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Feb 28. 2020

한 번만 용기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네이버 지역 카페에 들어가 보면 온통 확진자 동선과 '집콕'으로 아이들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낙심하지 말자며,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아 종종 들리게 되는 네이버 카페...


오늘 본 글 중에는 시댁 식구로 인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글을 볼 수 있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아들이 사는 동네에 확진 환자가 나온 것을 본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서


1. 조심하고 나가지 말아라

2. 아들은 홍삼을 먹여라

3. 라면 말고 밥을 먹어라

분명 한 번에 받은 스트레스는 아닐 테고... 시아버지의 잦은 잔소리로 많이 힘들었는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던 말속에서 꾹꾹 참아내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 2, 3번 중에 나는 홍삼이 제일 서운할 거 같다.

물론 며느리가 딸이 될 순 없지만, 그래도 대놓고 본인 자식만 챙길 때면 나 역시 서운할 때가 있다.


며칠 전 남편의 생일에 외식하라며 시어머니는 10만 원을 보내셨다.

매번 며느리 생일도 잊지 않으셨는데 작년부터는 기억도 안 해주시고 아들 생일에만 돈을 보내는 어머니가 조금 얄미웠다.

난 남편에게 "오빠!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 생일도 안 챙겨주는데, 나도 이제 어머니 생일날 안 가면 안 돼? 흥..."

남편은 여우처럼 "이게 너 밥하지 말고, 맛있는 거 사주란 뜻이야!"라고 말한다.

그 말에 나는 맛있는 돼지고기를 생각하며 금방 서운함에서 벗어났다.


사실 나는 결혼초에 시어머니가 참으로 미웠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서 나의 마음을 만신창이가 되게 하는 엄청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10년이 지나고 15년이 지나니... 서로를 알고,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이제는 어머니가 좋다. 가끔 나도 모르게 '엄마'라고 부르고 놀랄 때가 있을 정도로 편안하다.

이렇게 어머니를 좋아하는 나에게 오늘 어머니는 전화로 내 마음에 작은 스크래치를 냈다.

홍삼과 비슷한 이야기다.


"한나야. 코로나 바이러스에 생강이 그렇게 좋다더라. 오늘 가서 생강을 사서 잘잘하게 썰어서 물에 팍팍 끓여라.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40분 끓여서 XX(남편) 회사 갈 때 마우병에 담아 꼭 보내라. 생강 냄새 때문에 바이러스가 못 온대"

친절한 나는 "어머니 그래요? 그게 그렇게 좋아요? 오늘 가서 사야겠네!!"라고 내 입은 떠들고 있었지만, 이놈의 서운함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내 머릿속은.....'아들만?... 우린 없는 건가요?'

하지만 나의 서운함은 결코 머물러 있는 법이 없다. 스멀스멀 올라와 입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어머니! 오빠만 바이러스 걸리지 마요? 나랑 다민이는? 왜 오빠만 먹으라고 해~~~"


그렇게 2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고, 수화기 너머로는 어이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야! 그게 너희도 먹으라는 이야기지. 왜 XX만 먹으라는 거니? 다민이랑 너랑 꼭 먹어."

신기하게 이 한마디에 내 마음에 난 스크래치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속이 시원했다.

근데 나만 시원하고, 어머니는 불편함을 느꼈는지 또 전화가 왔다.

"껍데기 까기 힘들면 대충 씻어서 해도 돼. 매우니까 배 있으면 같이 넣고! 꼭 너랑 다민이도 먹어라! 너도 꼭 먹어! 다민이도 먹이고! 꼭 먹어!"


분명 어머니는 나한테 민망하고 미안했던 건지 '너희도 먹어라'라는 이야기를 세 번은 반복하셨다.

매번 하고 싶은 말을 쉬지 않고, 담아두지 않고 터트리는 며느리가 버거울 텐데, 나를 보듬어 안고 가려는 것을 이제는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서운함을 참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냥 "네... 네" 하고 전화를 끊게 되면 서운함이 시간 단위로 점점 증식해 어머니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해봐서일까?

