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왠지 가족이 다 같이 저녁을 먹어야 될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셋은 모여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수다를 떨었다.
딸아이는 오늘의 수다에 '노란 불' 표정으로 진입했다.
아빠! 안방에 화장실이 있는데 왜 꼭 내 방 옆에 있는 화장실에서 똥 싸?
나 진짜 아빠 끙끙 거리는 소리 때문에 깨고,
잠도 못 자서 오늘 컨디션 별로였어!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오빠! 근데 왜 똥 쌀 때 끙끙거리는 거야? 나도 진짜 이해 안 가. 그냥 싸!!"
남편은 한숨을 쉬더니....
야... 너희들은 싸고 싶을 때, 마려울 때 편하게 싸겠지.
나는 회사 가기 전에 버스에서 마려울까 조마조마하거든.
그래서 먼저 싸고 가려고 밀어내느라 힘주는 거야.
아 진짜.... 나도 힘드니까 끙끙거리지.
진짜 생각할수록 더러웠다.
딸아이는 다시 "그럼 안방 가서 싸!"
남편은 조금 수그러드는 목소리로 "거기 추워...."
아... 밥 먹기 전까지 이런 대화가 이어져야 되나 싶었는데 남편이 뭔가 하나 건수를 잡았다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 아침에 똥 싸려는데 진짜 더러워서...
변기 뚜껑 여는데 노란 물 누구야?
누가 오줌 싸고 안 내렸어?
난 확실히 아니다. 물을 진짜 잘 내린다.
그때 딸아이가 "아빠~ 내가 자기 전에 오줌 쌌어. 근데 엄마 아빠 피곤하다고 10시부터 자는데 내가 혹시라도 물 내리는 소리에 깰까 봐 뚜껑 닫아놓은 거야. 내가 배려한 거거든!!!"
평소 배려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본인이 배려한 것임을 똑똑하게 알렸다.
아이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겠지만, 남편은 어이없어하며
야 그런 배려는 넣어둬.
아침에 변기 뚜껑 열자마자 노란 물 있는데 더러워 죽는 줄 알았어.
쓸데없는 배려하고 있네.
진짜 배려는 물을 내리는 거야!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넌 정말 쓸데없는 배려를 했다. 다른 걸 잘하는 게 좋겠어."
내가 거들어서일까? 지원군을 얻은 남편은 치사하게 지난 일을 꺼냈다.
"자고 있을 때 문 확 열 때는 언제고~"
2:1의 싸움은 이길 수 없다.
아이는 그렇게 따발총에 패했고, 우린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내가 지금 이렇게 더러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집에 와서 변기를 보는데 마음이 시큰해졌다.
아이는 내릴까 말까 내릴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을까?
아마도 고민했던 이유는 화장실이 가까운 방을 쓰고 있는 본인이 물 내리는 소리에 종종 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살며시 변기 뚜껑을 덮었던 것이다.
덧붙인 설명에 의하면 냄새가 날까 싶어 화장실 문도 조심스레 닫아놨다고 이야기했다.
그토록 고민하고 고민했던 아이의 작은 배려는 누군가에게 '해결되지 않은 더러운 노란 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배려로 결론이 나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배려하려는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릴 적 일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오기 전 주방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엄마를 놀래켜주고 싶었다.
설거지만 했으면 되었을 것을 오지랖이 발동해 나름대로 주방을 정리했다.
그 당시 인테리어를 바꾸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나는 엄마가 요리하기 편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야심찬 각오로 부엌에 큰 변화를 주었다.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인테리어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감동을 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던 티브이 속에 아줌마와는 다르게 본인 스타일이 있는데 불편하게 바꿔놨다고 오만 짜증을 냈다.
하긴... 엄마는 나에게 사연 신청을 보낸 건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만, 그때는 참.... 속상했다.
누군가를 향한 배려가 퇴색될 때가 있다.
쉽게 말해 내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욕먹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이토록 배려는 각 개인마다 기준이 다양해서 참으로 어렵다.
물론 '보통의',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라는 말로 대략 통하는 것들도 있지만,
지극히도 자신의 경험에 준해서 만들어지기에 상대랑 안 맞으면... 결과는 뻔하다.
그래도 우린 대화라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갖고 이 같은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있다.
"엄마 아빠 깰까 봐... 물 안 내렸어."라는 말처럼...
"엄마 주방 깨끗하게 해 주려고 내가 정리했어."라는 말처럼...
그 말을 들었다면 한 템포 쉬어가면 어떨까?
배려의 기준이 달랐음을 알아차렸다면 이제는 내가 나의 배려 기준을 알려줄 차례이다.
"엄마 아빠 깰까 봐 배려해 준 마음은 고마워. 근데 엄마 아빠는 잠자면 안 들려. 그러니 아침에 변기 뚜껑 열고 놀라지 않게 물은 내려줘."라고 말이다.
하나 더 해본다면 "아빠가 끙끙 거리는 소리에 너가 깰 줄은 몰랐어. 이제 입술 질끈 깨물고 조용히 싸 보도록 노력할게."
각자가 다른 상식의 기준과 배려의 기준을 대화로 조율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연습을 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란 사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과정을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이는 '부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