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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r 17. 2020

그만 좀 싸우자! 지긋지긋하다.

그만 좀 싸우자... 지긋지긋하다.

글을 쓸 때는 '예쁜 딸아이, 소중한 아이'인데... 현실에선 아이를 미워하는 못된 막장 엄마이다.


밥을 달라는 소리도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 수시로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배가 자주 고픈 딸내미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진다.

'또 먹니?'

오랜 시간 함께 한 후유증인가 보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친다.

물론 내가 잠시 자제력을 잃고 한마디라도 했다 하면, 이 아이도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따발총의 역습...

그래도 내가 먼저 승질을 냈기에...나는 눈치를 보다 "미안해"를 외친다.

아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내가 더 미안해"라고 말한다.

하루에도 세 번 정도는 싸우나 보다...

싸우는 것이 나만 힘든 것이 아닌지, 아이도 "정말 학교 가는 게 좋은 일이야. 나도 힘들다 힘들어."라고 말하는 딸아이...


저녁 먹고 나서는 그만 싸워야지 했는데, 또 싸웠다.

분명 11시에 잔다고 했던 아이가 11시 20분까지 방에서 부스럭거리다 나오길래

11시 5분에 눕는다며 왜 약속을 안 지키니? 뭐 핸드폰 했겠지!


라고 한마디 했다.

자꾸 빈정거리며 말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는 억울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봤어? 핸드폰 안 했거든? 엄만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해?
나 과제 있던 거 한 번 더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랬는데 진짜 기분 나빠.


이 상황에서 "오해해서 미안하다"가 나와야 되는데...

"니가 평소에 시간 안 지키고 핸드폰 많이 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엄마도 다 쌓인 거 아니야?!"

요 입은... 왜 또 말썽인 것인가?


싸움의 연장전이 일어났다.

아이는 렌즈를 빼는 도구를 찾고 있었다.  "또 찾니? 이것 봐! 쓰고 제자리에 둔다고 약속했잖아~왜 맨날 아무 곳에나 두는데?"

아이는 0.01초도 머뭇거림 없이 "제자리에 둔 적도 있어. 맨날이라고 하지 마!"

그때.... 두둥둥.... 눈치 없는 남편이 등장했다.

한두 번 이야지. 진짜 니 물건 좀 잘 챙기면 안 돼? 말로만 챙긴다고 하면 뭐해?


라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딸아이에게 말했다.

그때 아이는 "아빠도 화 안 낸다고 말해놓고, 또 화낼 때 있잖아. 왜 내 실수 가지고만 뭐라 하는데?"

남편은 말이 막혔으면 그냥 멈췄어야 하는데....  결국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했다.


나보다 니가 더 심하잖아!!!


에라이~~~ 너무 우스웠지만, 분위기가 심각한 듯해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데 딸아이는 아빠에게 한 마디를 기어코 했다.

"누구 닮아서 그러는데? 다 아빠 닮아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때 남편은 잠시 이성이 탈출했는지

왜 나야? 다 니 엄마 닮아서 그렇지 뭐


헐... 마루에 앉아있던 나는 기가 막혀서 안방으로 쫓아갔다. "오빠~뭐래? 왜 갑자기 싸우다가 나를 들먹이는데... 완전 어이없다~!"

남편은 민망한지 쓱 웃었고, 아이는 삐진 채로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아이지만, 맹렬하게 전투하다 지친 상태로 잠들 아이가 불쌍했다. 남편은 또 나와 키득거리며 이야기하다 잠들겠지만, 홀로 누워있을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혼자 가서 토닥이고 싶지 않았다. 함께 전투했던 아빠 병사와 같이 가고 싶었다.

"오빠! 우리 딸내미한테 가서 잘 자라고 해주자. 속상한 마음으로 자는 게 싫어. 얼른 가서 잘 자라고 하고 오자!"


남편은 "그래 가자!"라고 말할 사람이 아니다. 늘 싸움에 있어서 퍼센티지를 고려해서 자신의 잘못의 양이 크다고 판단된 사건에 있어서만 사과할 뿐이다...

그러나 아빠의 자리는 사람을 바꾸었다.


내 손에 이끌려 아이 방으로 가는 남편은 "나 방에 가서 뭐라고 해야 돼?"라고 자문을 구하며 아이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게 길고 긴 거실의 터널을 지난 우리 부부는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아이 방문을 똑똑 두드린 뒤 문을 열었다.

남편은 무뚝뚝한 말투로 "자냐?"라고 물었고, 딸아이는 "잘 거야! 나가!"라고 말하며 뒤로 획 돌아누웠다.

남편도 살짝 마음이 상했는지 "흥~ 잘 자라 그래~ 실컷 자!!! 잘 자라 우리 딸!", 나 역시  "잘 자라~ 우리 딸! 아까 핸드폰 오해는 쏘리"라고 말하며 문을 닫아주려는 그 순간 아이는 다시 획 돌아눕더니


잘 자!


라고 말해준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밝은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이가 뒤따라왔다.

먼저 마음을 건네 준 엄마, 아빠를 그렇게 보내기 싫었던 것일까?

별 중요하지도 않을법한 내일의 이야기를 쫑알쫑알 떠들다 웃으며 방으로 돌아가버린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싸우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밴드를 붙여주는 연습을 한다.

같이 있는데 어찌 고운 말만 나올 수 있을까?

가까운 사람끼리 더욱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것과,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뭐 이런 교과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진짜 실천이 안 된다.

나름대로 '참을 인'을 가슴에 새기며 조금씩 노력은 해 보지만  또 무너지고, 실수하고, 상처 주고, 짜증내고, 화내는 나를 발견한다. 관성의 법칙이 여기도 존재하나 보다.


아이고... 나는 진짜 언제 어른이 될지 모르겠다.
난 39살 되면 정말 어른이 될 거라고 믿었는데...


그래도 나름 '어른 연습'하겠다고 먼저 사과하려고 한다는 것을 아이는 알까?
그래도 엄마로서 옳은 행동이었는지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것을 아이는 알까?


어떤 이는 모두가 힘든 이때에 소리 질러도 괜찮다고, 날카로운 말을 건네도 괜찮다고 말한다.

지금은 엄마가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엄마는 날카롭고 거친 말도 할 수 있지만 먼저 두드릴 수도, 먼저 안아줄 수도, 먼저 사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선 지랄 - 후 사과'를 종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선 지랄이 나왔다면, 후 사과는 세트로 따라와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다음에는 '선 지랄' 횟수도 줄여봐야지...ㅜㅜ
'선 지랄'에는 거친 말뿐만 아니라 째려보는 눈, 짜증내고 미워하는 마음도 포함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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