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Mar 08. 2020

지랄맞은 딸은 웁니다...

나는 만두를 좋아하진 않지만, 아이와 남편이 좋아하기에 종종 만두가게를 가곤 한다.

학교를 마친 어느 날 딸아이가 만두가 먹고 싶다 하여 아이와 함께 산책 겸 만두가게로 향했다.

나는 먹을 생각이 없어 "사장님, 여기 고기만두 1인분만 주세요!"라며 주문을 했다.


'둘이 와서 1인분이 좀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에 사장님은 우리 가족을 알아보고는

아이고~ 예쁜 따님이랑 오셨네요!
(딸아이를 보며) 아줌마가 고기만두 빨리 해 줄게요~ 공주님!


'허걱... 공주님이라니... 안 예쁜데... 예쁜 얼굴 아닌데... 공주님...??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나도 엄마인지 자식 칭찬 앞에서 춤추는 고래가 되어버렸다.

내 딸을 예쁘게 봐주시는 감사함과 함께 엄청난 생각의 변화가 왔다.

'저렇게 친절한데.... 내가 고기만두 1인분만 카드 긁기 민망하군... 우리 딸한테 이쁘다고 했는데..

자영업하시는 분들 요즘 힘들다고 했는데... 그래도 만원은 써야 카드 긁기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눈을 치켜뜨고 메뉴판을 쏴~~ 악 스캔한 뒤 큰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찐빵 7000원어치 포장될까요?"

고기만두 3000원 + 찐빵 7000원= 만원!


나는 돈을 아껴 쓰려는 생각으로 만두만 먹으려고 했는데...

우리 딸을 예쁘다 해주니, 나도 모르게 찐빵을 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 리즈너블 하지 못한 사람이여....'


따스한 말 한마디가 찐빵을 사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워가 있는지 속담만 봐도 알 수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그러기에 나는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친절하게 웃으며, 직설적이지 않게, 마음 상하지 않게 말이다.

내 친구는 나에게 "어쩜 그리 이쁘게 말하냐?"라고 감탄할 정도다.


이런 나의 친절한 말은 한 사람한테만 비껴간다.

그건 바로..... '우리 엄마'

'왜 그럴까?' 어제도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고 한참이나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전화로 스마트폰과 관련된 무언가를 물을 때면, 설명하려다가도 짜증부터 솟구친다.

"엄마! 엄마 얼굴 나오게 하지 말고! 셀카 모드 말고 다른 데가 보이게 해 봐!"라고 말하면 엄마는 "왜 자꾸 내 얼굴만 나오지?"를 세 번 정도 반복한다. 슬슬 짜증 게이지가 올라간 나는

엄마, 진짜 둘째 언니가 아니라 내가 이민 가야 되는데...
엄마 때문에 내가 진짜 못살아.


심지어 큰 목소리로 "아니라고~  아 진짜 답답해."라고 말하는 나...

게다가 어제 나는 뱉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내가 정말 엄마 때문에 죽겠네-죽겠어!


이미 늦어버렸다. 말은 입 밖으로 나와 엄마의 전화기로 세어나갔다.

세상 얼마나 불효한 말인가? 엄마 성격에 "그게 엄마한테 할 말이냐?"라고 바로 나왔을 텐데...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딸아이가 달려와 페이스톡으로 할머니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곤 마쳤다.

나는 정말 나쁜 딸이자, 나쁜 엄마였다.

엄마에게도, 딸아이 앞에서도 못할 짓을 하고 말았다.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끔 싸우긴 해도 엄마랑 나랑은 잘지냈던 거 같은데.... 그래도 엄마라면 엄지손을 치켜세우던 나인데...

언제부턴가 엄마와 대화를 할 때면 날카로운 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한테 정말 잘하고 싶고, 좋은 딸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힘이 들었다. 매주 엄마에게 가는 것이 힘겨워졌고, 자주 보는 딸이어서인지 나는 늘 찬밥 신세처럼 느껴졌다.

자주 보는 나는 흔하디 흔한 김치 같은 존재였고, 어쩌다 만나는 딸과 캐나다로 이민 간 멀리 있는 딸은 귀한 소고기 같이 여긴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한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엄마는 그것이 별거 아닌 일처럼 말했고, 뜬금없이 '아들 없는 신세'를 한탄하거나, 멀리 떠난 언니의 빈자리를 이야기할 때면.... 나는... 나는 정말 필요 없는 딸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서운함을 담은 그릇이 가득 차 결국 쏟아져버렸다.

