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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pr 01. 2020

후회라는 감정을 뼛속까지 느끼는 방법 - feat.주식

내 인생에 있어서 후회를 가장 많이 했던 시간들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주식했을 때"


그전에 글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주식이라는 곳에 발을 잠시 들였던 시간 동안 '후회'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톡톡히 깨달았다.

다신 하지 않겠다며, 주식을 다 팔아버렸으나 이상하게도 이 놈의 손가락은 툭하면 증권 어플을 눌렀다.

나는 매일 다 팔아버린 종목들을 바라보며 똑같은 말을 했다.


"아 팔지 말걸"

"아 기다릴걸"

"아 나중에 살걸"

"아 다른 종목 살걸"

흔히들 말하는 껄껄껄 하면서... 온통 후회라는 감정에 휩싸였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야! 너 같은 사람은 주식하면 안 돼!
미래를 알고 하냐?
지난 일은 지난 거야~!
그럼 세상에 돈 못 버는 사람이 어딨어?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을 보면 참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쿨하지?'

어쨌든 결론은 정말 나랑은 안 맞는 일이다.


다시는 몹쓸 후회라는 감정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서, 나는 꼭... '증권 어플'을 지워버리겠노라고 결심했다.


주식시장이 330분 마감을 할 때, 나는 이제 '굿바이'하겠노라 결심하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처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기로 했다.


우아하게 수증기가 가득한 화장실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래 잊는 거야!"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머리까지 물속에 넣었다가 두 손으로 머리를 쓸면서 일어나는 그런  섹시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불려진 몸이 가려워 벅벅 긁다 보니 때가 나온다.

나는 일어나서 내 사랑 '이태리 타월'로 때를 밀기 시작한다.

온몸의 때가 떨어져 나가듯 제발 주식에 대한 아쉬움도 사라지길 바래본다.

깨끗이 씻고 나가는 순간, 나는 반드시 '증권어플을 지워야지!'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나는 지우지 못했고, 다음 날 증권어플에 손가락이 기어갔다.

그렇게 후회라는 감정은 하루라도 안 만나면 안 되는 절친이 되어갔다.


자꾸 자책하고, 후회하고 나니 기운이 빠진다.

글도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으니 오래전 블로그에  쓴 글들을 보게 되었다.

앗!!!! 

지금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써있는 글을 발견했다.



제목:  못하면 어때요? 괜찮아요!                                                                                                          

남편과 함께 집으로 향하던 중 저는 창밖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들도 저렇게 나무 위에 각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게 참 신기해. 겨울엔 뭐 먹고살까?”
그때 마침 홍시가 생각나더라고요. 시골에서 자란 남편이었기에 다시 물어봤습니다.
“여보, 정말 감나무 위에 몇 개 달린 홍시는 정말 까치가 와서 먹어?”
남편은 밝은 목소리로 “당연히 까치가 홍시 먹지!”
“아~ 그래서 사람들이 감을 따고 몇 개 남겨 두는 거구나~”
그때 남편은 키득거리며 이야기합니다. “근데 말이야.... 높이 있는 감은 못 따니까 그냥 까치밥 준다고 생각하는 거 같지 않아?? 괜히 따고 싶은데 못 따니까 까치 주는 척하는 거 아닐까??”
"오~~~ 그런 상상력이 있다니!"


그 순간 딸아이에게 읽어주던 이솝우화 중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가다 높은 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보고, 먹고 싶어서 펄쩍 뛰었지요. 하지만 포도가 너무 높이 달려 있어 여우의 발에 닿지 않아 먹을 수가 없었지요. 여러 차례 힘을 다해 뛰어 보았지만 실패했던 여우는 결국 포도를 먹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저 포도는 신 포도야! 맛이 없을 거야.”
  
어렸을 적 저는 ‘스스로를 속이는 여우’, ‘포기하는 여우’‘포도를 탓하는 어리석은 여우’로만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자책하기보다는 고통의 순간에 자신을 지켜내는 여우가 참 기특합니다.
   
<습관적으로 자책하는 것보다는, 습관적으로 나를 변명하는 것이 더 낫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합리화가 도덕적으로 책망받을 일만은 아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이 신 포도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여우를 누가 책망할 수 있겠는가? 여우는 그 순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다. - '자기 합리화의 힘' 책 일부에서>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
그리고 너무 혼내지 마세요.
괜찮아요.

"신 포도일 거예요."
                                                                


와... 내가 이 때를 준비해서 글을 써놨나 싶었다...

그만 자책하자! 반성해서 다시 주식할 것도 아니니, 이미 끝난 일 변명을 하자!

지금 상황에서는 변명이 적합하다.


그래! 주식 팔길 잘했어!

나중에 팔았으면 있는 돈까지 다 까먹었을 거야!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을 거야!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나은 거야!

나 정도 잃은 건 잃은 것도 아니지!

지금이라도 나왔으니 다행이지!!!


분명 내가 팔아버린 그 주식종목은 신 포도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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