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부터 수박 중량 맞추기 행사를 2층 노브랜드 매장 앞에서 진행하오니~~~ 맞추는 분께는 수박을~~~"
방송에서 나오는 소리에 눈이 커진 우리는 곧장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예나 지금이나 대회만 보이면 온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우리였기에 여러 상품들을 득템하곤 했다.
풋풋한 대학생들을 위한 대학 축제 기간 중 28살 대학원생 아줌마는 막춤과 함께 트로트를 불러대며 아웃백 상품권을(지금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마트에 가서는 윷을 던져 압력 밥솥을. 체력으로 싸우는 게임에서도 젊은 우리 부부는 1등을.
이번 수박 대회에는 20명의 참가자가 있었다.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상황에서 한 살이라도 젊은 남편의 쌩쌩한 촉이 발동해 공짜로 수박을 먹어보길 기대했다. "여보!!! 화이팅!!!"
모든 참가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박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펼쳐놓은 종이에 중량을 적어낸다. 행사 진행자는 중량이 적힌 종이를 한참 보더니 12.5kg을 적어낸 두 명의 어르신을 불렀고, 무게를 똑같이 쓰면 안 되니 뒤에 소수 자리라도 다르게 쓰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뭘 굳이 소수점 뒤에 두 자리까지 다르게 하라는 거야?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은 오버였다.
두 분은 정확히 12.5kg의 무게를 맞추었고, 결국 뒤에 소수점 자리가 가까운 분이 수박을 가져갔다.
남편은 똥촉이었다.
'10.52kg이 웬 말인가?!!!'
그래도 참가상 보냉백을 들고 오던 우리는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매주 토요일 2 시래. 기억하자!"는 말로 다음을 기약한다.
나는 지나간 이 일에 대해 글을 쓰며 남편에게 말하고 싶다.
"그깟 수박 무게가 대수야? 여본 더 대단한 일을 했잖아~~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오빠의 베필인 나를 정확히 찾았다고! 이미 그것만으로 K.O. 야!"
-어떻게 수많은 사람이 접속한 인터넷 세상에서 남편과 내가 만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1998년 2월 23일 같은 시간에 접속을 했고, 그가 만든 방을 클릭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파란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하얀 글자만으로 서로에게 끌릴 수 있었을까?
사람이 만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미치도록 사랑하며, 결혼을 하고, 함께 산다는 것.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 혹은 가정을 이루고 있는 모두가 엄청난 선물을 받았고, 그리고 그 선물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질 때가 있으니...
"내가 그때 채팅을 괜히 배워가지고!!!!"
"예나 지금이나 컴퓨터가 애들 다 망쳐놨다니까!!!"
마음이 상할 때면 '전 우주의 도움으로 만난 남편은 개뿔!' 달려가서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여보랑 결혼할 거야!"라는 말을 했던 내가 1분도 안돼서 가슴에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넣는다. 그리고는 혼자 살게 될 원룸을 꿈꾸고, 어떤 가전제품으로 그곳을 채워 넣을지 상상해본다.
나란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다.
다행히 간사함에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아서인지 5분만 지나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행복'을 갈망한다.
'우리가 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어떻게 만들어 낸 가정인데, 얼마나 소중한 가정인데...'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불행한 이 시간을 우리의 인생에 많이 내어주고 싶지 않은 나는 남편에게 다가가 본다.
"여보... 우리 화해하자... 나도 아까는 많이 서운해서 그랬던 것 같아... 미안해... 오빠는 어디에서 기분이 나빴던 거야?"
누군가는 굳이 그걸 다 말로 하냐며 나의 모습에 의아해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내가 좋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순물을 섞고 싶지 않은 마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순물을 덜어내기 위한 노력.
이러한 정제 과정을 마치면 나는 또 간사한 여자가 된다.
"아까 오빠 너무 싫었는데, 나 이제 또 오빠 엄청 사랑해!"
언젠가였다. 남편은 운전을 하다가 내게 말을 꺼냈다.
"나는 행복해. 나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어. 만족해..."
고마웠다. 매일 모든 순간이 행복한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애를 쓰고 있다.
물론 실수도 한다. 왜 당신 입장만 생각하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게다가 24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은 내게 "야! 뭐 하는 거야?"라며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말도 하기 싫은 나는 남편을 꼬집고 물기도 했다. 이 뿐인가... 말이 안 통한다며 문을 닫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만 이야기하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체력이 좋은 남편은 한 시간 동안 본인 입장만 내세우기도 한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시간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여기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을...
서로에게 받은 상처가 우리의 사랑에 불순물이 되지 않게 반드시 '대화'를 이용한 후속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팠던 부분을 드러내어 곪은 곳은 짜고, 상처난 곳에 약을 바르는 시간들. 마음에 응어리가 되지 않도록 보듬어 주는 시간이 우주가 만들어 준 대단한 인연을 가꾸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자존심을 내려놓는 시간.
-부끄러움도 내려놓는 시간.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간.
-상대의 아픔을 기억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간.
이러한 시간들이 소중한 인연으로 시작한 우리의 가정을 견고하게 버텨내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나는 애쓰며 살아가고 싶다.
'내 인연을 가장 배려해주는 사람으로, 가장 아껴주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