엄마, 그런 말 쉽게 하는데... 내가 속상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엄마랑 더 이야기해 봤자 나만 상처 받고, 짜증 나니 그만 이야기해!


라며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말해버리면 다 괜찮을 거 같았는데, 난 그 뒤로 엄마를 가까이하는 게 힘들었다.

조금만 길게 이야기를 하면 내 가슴에 상처가 나는 거 같아 늘 필요한 말만 하고 안부만 묻고 끊기 바빴다.


그렇게 거리를 두며 나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시간이 쌓일수록, 엄마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결국 난 어제 "엄마 때문에 죽겠다"라는 말을 뱉어낸 뒤... 미안한 맘에 다시 전화를 했다.


엄마는 "딸이 엄마 때문에 죽겠다는데... 엄마가 너무 미안하네..."라고 차분하게 이야기했고...

내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했으나... 난 또 미친년처럼 헛소리를 나불거렸다.

"아니... 진짜 엄마 나도 너무 힘들어. 엄마는 나한테만 너무 많이 시켜. 맨날 카톡으로 사진 찍어서 이거 사라 저거사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말보다... 나는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엄마... 나는 그냥 엄마가 나에게 툭툭 던지는 말에 너무 상처를 입었어.. 근데 그게 이제 너무 쌓였어. 그리고 피곤하고 힘들어. 엄마가 자꾸 미워서 내 맘도 너무 아파...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못하고 더 독하게

엄마랑 길게 말하면 서로 상처만 받으니까,
말 길게 하지 말고 용건만 이야기하자고!


엄마는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서는 "한나야... 나는 오늘 엄마가 보고 싶더라..."

그러더니 엄마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울음을 꾹꾹 눌러내며 엄마는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나도 엄마한테 툭 던졌던 말들에 죄책감이 남아서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어... 혹시 마음 여린 막내딸이 이런 일들로 엄마가 떠나고 나서 나처럼 마음 아파할까 걱정돼. 엄마는 다 괜찮아. 엄마니까 괜찮아. 근데 엄마가 떠나고 네가 마음 아플 거 생각하면 그게 더 속상해."


그 말에 나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지만... 마음과는 상관없이 미친년처럼... "나한테 지금 그런 말 하는 이유가 뭐야?"라며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드러내고는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내 안에 무슨 상처가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한테 안겨 울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카톡을 보냈을까?

아마도 속상했던 마음에 눈물을 훔치다가도, 딸아이가 불편한 마음으로 있는 게 걱정스러워 먼저 카톡을 보냈겠지...

나는 답장을 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나쁜 말들을 나는 가장 가깝고 편하다는 이유로, 또는 내가 상처 받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쉽게 뱉어내고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화법을 강의하면서도, 친절한 화법은 엄마를 제외한 모든 대상에게 행해지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한나야, 우리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엄마와 딸 사이지만, 이렇게 작은 말 한마디로 상처 받는데... 우리 정말 예쁜 말만 하자... 서로 노력해보자! 엄마도 노력할게.


엄마는 내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엄마가 주는 따스한 손길의 의미를 알고 있다.

'엄마는 괜찮아. 내 딸이니까 괜찮아. 다만 네가 또 아파할까 봐...'라는 지독한 엄마의 사랑을...


나는 엄마에게도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부끄럽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면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게 될 것만 같아 글을 써 내려간다...


엄마... 이렇게 못되고 나쁜 딸이라 미안해...
작은 일에도 쉽게 화내는 딸이라 미안해.
밖에 나가서는 오만 친절 다 부리며, 엄마한테는 따뜻하게 굴지 못해 미안해.
작은 것 하나 하면서 생색 부려 미안해... 엄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겠지.
그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나에게 왔을 때 더 미안한 마음이 늘어나지 않도록,
조금 노력해볼게... 엄마 사랑해...

그리고 이 글은 부끄러워서 엄마에게 보내지 않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라는 감정을 뼛속까지 느끼는 방법 - feat.주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