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Mar 18. 2020

사회성을 키우라고요?

나는 개를 키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우리 집에 온 작고 여린 강아지는 고작 열흘 우리와 함께 하고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엄마, 내가 멍순이를 제대로 못 안아줘서 죽은 거 같아. 내가 무릎에서 살짝 떨어뜨렸잖아."라며 아이는 한 동안 울먹거리곤 했다.

나는 "아니야... 멍순이는 장염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었어. 니 잘못이 아니야. 아파서 울 때 엄마가 빨리 병원 데려갔어야 하는데... 그냥 엄마 보고 싶어 우는 건 줄 알고... 다 엄마 잘못이지..."

딸아이와 나는 얼마나 울었을까... 아직도 그렇게 떠난 멍순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시큰하다...


쓸쓸히 가버린 '멍순이'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 아이와 나는 매일 개를 키우고 싶다고 남편을 졸라댔다.

'외동인 아이가 외롭다고', '정서에 좋다고' 오만가지 이유를 대며 3년여의 설득 끝에 우리도 다시 개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개를 만나기 전부터 딸아이와 나는 기도를 했다.

제발 건강한 개를 저희에게 보내주세요.
또 아프면 정말 견디지 못할 거예요. 제발 제발!!!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건강한 강아지 하나면 돼요! 우리와 오래 함께 할 건강한 강아지요...


그렇게 사랑이는 우여곡절 끝에 우리와 함께 하게 됐다.

기도가 통한 것일까?

개는 너무 건강하다. 수의사 선생님도 우리 개를 보시더니, 상위 3% 개라고 인정할 만큼 건강하다.

나는 기도가 이렇게 명확하게 전달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우리 개가 이렇게 건강만 탁월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걸....

사랑이에게 많은 것을 바랬던 것은 아니다. 그저 똥오줌 정도만 가리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TV에 나온 '강형욱'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모든 것이 개 잘못이 아닌 다 견주인 내 잘못으로 느껴져, 8살 사랑이에게 더이상 바라지 않기로 했다.


포기를 선택한 나는 감사가 늘었다. 외출 후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랑이가 바닥에 오줌을 싸놓지 않으면, "와~ 사랑이가 선물을 줬다"며 너무나 행복하다.


반면 남편은 똥오줌을 치우며

사랑이 새끼 때문에 마룻바닥이 썩었어. 집값만 떨어지게 생겼네.
뭐하나 유익한 게 없어. 내 인생에 가장 큰 실수가 있다면 여보가 조를 때 끝까지 못 버틴 거야. 왜 분양을 받아가지고... 아휴

남편은 사랑이가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백해무익하다며 우리 개 사랑이를 '담배'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담배야~~~~"

그런데... 미운 정도 쌓였는지, 마트에 가면 개 간식부터 사고, 낮잠을 잘 때면 꼭 옆에 두고 잔다.


사랑이에 대해 더욱 이야기하자면 '성격'을 빼놓을 수 없다.

똥오줌은 포기했다 쳐도...  잠잘 때 만지기라도 했다면... 늘 송곳니를 내민다.

처음에는 뭐 이런 개가 있나 싶어 예방 접종을 하는 날, 병원 원장님께 심각성을 토로했다.

원장님은 자신이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자신의 두꺼운 허벅지 사이에 사랑이를 집어넣고는 옴짝달싹 못하게 꽉 압박시켰다. 힘을 꽉 준 채로 원장님은 말했다.

개의 본분은 사람과 함께 하며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건데,
복종시키려면 서열을 알려줘야 됩니다.

나를 바라보며 자신을 꺼내 달라고 발버둥 치던 사랑이는 지쳐버렸는지 힘을 쭉 풀어버렸다. 그리고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그저 주눅 든 채로 앉아 있었다.


나는 이론적으로 무엇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우리 개가 누군가를 위협한다면 나 역시 사랑이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병원에서 발버둥 치다 기가 확 죽은 사랑이를 보았을 때는 '이건 아닌 거 같아...'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사랑이는 사랑이대로, 나는 나대로 즐겁게 살기로 했다.

어쩌면 작은 몸뚱이로 나에게 '으르렁'하고 짜증을 낸다는 건 "엄마 나 좀 귀찮게 하지 마! 나 자는 거 안 보여?? 자고 이따 놀자고!!!! 나 좀 편하게 둬!"라고 본인의 의사 표현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나는 그 짜증도 귀여워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곤 한다.



