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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r 13. 2020

남편의 항문은 잠들지 않는다.

다른 남자도 그럴까?

집안 내력인 걸까?

남편은 쉬도 때도 없이 방귀를 뀐다.

작게 "뽕"이런 방귀가 아니다.

지저분하게 금방 물질이 나올 듯한 "뿡~~~~ 삐~뿡~~ 부르르르"


퇴근 후 거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뀐다.

어떤 날은 수십 번을 뀐다.

옷 갈아입으면서, 씻으면서, 양치하면서, 과일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하면서...

아령 들고 운동을 하면서도 마구마구 뀐다. 책을 읽을 때가 진짜 최고다!


한 번은 자다가 방귀를 뀌는데, 너무 소리가 커서 잠에서 깼다.

그냥 "뿡"이 아니라 힘을 주는 방귀였다. "뿡~~뿌르~뿡~~~~~뿡~~ "

마지막에 힘을 준 방귀는 "빵"으로 마친다.

큰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오빠 왜 힘을 줘? 그냥 뀌면 되잖아. 왜 힘주면서 뀌냐고!!!
소리가 너무 크잖아. 놀라서 깼단 말이야!


남편은 눈을 비비며 "미안해... 아니 끝까지 안 밀어내면, 자꾸 나와서... 한 번에 다 뀌려고"


그렇게 16년을 사니 적응할 법도 한데, 적응이 안 되는 것이 해마다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마트 가다 장을 보면서도 살그머니 조절하면서 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뀌고...


본인도 너무 심해지는 것을 느낀 건지 진지한 표정으로

나는 왜 이럴까? 대체 왜 이렇게 방귀가 나올까? 나 장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오래전 EBS 캐릭터 방귀대장 뿡뿡이를 효과음 없이 할 수 있을 만큼 마음만 먹으면 방귀를 뀔 수 있는 사람이다.

방귀소리에 짜증을 낸 어느 날 남편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나야... 나 불쌍하게 생각해줘.
나 회사에서도 이렇게 뀌고 싶어.
근데 꾹꾹 참으면서 일해.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 횟수가 회사에서도 똑같은 빈도라니까~~
그거 힘겹게 참다가 집에 와서 뀌는 거니까... 이해해줘.



불쌍했다...

"그래! 집에서라도 맘껏 껴봐!"


나는 남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집에서 만큼이라도, 내 앞에서만큼이라도 '방귀 프리존'을 만들어 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은 종종  "너는 왜 방귀 안 뀌어? 넌 진짜 신비로운 아이구나"라는 말을 하기에, 프리존 형성을 위해서는 나 또한 괄약근을 풀어 시원하게 남편에게 방귀를 선사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간이 왔다. 방귀가 뀌고 싶었다.

나는 남편에게로 달려가 "오빠! 빨리 내 엄지를 눌러봐!!"

남편은 좋은 거 주는 줄 알고,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내 엄지손을 눌렀다.

나는 아주 큰 방귀이자 끝에 힘을 준 '빵'으로 끝나는 방귀를 선사했다.

그때부터 우리 둘은 방귀 배틀을 했다.

그제야 알았다.

나도...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저 작은 소리로 흘려보냈을 뿐... 

낮에 혼자 꼈을 뿐...

드러나지 않았지... 내 안에 엄청난 '방귀 파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결혼한 지 16년 된 우리 부부는 밤마다 방귀 배틀을 한다.


방귀를 뀌고 싶어도 꾹꾹 참고 아끼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 보란 듯이 한 방 날려 보낸다.


남편도 질세라 힘주는 방귀로~~~

빠바 바바바ㅁㅇㅏ아마 암ㄴㅇ;ㅣㅏ럼ㄴ이ㅏㅓㄹ 빵!


그때 내 깨달음이 틀린 것임을 알았다. 내가 아무리 끌어모아도 저 남자의 방귀 파워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방귀를 트고 나니... 그 소리가 조금은 친근해졌다.

특히나 방귀소리는 남편이 나와 함께 한다는 증거요, 남편이 나를 곁에서 지켜주고 있다는 징표 같았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정말 그렇게 맘먹고 나니, 다른 것에서도 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먼저 우리 집은 유전인지 모르겠지만, 귀가 매우 예민하다.

