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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r 14. 2020

아메리카노만 먹거라!

밥을 먹고, 책을 읽는데 핸드폰이 계속 울려댄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뭐야~~~ 한 번에 뭐가 이렇게 많이 와??'
남편은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카톡으로는 분이 안 풀린 남편은 퇴근 후 산책을 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노, 라테는 알겠는데 뭔 놈의 에이드는 종류가 그렇게 많냐?? 샷 추가, 사이즈업 등등 얼마나 요구 사항이 많던지 진짜 짜증 나더라!"


주문을 하는 남편의 입장에선 충분히 짜증 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제길.... 내 입은 딴소리를 해버렸다.

먹고 싶은 거 시키라고 해서 시켰는데... 먹고 싶은 거 말하면 안 돼?
그냥 레모네이드 먹고 싶어서 레모네이드 말한 건데 왜 그래?  애초에 오빠가 잘 아는 아메리카노랑 카페라테만 받는다고 하던가~


나의 따발총을 맞은 남편은 약간 전의를 상실한 표정으로

헐.... 내 편 좀 들어줘라... 인간적으로 메뉴가 너무 많잖아!"


이럴 땐 남편 편을 들어줘야 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나는 "하긴 나도 그럼 짜증 나긴 할거 같아... 나도 예전에 교회에서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러 갈 때 죠스바, 스크류바, 뽕따~ 주문 메뉴 많아지면 뭔지 모를 짜증이 났어. 그래서 다음엔 묻지도 않고 그냥 한 가지로 다 통일해서 사놓고, 먹기 싫음 먹지 마! 이랬다니까!"

남편 역시 동지를 만났다는 생각이었는지 활짝 웃었다.

근데 이 놈의 입이... 이놈의 입이 슬슬 살아나며 남편에게 굵은소금을 팍팍 뿌려대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도 딸내미한테 나가서 너의 생각을 잘 말하라고 하잖아.
우물쭈물 자기 의견도 말 못 하면  답답하다고 하잖아. 심지어 메뉴 정할 때도 '아무거나'라고 하지 말라고! 싫으면 싫다 말하라고 알려주잖아. 근데... 오빠 지금 우리는 좀 다른 모습이긴 하지 않아? 우리가 늙은 건가?


남편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너무했나? 이건 좀 나중에 이야기할 걸 그랬나? 아 그냥 입 다물고 있을걸...'이라는 후회가 단번에 밀려오는 그 순간 남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나 꼰대임?


요즘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자신이 꼰대냐고 묻는 남편의 질문에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오빠~~ 그냥 꼰대는 아니고~! 새끼 꼰대 정도 되는 거 같지 않아??
다양성을 존중하자고! 세상에 모든 음료가 오빠가 먹는 아메리카노와 라테만 있는 게 아니잖아!!!


이렇게 남편에게 큰소리 쳤지만..

나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많아질수록,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생길수록... 내 기준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거 꼰대  마인드 아닌가?'하며 조심스럽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이 마음과는 다르게 딸아이에게는 나의 생각을 강요할 때가 많다.

강조하고, 강요하다 보면 꼭 충돌이 일어난다. 물론 성장과정에서 필요한 충돌도 존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기준에서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만들어 놓은 것들이 충족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싸움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렇게 내가 만들어 놓은 상식의 선을 따르지 않으면 화를 냈을까?
내가 생각해 온 아메리카노와 라테를 벗어나면 짜증이 나는 것처럼...


오래전 '어쩌다 어른'에서 꼰대 방지 5 계명이 나온 게 생각이 났다.



내 나이 39살, 내 나이에 비해 제법 성숙한 16살 딸아이와 살아가며, 내가 믿고 있는 기준이 아이에게는 틀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인지 하루하루 깨닫는다.


열심히 거울을 보고 화장하는 아이에게 "야!!! 무슨 중학생이 화장을 하니? 엄마 때는 고등학교 가서 했거든... 진짜 요즘 중학생들은... 쯧쯧"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 큰 이모 때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했대. 엄마 때는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했지? 그니까 내 때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리고 옛날이야기 좀 하지 마! 나는 중학생 때 했으니까 다행인 거야.
어떤 애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하거든~


나름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근데 왜 짜증이 나지...

짜증이 나는 거 보니 내 말이 틀릴 수도 있겠다싶어 마음을 추스리고 얼른 멋지게 한마디 했다.


"알았으니까~ 화장은 꼼꼼하게 지워~  기왕이면 성분 좋은 거 검색해서 쓰고!!!! 언제 엄마랑 화장품 사러 같이 가자!"


워워~~~ 새끼 꼰대는 떠나가라!!


견고한 내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나와 다름에 화가 나려는 그 순간이 내 안에 새끼 꼰대를 배양하는 일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최근 뿜에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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