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할 때 '트'라고!!!

by 이한나

엄마는 답답한지 아빠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트레이더스를 맨날 뚜레쥬르라고 말한다니까!

트! 레! 이! 더! 스라고!!!"

"내가 언제 뚜레쥬르라고 그랬어? 나도 알아. 뚜레-더스!!"

"아니 '뚜'가 아니라 '트'라니까. 트레이더스 해봐!"


아 왜... 마트 이름 가지고 싸우나 싶었다.

아빠는 작은 목소리로 "뜨-레이-더스.... 뚜-레-이-더-스"

엄마는 이내 못마땅했는지 "아오~ 정말 트레이더스라니까!"

아빠는 짜증이 났는지

트럼프 할 때 '트!' 트럼프 할 때 '트!'
트-레-이-더-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오~~~ 아빠 그거야!"

두 분 다 만족스러운지 다시 TV를 본다.

TV 보는 아빠 모습을 보니.... '많이 늙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나 어릴 때 영어도 알려주고 그랬는데....

이제 마트 발음이 안되어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네....


마음이 살짝 가라앉은 나를 엄마는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엄마는 핸드폰을 내밀며

"내가 저번부터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어. 나도 브런치 가입해줘!"

"내가 글 보내주긴 하잖아!"

"아니 그냥 해줘. 나도 뭔지 좀 보고 싶으니까! 우리 딸 글도 많이 보고 싶고~ 깔아줘!"

(브런치 어플 설치 완료)

"엄마, 닉네임 뭐할 거야? 엄마 이름으로 해줘?"

"아니~! 좀 그런 거 말고, 색다른 거 없니?"


엄마는 우리 집 반려견 사랑이를 너무 예뻐해서 집에만 오면 안고 있다.

나는 사랑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사랑이 할머니>로 해줄까?"

"아니~ 그게 뭐야?! 싫어!!! 음.... 뭘로 하면 좋을까?"

"아 빨리 알려줘!"

"글쎄..."

"알았어. 글쎄로 한다."

나는 바로 '글쎄'를 입력했고, 엄마는 '글쎄 님의 브런치'를 갖게 되었다.


엄마는 핸드폰 첫 화면에서, 브런치에 들어가 내 글을 보기까지의 단계를 수차례 연습해본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내가 다시 처음부터 해 볼게"라고 말하던 엄마.

그러나 기대는 금물이다. 엄마는 금새 까먹었다며 핸드폰을 다시 내민다.


우리는 그렇게 몇 번을 연습했을까??

"이제 알겠다!"라고 말한 엄마는 마침내 나의 브런치에 입성했다.

엄마는 밝은 표정으로 "이제 이렇게 하면 니 글을 또 보고, 계속 볼 수 있다는 거지?"

"맞아"


나는 간단히 대답했지만, 마음 한 켠이 묘했다.


아빠는 언제부터 마트 발음이 어려워진 것일까?

엄마는 언제부터 딸아이에게 배울게 많아진 것일까?

두 분 모두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알려주던 존재였는데....

이렇게 엄마, 아빠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에서 점점 조연으로, 엑스트라로 밀려나가는 것인가?

느릿느릿한 모습.... 늙어가는 모습....


엄마, 아빠가 간 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만큼 내 마음은 참 허전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또 가만둘 리 없다.

핸드폰은 미친 듯이 울려댄다.

"뭐지?"

나의 구독자 '글쎄 님'은 알려주지도 않은 라이킷을 혼자 터득했다.

이미 읽은 글들을 하나하나 눌러 라이킷 울림 폭발을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속삭이는 거 같다.

'한나야! 엄마, 아빠가 늙어서 못하는 것도 많고, 물어보는 것도 많지만....
네가 가는 길을 응원하는 것만큼은,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늙지 않고, 짱짱하게 있으니 힘을 내렴!'


그렇게 내 핸드폰은 밤 12시 30분까지 울렸다.

난 엄마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다 받어?' 말일까 생각해보니 '다 봤어'라는 말이겠지 싶다.

문학 소녀였다더니.... 어쩌면 댓글을 적어주신 분의 말처럼...'엄마 사랑 다 받아!' 이런건가?


오늘 밤엔 엄마의 '라이킷' 테러 덕에 그저 행복한 잠자리가 될 듯하다.

모든 것이 쇠하고 노화해도 자식을 향한 사랑은 더 불타오르는 엄마, 아빠!
저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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