 그분도 고객님께서 이렇게 베풀어 주시는 마음에 참 감사할 거예요. 쌸라쌸라~~~~ 이 정도는 돼야 되는 거 아니야??"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가라앉으니 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였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무진장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언제 철드노???!!!"


스스로를 혼내려 한 순간 나는 마음을 바꿔 인류에 숨어있는 내 편을 찾기로 했다.

'나만 이러겠어?! 이런 사람 많을 거 같은데'라며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예측을 하니 괜히 어깨가 들썩거렸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신기하게도 나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말이야.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온 몸으로 칭찬해 줄 거야. 그냥 안 넘어 갈 거야~~
콧소리 팡팡 내면서 엄지척! 해 줘야지!!~

오늘의 실천: 딸이 백만 년 만에 방 안에서 먹었던 그릇들을 들고 나왔다.

"엄어머뭠ㄴ아ㅣㅁ어ㅣ 헐 대박~~~ 우리 딸 그릇 갖고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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