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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an 06. 2023

이런 감성파괴자 같으니라고!!!


"이번 주 세일은 뭐야??"

나보다 7살이 많은 큰언니와 장을 보러 온 나는 언니에게 세일품목을 물었다.

언니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야야~~ 프라이팬 세일한다~~ 달걀 프라이 4개 하는 거~ 이거 비싼 건데 싸게 파네~~"

출처: 코스트코 온라인몰

백반집에서 식사를 할 때면 밥 위에 동그랗게 올라가는 달걀 프라이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전단지에 눈길이 갔다. '4개의 달걀을 동시에!!! 그것도 예쁘게 조리할 수 있는 프라이팬이라...'

달걀 프라이의 고소함을 떠올리기도 전에 내 마음에는 슬픔이 밀려왔다.

"언니... 난 어차피 필요 없어... 사면 뭐 해... 다민이 유학 가면 오빠랑 나 달랑 둘인데... 어차피 쓰지도 못하잖아"

순식간에 먹구름이 되어버린 내 마음...

이런 나를 향해 "어이구... 다민이 보낼 생각에 서운하구나..."라고 말할 법도 한데... 큰언니는 늘 한결같다.

"웃기고 있네! 야 네가 밥 먹을 때 달걀 프라이를 하나만 먹어?"

내 마음에 찾아온 먹구름은 감성파괴자의 소나기 같은 한마디에 바로 사라진다. 그리고는 좌뇌의 기능을 활용해 평소 달걀 프라이는 인당 두 개씩 먹었다는 것을 떠올렸고, 언니의 놀라운 통찰력에 소리 내 말했다.

"와 대박... 왜 그걸 잊었지. 오빠랑 둘이 밥 먹을 때 달걀 프라이 4개 먹잖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프라이팬 사고 싶다... 한 번에 4개라니~~"


그렇게 장을 보고 곧장 집에 가는 것이 아쉬웠던 우리는 커피숖으로 들어갔다.

아줌마들의 주제는 한결같다.

'오늘 저녁 뭐해먹지???'

요즘의 나는 업무 특성상 비수기를 맞이한 관계로 집에서 밥을 해 먹었고,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언니! 진짜 밥 시간되면 누가 딱딱 밥 좀 해주면 좋겠어~ 아주 밥 하기 싫어!"

언니 역시 대학생 딸이 방학을 맞이해 집에 있는지라 밥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울 것인데... 또 내 머리를 강타하는 한마디를 던진다.

"실버타운 곰방 간다..."

'아놔... 진짜... '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언니 mbti검사 제대로 한 거 맞아?  F가 공감과 감정을 우선시한다는데 언니가 F라고?? 언니는 아니야! 진짜 감성파괴자 같으니라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일했을 남편이 안쓰러웠고,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도토리묵을 무치고, 건강에 좋은 브로콜리를 데치고, 식탁을 빛내 줄 냉동식품을 에어프라이어로 데워 예쁘게 접시에 내놓으니 큰 일을 한 것만 같았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뻐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오늘 저녁의 행복은 이것만으로 족했다. 반복되는 집안일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끼니때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번거로웠지만... 감성파괴자의 말 덕분에 '언젠가는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그렇게 즐거이 앞치마를 입었다. (오늘 밤 행복 제작자는 단연 '감성파괴자')


오늘따라 지난날 감성파괴자가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딸아이의 게으른 행동을 보며 속이 터져갈 때면

"야! 다민이가 누굴 닮았니? 너야! 너랑 똑같아!!! 알아 몰라?? 그냥 둬."

입시 결과로 마음의 불안함이 차올라 부정적인 상상을 하며 힘겨워할 때면

"입방정 떨지 마. 될 일도 안돼."

 무협 영화에 소리 없이 바람을 타고 내려와 긴 칼로 단 번에 악당을 물리쳐버리는 고수 같은 그녀. 그녀 덕분에 나의 불안함, 슬픔, 분노는 부풀어지기도 전에 칼에 싹둑 잘려나간다.


오늘따라 공감과 감정을 우선시한다고 빠득빠득 우겨대는 F언니의 '싹둑 공감법'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언니의 진심을 알기에... 그 어떤 순간에도 내 마음을 위로해 주려는 언니의 진심을 느낄 수 있기에...'


내가 집에서 밥도 못 먹고 급하게 일을 할 때면 조용히 찾아와 "신경 쓰지 말고 일해. 밥만 차려놓고 갈게. 다하고 편하게 먹어."라며 세상 무뚝뚝함으로 따뜻함을 꺼내는 그녀라서...

때로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내게 "마음이 아프다... 언니가 해줄 수 있는 게 들어주는 거밖에 없어.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하니. 언니한테 해...  괜찮아..."라는 말로 칼을 살포시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라서...


무림 고수... 이 글을 읽고 몰래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내 귀에 환청이 들린다.
"웃기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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