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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n 04. 2022

시계 좀 그만 봐!

'아주 턱이 빠질 거 같아. 8시간 열변을 토했다면 목이 아파야지 왜 턱이 아프냐고!! 앉아서 강의했는데도 달리기 한 것처럼 지치고 피곤해...'

그렇게 혼잣말을 투덜거리다 침대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30분이나 잤을까... 급속 충전에 탁월한 나는 언제 졸렸냐는 듯 벌떡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천변으로 나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유난히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내 옆에서 달리던 남편은 벌써 저 멀리 떠나갔고, 느릿느릿한 나는 내 옆을 질러가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신기하게도 달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손목을 들어 자신의 시계를 틈틈이 확인하기에 나는 운동을 마친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도 달릴 때마다 계속 시계 보잖아~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봐?"

"속도가 궁금해. 그리고 심박수는 괜찮은지, 거리는 얼마큼 뛰었는지, 1km 몇 분에 찍었는지~ 다 페이스 조절하려고 보는 거야~"라고 말하며 남편은 쓰윽 땀을 닦는다.


우리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매일매일 스스로를 확인한다.

'오늘 몇 보를 걸었는지'

'체지방은 얼마인지'

'칼로리 소모는 어느 정도 했는지'

특히나 남편은 이른 아침 자신이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에 내가 깨는 것이 미안하다며 손목에 찬 워치의 진동으로 일어나겠다며 잘 때에도 시계를 꼭 차고 잔다. (이 스윗함 어쩔~~)

반면에 나는 잘 때만큼은 시계를 풀어야 한다. 다른 건 없다. 잠잘 때 이 시계를 차면 하루 내내 피곤해지는 아주 이상한 현상이 있었으니...

"아~~~ 잘 잤다~~ 오늘의 수면 점수 체크 좀 해볼까??? 어!!! 뭐지? 오늘 잘 잔 거 같은데... 왜 57점 밖에 안되지? 이상하네..."

별생각 없이 확인한 수면 점수는 그날 하루 내내 나를 피곤함에 가둔다.

"아 피곤한 거 같아... 맞다!!! 오늘 수면 점수가 안 좋지~ 그래서 피곤한가 봐..."

잘 잤다고~ 개운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아주 '피곤해'가 입에 달라붙은 나를 보면서 잘 때는 시계를 차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내가 개운하면 개운 한 거고, 잘 잔 거면 잘 잔 거다.'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믿는 대로 살아가고 싶지 그깟 숫자에 나를 묶어두고 싶지 않았다.

나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알리 없는 남편은 "거 봐 거 봐~~ 또 사놓고 잠깐 좋아하고 안 끼는 거야? 요거 당근에 올리겠네~ 여보 원래 필요하다고 사놓고 헐값에 파는 거 전문이잖아?"라는 말들로 내 신경을 건드린다.

"쫌!!!! 잔소리하지 말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번엔 아니라고!!! 수면 점수 알고 나면 괜히 더 피곤하다고!!!!(이 새끼야!!!) 내가 왜 피곤한 지 이야기해줄게~ 들어 봐!!"


남편은 나의 깊은 생각에 고개를 끄덕끄덕이더니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나도 동의해. 우리 전에 MBTI 검사한 적 있잖아. 나는 I 잖아. 내향적인 I...  근데 나도 가끔 회사에서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해야 될 때도 있고, 뭔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될 때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맞아.. 난 I 지... I 니까 그냥 이렇게 있어도 되지 뭐...' 이러면서 아무런 노력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거기에 숨어버리려고 할 때가 있어..."


나를 알고, 나의 제한점을 극복해보고자 했던 것들이 가끔은 나를 제한시키고 있었다.

'나는 I라서...'

'나는 원래 이래서...'

'나는 이것밖에 안 해서...'

'나는 이걸 배워서...', '나는 이걸 배우지 않아서...'

그랬다. 나를 명확한 수치 혹은 단답형의 정의 안에 넣어두면 때로는 편안하고, 때로는 안전했으며, 때로는 불편한 상황 앞에서 '그래서 그렇지 모'라는 말로 모든 것이 쉽게 설명되었다.


-나는 그간 어떠한 정의로 나 자신을 묶고 있었을까?

-나는 오늘 어떠한 정의로 나를 제한하고 있었을까?

어제 내가 했던 한 마디가 떠오른다...

'저는 원래 게으른 사람이라...'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하는 말인지...  내가 편하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

한 번쯤 고민해보다가 시계를 벗어던진 것처럼 그 말도 서서히 던져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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