소리에 민감한 우리 세 자매는 이야기를 할 때면 "귀 앞에서 얘기하지 마"란 말이 가장 빈번했고, 밥 먹을 때 쩝쩝거리기라도 하면 째려보기 바쁘다. 특히 가장 귀가 밝은 큰언니는 TV를 볼 때도 아무도 안 들릴만한 소리로 본다. 심지어 홈쇼핑은 아예 음소거를 하고 보는 여자다.

어쨌든 귀가 예민한 내가 집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아이의 노랫소리였다.

이름 모를 팝송들... 질러대는 노래들... 고음 언저리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을 때면... 정말 참다 참다...

"다민아!!!!!!!!!! 그만 그만 좀 불러!"라고 크게 이야기한다.

(내 기억으로 아이유의 3단 고음 노래가 시초가 되었던 거 같다)


어제도 나는 큰소리로 "야!!! 20분 불렀으면 그만 불러!"라고 말하니 아이는 화장실에서 문만 살짝 열고는

나 이제 2곡 불렀어. 한 곡당 5분 쳐도 길어야 10분이야!


아..... 고음을 듣는 것은 힘든 일이다. 차라리 방귀소리가 낫다.


내가 거친 반응을 일으킬 때면 아이는 말한다.

그럼 난 대체 언제 노래 불러?
난 노래 부르는 게 좋아.
씻을 때도 부르지 마라.
방에서도 부르지 마라.
엄만 너무 이기적이야!!


맞다... 어쩔 땐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내 귀가 싫다....


어느 날 우리 딸아이의 노래를 들을 관객이 한 명 더 늘어난 날이 있었다.

아이가 씻고 있을 때 동네에 사는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이는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씻으며 고음을 맘껏 내지르고 있었다.

"샹들리에~~~~~에~~~~~~"


언니는 계속 웃었다. 언니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이런 말을 했다.

"어머~ 너무 귀엽다. 사람 사는 거 같아서 너무 좋다. 아이 노랫소리가 너무 좋다. 이런 시끄러움이 왜 이리 좋니?"

나는 답답한 마음으로

언니 그건 잠깐 들어서 그런 거야. 맨날 저렇게 흥얼거리는 거 가끔은 엄청 힘들어. 차 타고 어디 놀러 갈 때 1시간씩 부르는 거 상상해봤어? 오죽하면... 남편이 봉고차 사서 맨 뒤에 태우고 싶다고 한다니까!


언니는 그런 내게 다시 이야기했다.

"이렇게 집에서 딸아이가 노래 부르는 걸 듣는 게 얼마나 좋니? 아이가 행복하다는 이야기잖아. 언니는 좋기만 하다! 어이구~ 귀여워라~"


언니가 가고 생각해봤다.

왜 나는 한 번도 저런 생각을 못해봤을까?

사람 사는 거 같은 소리, 행복하다는 멜로디...


반면에 노랫소리로 늘 티격태격하던 우리 모녀...

내가 남편의 방귀소리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내 안에 담아야 할 또 다른 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방귀소리가 나와 함께 하는 남편이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라면...

아이의 노랫소리는 사랑하는 내 딸이 나의 곁에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가 아닐까?

아이의 노랫소리는 사랑하는 내 딸이 아주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나와 함께 한다는 또 다른 징표이다.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나의 곁에 있지 않을 때 그 노랫소리가 그리울 날이 오겠지?

흥얼거리는 소리가 너무 그리워지고, 고음을 내보려고 빽빽 연습하는 소리가 가슴 시리도록 듣고 싶겠지?


자다가 일어나 눈을 비비며 안방 침대로 쏙 들어와 "엄마 좋아!"라며 내 뱃살을 만져줄 날이 얼마나 있을까?


엄마가 더 많이 사랑할게.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고음의 노랫소리,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이 행복해하는 소리로 기억할게.
근데.... 너무 크게 안 부를 거지??^___^
여보 늘 곁에서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당신의 박력 있는 방귀소리 오늘도 기대할게.
나도 많이 모았으니 오늘도 방귀 배틀 콜?


다음엔... 엄마가 나에게 심부름시키는 소리를 담아야겠다.
엄마가 내 곁에 있는 징표로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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