난 어머니를 미워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보여드리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물론 성질이 급해서 입이 먼저 열어진 것도 있지만...

반면에 그 입이 먼저 열어졌기에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를 미워할뻔했어. 미워지지 않아서 다행이야'라며 말이다.


그렇게 나는 퇴근한 남편을 데리고 생강을 사러 갔다.

남편에게 생강을 손질하라고 시킨 뒤 나는 예쁘게 사진을 찍어 어머니에게 전송했다.      




카톡이 서투른 어머니는 바로 전화를 해 웃으시며 말했다.

"그래. 그거 넣고 팍팍 끓여서 다 같이 먹어! 너랑 다민이도!"

난 대답했다. "오빠 회사 갈 때 꼭 챙겨 보낼게요. 나도 다민이도 먹고!"


어쩌면 이렇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인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살다 보면 솔직함을 드러낼 수 없는 관계도 많았기에...

잘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는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별 아쉬움 없이, 서운함 없이 지낼 수 있는 관계들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기대조차도 않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허나 유난히 서운하다면, 그것이 가슴에 저리도록 남는다면  그 관계는 분명 평범한 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따스한 마음과 사랑을 나누어야 할 관계 또는 그런 마음을 나누고 있었던 관계일 때가 많다.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살뜰히 챙기던 관계에서 상대의 작은 말과 행동이 내 맘속에 서운한 마음으로 남을 때가 있다.

그래도 그 간에 좋은 기억들이 있었기에 서운함을 잠시 묻어놓고 아무 일 없던 거처럼 일상을 살아낸다...

그렇게 아무 일 없었던 거처럼 관계를 유지하다  간혹 서운함을 만들었던 비슷한 일들이 또 일어나곤 한다. 

그 순간에는 지금의 서운함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에 묻어놨던 서운함까지 소환해 시간별로 줄을 세운다. 

그리고는 내 머릿속으로 '그때도 그러더니... 또 이러네.  왜 저래? 진짜....'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줄 맞춰 세워놓은 서운함은 그들끼리 똘똘 뭉쳐 분열을 일으키고 

더 이상 서운함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짜증, 미움, 분노로 바뀌었던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결정을 한다.

1. 그 사람과 안 본다.

2. 거리를 둔다.

3. 표현한다.


난 소심한  트리플 A형으로 늘 1번과 2번을 택했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3번도 즐겨한다.

다만 3번은 예쁘고, 감정적이지 않고, 진정을 담아 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아이다.

때로는 그것이 어렵지만, 좋은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선 필요하다.


가끔은 얄밉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한 동네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최근에 3번을 사용했다.

그 친구는 이상하게 남을 잘 시킨다. 

내가 편한 건지 모르겠지만 잦은 심부름을 편하게 시키는 친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엔 섭섭하다 못해 짜증이 나고 꼴 보기 싫었다.

거리를 두는 2번을 쓰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3번 작전을 쓰기로 결심했다.


친구는 쉽게 "뭐 좀 알아봐 줘"라고 이야기할 때 난 똑똑히 말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올 거야. 니가 알아봐. 나도 바빠서..."

그것뿐인가? 나는 웃으며 "너 어렸을 때 부자였어? 집에 시중드는 사람 많았지? 왜 이렇게 사람을 부리냐!!!! 난 나 귀찮게 하는 거 싫어~~~~~"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니 친구가 "손 많이 가게 해서 미안해. 난 니가 귀찮다고 생각할 줄 몰랐어."


그렇게 친구는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살 때도 큰 통에 한 가지 맛만 담는 나를 보면서 "역시 한나 성격 나오네. 침범하는 거 싫어한다니까... 나도 조심해야지!"


그렇게 우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딱 한 번만 용기 내서 내 마음을 알려주면 어떨까? 

작은 서운함이 분노가 되기 전에....

그리고 소중한 누군가를 잃기 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