나의 지인 중에는 동물에 대한 무한 사랑을 갖고, 유기견 20마리를 돌보며 살아가는 자칭 '개엄마'가 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온 '개엄마'를  사랑이는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며, '개엄마'의 무릎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개들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일까?'

한참을 '개엄마'와 부비부비 하며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


사랑이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소파 끝자리)


'개엄마'는 내공이 가득한 목소리로

아... 사랑이는 터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개구나...
개들을 보면 쫓아다니면서 만져달라고 하는 애들도 있고,
시크하게 인사 한 번 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애들도 있어.
어쩜 이렇게 개들이 성향이 다 다른가 몰라.
사랑이 반갑게 인사하더니 이제 쉬러 갔네. 사랑이는 그런 개야...


사랑이는 그런 개였다.

떨어졌다 만나면 잠시 반가워해주고는 바로 자기 자리로 가던 개.

쉬고 있을 때는 누가 만지는 것이 싫었던 개.

그리고 자신의 쉼을 방해하면 싫다고 말할 줄 아는 개였다...


맞다. 나도 경험했다.

내가 '개 엄마'네 놀러 갔을 때, 몇몇 마리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개로 나를 보자마자 벌러덩 바닥에 들어 누워 자신을 만져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으며, 몇몇 마리는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얼굴을 바라보며 반갑다고 인사했다. 또 몇몇 마리는 '너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관심 없다'며 마이웨이를 외치고 다른 친구랑 놀기 바빴고, 또 몇몇은 내가 궁금했지만 쉽게 경계심을 버리지 못하고 저 멀리서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개들도 이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공부할 때도 사랑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옆에 앉아 있는다.

그녀를 만지고 싶어 손을 내밀 때면 나에게 찰싹 달라붙는 것이 아닌, 고개만 나에게 향해주는 정도이다.


그리고 발만큼은 절대 만지지 말라며, 손을 가져다 대면 앞발 관절을 다 접어버리는 그런 아이다.


사랑이는 그렇게 자기만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이 뿐이겠는가?


사람도 각자 다른 자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고, '다양성'이라고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머리로만 받아들였음을 깨달았다.


나 역시 상대를 알기도 전에
지금 상황에서 그런 모습은 적절치 않다며, 수의사 선생님이 사랑이에게 하듯 상대를 억압하고, 짓누르고, 강요하진 않았을까?
(했을 것이다.)


사랑이를 '성격이 별로인 개'라고 말하듯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해 온 모습과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나 또한 상대를 '성격이 별로인 사람'으로 단정지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그랬다.)


강의를 요청받아 기업에 가면 종종 무언가를 요구하는 담당자들이 있다.

"좀 사람들이 밝고, 활기차게 변했으면 좋겠어요. 서로서로 표현도 많이 하면서..."

이처럼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선호하며 한 방향을 내세우곤 한다.

'사회성이 좋은 사람, 외향적인 사람' 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것들을 획일적으로 은근슬쩍 강요한다.


물론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도 있다.

불편해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또 내가 좀 더 손해 볼 때도 있으며, 내 마음을 따뜻하게 표현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거기까지만 사회성으로 인정해주면 안 될까?

대체 어디까지가 사회성일까?


-사회성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적이 없으며, 타인으로부터 무한한 존중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일까?
-모두가 다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일까?
-친구가 많아야 할까?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하고, 나와 함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하는 것일까?
-또는 무한한 립서비스가 그치치 않아야 하는 것일까?  대체 어디까지일까?

사회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진 않았을까?


난 우리 집 사랑이를 보며 남편 생각이 났다.

밖에선 늘 말수가 적고, 앞장서서 나서기 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따르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대학 선배들과 술 한잔 한 뒤에 나에게 와서 토로했다.


형이 나처럼 사회성이 부족한 애가 회사생활 어찌할지 엄청 많이 걱정했대.
회사에 잘 적응하고 다니는 거 보면 너무 신기하대...
내가 사회성이  그렇게 부족한가??

나는 말하고 싶다.

그건 당신 기질일 뿐이라고, 사랑이처럼 혼자 있는 것이 편할 뿐이라고.

그런 모습을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결론 내리지 말라고...

"당신, 충분히 배려심 많은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사랑이에게도 말하고 싶다.

사랑아... 건강해서 고마워...

넌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넌 사랑이야.

그냥 넌 사랑이야.

그냥 넌 사랑이야.




   


작가의 이전글 비련의 여주인공, 행복을 맛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