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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r 28. 2020

엄마! 내 전화 차단했어?

다른 딸들은 엄마와의 관계가 어떨지 모르겠다.

나와 엄마는 물과 기름처럼 같이 붙어있기는 한데, 절대 융합될 수 없고, 모든 면에서 정확하게 분리가 되어 있다. 잘 맞는 부분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어쨌든 이유도 기억 안 날 만큼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항상 다른 의견을 내세우니, 자주 부딪히곤 한다.

언니들은 요리조리 "아 알았어!"라고 잘도 피해 가는데, 어김없이 나는 내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엄마도 엄마 의견을 내세우다 언쟁이 생겼다.


그나마 장점은 10분도 안되어 '미안하다'는 급속사과와 함께 이야기하며 풀곤 한다.

나는 비록 엄마와 언쟁이 있었지만, 여느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벨이 두 번도 울리기 전에 내 전화를 거절했다.

'뭐지???'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엄마 어디 갔어?"

그때 아빠는 "엄마? 집에 있지! 바꿔줄까?"

난 그때 알았다. 

엄마가 내 전화를 피한다는 것을....


전화는 안 받는데, 카톡은 본다. 근데 답은 없다...

'나 읽씹 당하는건가?'

늘 나는 글을 쓰면, 엄마에게 먼저 보내곤 한다.

내 글의 애독자인 엄마는 "잘 읽었어." 혹은 엄마의 생각을 카톡으로 정성껏 적어 보내준다.... 그러나 현재 엄마는 두 개의 글을 보고도 답변이 없었다.


또 전화를 거니... 또 거절을 했다.

어이가 없어 카톡으로 물었다.

난 그냥 생각없이 '차단했어?'라고 물었는데... 엄마는 답변이 없었다.


갑자기 전화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엄마였다.

내 전화를 받지 않은 게 기분 나빠, 나도 똑같이 엄마 전화를 거절했다.

두 번째 전화가 울린다. 이것까지 안 받는 건 너무 나쁜 일인거 같아 전화를 받으려 하는 순간, 바로 끊어졌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너도?

너도?

너도?


그럼 엄마는 차단했다는 건가?
에이 설마....설마 차단을 할 줄 안다고? 아니겠지... 


잠시 고민하던 차에 또 전화가 온다.

나는 "여보세요?" 대신

"왜?! 내 전화는 받지도 않으면서 왜 전화하는 건데?"라는 퉁명스러운 말로 전화를 받았다.


사건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엄마는 나에게 쓸데없는 부연설명을 해버렸다. 

안 해도 될법한 설명들을...


사실 그 날 너랑 해대고 나니 나도 짜증이 나고, 너무 우울했어.
내가 이러다 우울증 걸리겠다 싶더라고.
또 전화 오는 것도 그렇고, 전화받기도 싫고 그래서...... 차단했어.
그리고 다음날 차단을 풀고 싶은데 어떻게 푸는 건지 모르겠고 해서...
어쨌든 그래서 엄마가 먼저 전화했잖아!



헐.... 진짜 차단한 거야?

물론 나도 딸로써 엄마에게 너무나도 잘못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엄마가 내 전화를 차단했다니...

차단을 할 줄 아는 것도 신기하지만, 딸 전화를 차단했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차단에 꽂힌 나는 

왜 전화했어?
차단했으면 전화도 하지 말아야지.
심부름시키려고 또 전화했겠지.
전화는 받기 싫으니 차단하고, 뭐 시킬 거 있을때만 전화하고.....
내가 살다 살다 엄마가 자식 전화 차단한 사람은 처음 봤다...
진짜... 이제 나한테 전화하지 마!!!!
먼저 전화한 것도 내가 아빠한테 전화한 거 알고 한 거잖아!!


엄마는 자신이 차단한 거에 놀라 팔짝팔짝 뛰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이어 말했다.

"아휴...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요령 있게, '전화 온 걸 몰랐네' 했어야 하는데.... 너무 솔직한 게 탈이지..."


맞아... 그랬어야 돼... 
그제야 깨달았다.
솔직은 꼭 좋은 게 아닌 것을...

생각해보면 그 솔직함 때문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솔직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방의 마음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쏟아내는 그 솔직 때문에...

어쩌면 나의 솔직함으로 엄마도 큰 상처를 받아 차단했겠지...


나를 비롯해 내 주변엔 왜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 많나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을 때, 내게 제일 솔직한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나만 보면 "너처럼 못생긴 애가 영화배우 같은 우리 아들을..."이라는 운을 자주 띄우며 내 속에 불을 질렀다.

물론 서운한 거 다 털어놓는 '한바탕 전쟁'에서 나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제가 어때서 저한테 못생겼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럼 성형수술이라도 하게 돈을 왕창 주세요.
수술하고 예쁜 얼굴로 찾아올게요.
정말 저는 어머니 그런 말씀 때문에 너무 속상하고 기분 나빠요...


수술비용 때문이었는지, 내 마음이 전달되서인지 무엇 때문이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한동안 나만보면 "시집오더니 왜 이렇게 예뻐지니?"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도 내 눈치를 살피고, 조심 또 조심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 고부관계는 편안하다...


어쩌면 나와 엄마는 조심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아서 이렇게 자주 싸우는 건가 싶기도 하다.

솔직함이 미덕이라고 느껴서인 걸까?

나 또한 엄마에게 너무 솔직했고, 

솔직함의 상처를 받은 엄마는 전화를 차단했으며, 

더불어 딸 전화를 차단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엄마로 인해 

나는 대량의 충격을 받은 것이다. 


엄마... 나도 너무 솔직했던 건 미안해... 엄마도 나한테 너무 솔직하지 마...
나 사실 내 번호 차단한 건 엄청 상처 받았어.
차라리 잘못 누른 거라고 해주면 안 되는 거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솔직함'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사람들도 나를 향해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하던데...

'너를 위해서 해주는 말' , '너를 아끼니까 하는 말'이라는 포장을 한 '솔직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 줬을까 겁이 난다.

하긴 나 또한 가까이 있는 우리 딸아이한테부터도 "엄마니까 솔직한 거다! 누가 너한테 이런 말 해줄 거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던 걸 생각하면 나 또한 똑같다...


어디선가 이런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내 자존감을 가장 많이 무너뜨리는 사람은?"

1위........... 엄마...

딸아... 미안하다...


나는 결심했다.

오늘부터 적당히 솔직하기로...

생사에 갈림길에 큰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업무에 있어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판단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가 진정으로 나의 생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나는 적당히 솔직할 것이다. 입에 지퍼를 채워야겠다.


매일 딸아이가 묻는 "엄마 나 오늘 다른 날보다 이쁘지 않아? 엄마 나 좀 괜찮지? 엄마 나 이뻐?"라는 질문에도 이제 "적당히 해라!"라고 답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진정으로 나의 생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오늘따라 예쁘다고 느끼는 그 감정에 동조를 구하는 것이니...

나는 꾹 참고... "그러네... 이쁘네..."라고 쥐어짜야겠다.


오늘 이 글은 발행하자마자 엄마 카톡에 보내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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