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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r 21. 2020

 내가 니 맘을 어떻게 아니?

대학생 때 영어회화학원을 다녔지만, 꾸준함이 없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A: 하우 알 유?

B: 파인 땡큐 앤유? 까지만 유창하게 할 수 있다.


영어실력을 높여보고자 학원을 다녔지만, 사실 학원에 가는 재미는 다른 것에 있었다.

오똑한 코에 샤프한 라인을 가진 톰 크루즈를 닮은 외국인 선생님을 보는 것은 나에게 황홀한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어줄 때면, 한국어도 영어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좋았지만, 나의 로망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사랑스런 아내가 있었고, 아들도 있었다. (물론 그 당시 나도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뭐랄까... 좋아하는 연예인이 결혼할 때 씁쓸한 마음이랄까나...)

톰 크루즈 리즈 시절

톰 크루즈 선생님은 종종 아들과 함께 학원에 오곤 했는데, 피는 못 속이는지 아들 또한 리틀 톰 크루즈로 많은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때마침 학원에 온 아이는 로비를 돌아다니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하이"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근데 이 아이가 내게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내 마음은 분주해졌고, '뭐 줄 거 없나??'라는 생각으로 양 손을 주머니에 쏙 넣었을 때, '츄파춥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탕을 보여주며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선생님은 어디서부터 우리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서서히 걸어온 선생님은 몸을 숙여 아이의 사탕을 살포시 가져갔다.

'주면 안 되는 거였나? 실수했나?'이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이 놈의 입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제길...


선생님은 아이에게 사탕을 보여 주며 이야기했다.

세이, 쌩큐!

'아~~~ 고맙다고 말하라는 거구나~'  탁월한 리스닝 실력은 아니었지만, 이것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사탕을 빼앗긴 것만 관심이 있었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플리즈"를 외치고 있다.


선생님은 온화한 음성으로 수차례 "세이, 쌩큐! 세이, 쌩큐!'를 반복했으며, 아이 또한 쉬지 않고 "플리즈"를 말했다.


이러다가는 사탕을 먹을 수 없다는 걸 알았던걸까? 아이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나를 보며 "쌔~앵...... 큐"라고 말했다. 그제야 선생님은 아들에게 사탕을 주었고, 나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21살의 어린 나는 젠틀함이 넘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꼭 저렇게 가르치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표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에게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했다.


남편과 함께 할 때면

"여보가 좋아!"

"난 여보랑 있을 때가 제일 재밌어!"

"사랑해!" 등등 애정이 가득 담긴 표현을 남발한다.

때로는 나의 사랑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 건 아닐까도 싶지만, 내 앞에 있는 당신으로 인한 나의 행복한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알려주고 싶었다.


반면에 남편은 나의 사랑 고백을 듣고는, 그저 살짝 웃고 만다.

어느 날은 두 손으로 남편 얼굴을 땅겨 나를 바라보게 한 뒤

오빤 나 안 좋아해? 나랑 있는 거 안 좋아? 왜 좋다고 안 해?
왜 내 고백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해?
얼굴 보니까 나 좋아하는 거 같은데! 말해!!!! 말하라고!!!

누군가는 공포 영화로도 느낄 수도 있겠다.

남편은... 대부분의 아저씨가 하는 말처럼 "꼭 말로 해야 아냐?"라는 공통의 문장을 뱉어냈다.


하지만,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남편 역시 '생존 능력', '적응 능력', '대처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카톡으로나마 짧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적응 전

 뜬금없다며, 다른 질문으로 화제를 바꾼다.



                       -적응 중

 ㅋㅋ를 붙이고는 그에 맞는 표현을 쥐어짜 본다.


                       -베테랑

출장 가서 스윗한 인사를 먼저 하지 않았다고 욕먹을 것이 두려워서인지  먼저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남편이 되었다.


나는 전에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 TV에서 봤는데...  기억은 안 나는데 어떤 나라에서는 남녀관계에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식은 걸로 안대. 그래서 표현하지 않으면 이혼하자는 의미로 안다던데? 난 외국 스타일할래... 그니까 말로 해줘.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알았다"라고 묵직하게 대답했다.


어느 책에선가 좋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 보여준 공식이 있었다.


관계 = 마음 x 표현


아무리 따스하고 좋은 마음이 있어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표현은 0되고, 결국 관계도 0!  

즉, 좋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한 마음을 표현할 때, 관계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공식이지만, 나는 이 공식이 마음에 와 닿았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잘 먹었어요."

"당신과 함께 해서 좋아요."

"나 너무 감동받았어요. 행복해요."

"당신이 도와줘서 참 좋아요."


이 따스한 한 마디는 좋은 관계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피로를 싹 날려 보내기도 한다.

딸의 "사랑해요" 한마디에 일터에서 뜬금없이 행복한 아빠...


출처: 네이버 <뿜>


아빠는 얼마나 행복했으면 이렇게 사진을 찍어뒀을까?


나 또한 이런 예쁜 표현을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런 표현이 우리의 가족 관계, 친구 관계를 끈끈하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삶에서 평범하게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는 현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친가에서는 첫 손녀이며, 이모와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집에서도 외동딸로 끊임없는 애정을 받고 있다.

잠깐이라도 아이를 데리고 친정을 놀러 갈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들이 맛있다고 여긴 과일들을 드시지 않고, 비닐에 잘 묶어놨다 손녀에게 건네준다.

아이는 그 마음을 알까?

자신을 생각하며 천혜향 3개, 참외 3개, 누군가로부터 받은 맛밤과 과자를 먹지 않고 챙겨놓는 마음을...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말한다.


"딸!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어...

너가 혼자라 사랑받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야.

할머니니까 할아버지니까 조카니까 너를 챙겨주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야.

너를 향한 그 마음은 당연한 것이 아닌 그것보다 훨씬 앞에 있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마음이란다.

그 마음을 받을 때는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저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돼...


그리고 엄마가 생각해보니 이따가 해야지 하면 꼭 잊어버리더라.

지금 너의 마음을 담아 말해보렴...

세이 쌩큐!"


지금 쑥쓰럽더라도, 한 번 표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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