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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pr 16. 2022

벚꽃은 무슨!!

7일간의 격리 치료가 끝나자마자 나는 곧장 이비인후과를 향했다.

"계속 가슴이 답답해요. 숨도 차고요."

의사 선생님은 명쾌하게 대답해 주셨다.

"코로나 후유증이고요. 길면 8주까지 갑니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임시방편의 치료라도 있는지 너무 궁금했기에 말을 이어갔다.

"제가 내일부터 말을 해야 돼서요. 강의를 해야 하는데 한 번 기침이 시작되면 너무 오랫동안 해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전파력 없으니까 그냥 일하셔도 돼요."

"제가 기침이 너무 길어져서..."

"그럼 대한민국 50%는 일 못하고 쉬어야 해요"

"아.... 네...."


마음속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섭섭이'가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아놔... 진짜... 방법이 없으면 그냥 '힘드시겠어요'라고 한마디만 하던가... 이렇게 공감능력이 없어서야...'

천천히 집을 걸어오는데 섭섭이는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 건지 내 마음에 요상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긴... 진짜 그러네... 그냥 해야지 모... 그럼 다 일 못하고 쉬게???"


나는 의사 선생님 말대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코로나 후유증을 가진 사람처럼 기침을 하며 강의장을 향했다. 봄비가 살포시 내리고, 먹구름이 살짝 자리 잡은 이 날씨, 여행 가기 딱 좋은 날씨로 내가 좋아하는 날씨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 앞 벚꽃 맛집 길로 들어서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가 좋아하는 봄비는 풍성했던 벚꽃잎을 온통 흔들어 내 머리숱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는 벚꽃나무를 만들어 놓았다. 휑해진 벚꽃 나무를 보며 요즘 걸핏하면 등장하는 '섭섭이'가 또 소환되었다.

섭섭이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지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고는 떠들어댔다.

"나는 벚꽃 구경 한 번도 제대로 못했는데 격리하는 동안 꽃잎이 다 날아가버렸어. 사진도 한 번 못 찍었는데... 진짜 억울해!!!"

큰언니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꽃은 내년에도 펴. 꽃타령하지 말고 몸이나 잘 관리해서 얼렁 나아. 그렇게 꽃 보고 싶으면 에버랜드 가면 되잖아! 튤립축제 보러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왜 이리 익숙한 답변처럼 느껴지는 걸까?

'아 맞다!! 어제 공감능력이 없다고 투덜거린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 같은 느낌인데~~~'


나는 '공감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상한 순간에도 마음을 헤아려주는 한 마디를 들으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마음의 묵직함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할 때면 '상대가 가진 감정과 느낌을 '그럴 수도 있겠다'며 기꺼이 수용하고 이해하려는 상태' '공감'을 강조한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참고)


그런 내가 요 며칠 공감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앞에 묘하게 설득되고 있다.

'기침해서 어째~~ 이래서 일이나 할 수 있을까?'라며 침울했던 내가 "맞다! 많은 사람들이 후유증으로 고생하는데... 그래 이겨내야지!!!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마음을 바꾸고는 씩씩하게 강의장으로 향했다.

'올해는 벚꽃 보면서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집에서 격리하다가 끝났잖아!'라며 울적했던 내가 "꽃이 벚꽃만 있나~~ 에버랜드 가서 꽃 사진 왕창 찍으면 되지 뭐~~~" 그리고는 신나는 노래를 틀며 운전대를 부여잡았다.


내 아픔, 내 힘듦, 내 속상함, 내 답답함 앞에서 그 순간 위로가 되지 않았던 말들.

'공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 말들은 내게 익지 않은 과일처럼 시고 떫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말들이 내 안에서 후숙이 되었는지 어느덧 달콤함과 시원함으로 내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간 내 마음을 몰라주는 한마디에 서운함을 토로했다.

도대체 아군인지, 적군인지 정체를 밝히라며 상대를 몰아세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억해보려 한다.

'상대의 말이 내게는 덜 익은 과일임을...'

'내 마음의 시계가 서서히 흐르면 그 말이 나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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