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Apr 09. 2020

엄마 아빠 이제 그만 싸우게 해 주세요.

나는 쇼핑몰에서 아주 '말을 잘하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남자아이로 나이는 대략 5살 정도 돼 보였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엄마의 뒤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애를 다 키운 엄마들이 보통 어린아이를 보면 이런 것 같다.)


아이 앞에 있던 엄마는 '어떡하지'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하며 천천히 매장 문 쪽으로 향하는데,

그때 갑자기 엄마의 뒤를 따르던 아이가 소리친다.


"여보!~~~~~~~~~~"


엄마는 뒤를 돌아보았고, 아이는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여보한테 물어봐!"


매장 안에 사람들은 아이가 귀여워 한 번씩 쳐다보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나는 상황을 이렇게 해석했다.


엄마 뭐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으신가요?

그럼 여보가 있잖아요~ 여보를 불러서 물어보세요!

엄마의 여보가 바로 앞에 있어요!


라며 다급하게 알려주려는 모습이라고 말이다.


딸아이는 내게 와 꼬마가 너무 귀엽다며 깔깔거렸는데...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엄마 앞에 있는 사람이 그저 '아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구나.

엄마 앞에 있는 사람은 '아빠'이자, 한 여자의 '여보'라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구나...'


어렸을 때 엄마가 우리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너네 아빠는 딸 들한테는 백 점이지. 남편으로서는 별로야!


그 당시 엄마는 아빠랑 잠깐 다투거나 마음이 상했을 때 하는 푸념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나한테 100점 아빠를 알려주기 위함보다는 '엄마는 아빠로 인해 지금 너무 불행해'로 들렸기에 그런 것 같다.

'백 점 아빠가 아니어도 좋으니, 여보끼리 행복하세요! '라는 마음이었을까?

나에게도 5살 아이처럼, 엄마, 아빠가 '한 남자의 여보', '한 여자의 여보'로 존재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더욱 명확하게 알 것 같다.

지금 나와 함께 사는 이 남자는 아빠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늘 표정이 어두워지곤 했다.

남편의 앨범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분명  행복과 사랑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남편은 아버지를 기억할 때 '엄마를 힘들게 했던 사람'으로만 떠올리곤 한다.

아니 어쩌면 엄마를 힘들게 했던 기억이 너무 컸기에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들은 수면 아래 갇혀 있나 보다...


사랑스러운 막내이자 기다리던 아들로 아버지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받았지만, 남편에게는 '아버지'의 기억보다 엄마의 '남자'로서의 모습이 더욱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에게만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오래전 나는 교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도 제목을 적는 시간을 가졌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기도제목을 적는 아이들.

그중에는 "선생님, 4개 적어도 돼요?"라며 숫자를 늘려가며 적는 아이도 있었지만, 어떤 아이는 딱 한 가지만 적고는 종이를 접고 친구들을 기다렸다.

"oo 이는 벌써 다했어?"

"네 저는 한 가지만 적었어요. 그거면 되거든요."

아이들은 나이 먹은 어른이 기도하면 더 잘 들어줄 거라 생각했는지, 나에게 "기도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종이를 건네주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하나면 된다'는 아이... '다른 건 괜찮다'는 아이의 기도제목을 보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엇이 갖고 싶다고',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고'라는 말이 적혀있지 않고....

그저 꾹꾹 눌러쓴 하나의 기도제목이었다.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쇼핑몰에서 들은 '여보!'라는 단어 하나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남겼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엄마! 아빠! 내게는요.
좋은 엄마, 좋은 아빠도 필요해요.
하지만 두 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여보의 모습이 더 좋아요!
좋은 엄마 좋은 아빠 되기 전에 두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였나? 어느 날 가족 다 같이 저녁을 먹는데 딸아이가

"요즘 둘이 왜 뽀뽀 안 해? 사랑이 식었어?"라고 물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남편에게 뽀뽀를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데~


난 분명히 보았다. 아이가 살짝 미소 짓는 것을....


아이들은 '여보'라는 단순한 호칭만을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보를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을...

여보를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행복한 엄마, 아빠의 모습을

어떤 누구보다 응원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한 입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