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머리까지 물속에 넣었다가 두 손으로 머리를 쓸면서 일어나는 그런 섹시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불려진 몸이 가려워 벅벅 긁다 보니 때가 나온다.
나는 일어나서 내 사랑 '이태리 타월'로 때를 밀기 시작한다.
온몸의 때가 떨어져 나가듯 제발 주식에 대한 아쉬움도 사라지길 바래본다.
깨끗이 씻고 나가는 순간, 나는 반드시 '증권어플을 지워야지!'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나는 지우지 못했고, 다음 날 증권어플에 손가락이 기어갔다.
그렇게 후회라는 감정은 하루라도 안 만나면 안 되는 절친이 되어갔다.
자꾸 자책하고, 후회하고 나니 기운이 빠진다.
글도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으니 오래전 블로그에 쓴 글들을 보게 되었다.
앗!!!!
지금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써있는 글을 발견했다.
제목: 못하면 어때요? 괜찮아요!
남편과 함께 집으로 향하던 중 저는 창밖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들도 저렇게 나무 위에 각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게 참 신기해. 겨울엔 뭐 먹고살까?” 그때 마침 홍시가 생각나더라고요. 시골에서 자란 남편이었기에 다시 물어봤습니다. “여보, 정말 감나무 위에 몇 개 달린 홍시는 정말 까치가 와서 먹어?” 남편은 밝은 목소리로 “당연히 까치가 홍시 먹지!” “아~ 그래서 사람들이 감을 따고 몇 개 남겨 두는 거구나~” 그때 남편은 키득거리며 이야기합니다. “근데 말이야.... 높이 있는 감은 못 따니까 그냥 까치밥 준다고 생각하는 거 같지 않아?? 괜히 따고 싶은데 못 따니까 까치 주는 척하는 거 아닐까??” "오~~~ 그런 상상력이 있다니!"
그 순간 딸아이에게 읽어주던 이솝우화 중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가다 높은 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보고, 먹고 싶어서 펄쩍 뛰었지요. 하지만 포도가 너무 높이 달려 있어 여우의 발에 닿지 않아 먹을 수가 없었지요. 여러 차례 힘을 다해 뛰어 보았지만 실패했던 여우는 결국 포도를 먹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저 포도는 신 포도야! 맛이 없을 거야.”
어렸을 적 저는 ‘스스로를 속이는 여우’, ‘포기하는 여우’로 ‘포도를 탓하는 어리석은 여우’로만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자책하기보다는 고통의 순간에 자신을 지켜내는 여우가 참 기특합니다.
<습관적으로 자책하는 것보다는, 습관적으로 나를 변명하는 것이 더 낫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합리화가 도덕적으로 책망받을 일만은 아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이 신 포도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여우를 누가 책망할 수 있겠는가? 여우는 그 순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다. - '자기 합리화의 힘' 책 일부에서>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 그리고 너무 혼내지 마세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