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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pr 23. 2020

언제까지 재워줘야 돼?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첫날부터 학교가 싫었다.

줄을 서는 것도, 자기소개를 하는 것도, 게다가 조용해야 하는 것도... 사실 유치원도 지긋지긋했다.

특히 재롱잔치 준비할 때의 기억이란... 매일 혼난 기억 뿐이다.

39살에도 기억들이 선명한 걸 보니 진짜 싫었나 보다.


나의 도드라짐 때문인지, 학교에서 크게 적응을 잘하기보다 상처받은 일들이 기억속에 얌전하게 남아있다.

매번 학교 다니기 싫다는 노래를 고등학생 때까지 불렀으니... ;;;;;

그저 밝고 쾌활한 아이의 이면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내가 커서 딸을 낳았는데.... 나랑 너무 성향이 비슷하다.

겁이 났다. 이건 뭐...'리틀 이한나가 틀림없다'

게다가 유치원에서도 유별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아이가 적응하기 원만한 교육기관을 찾기로...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상담 받아보고, 아이 성향에 맞는 곳을 찾고자 아이와 함께 상담을 다녔다.


<1학년 선생님과의 첫 만남>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다민아, 엄마 선생님이랑 이야기할 게 있는데... 다민이 교실 밖에 책 읽는 곳에서 잠시 책 읽고 있을래? 엄마 금방 끝나니까 좀만 기다려줘!


선생님을 의식했기에 부드럽고, 친절하게 아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아이는 이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싫어, 나도 여기 있을래.~~~ 같이 있어~~~~~"

아... 진짜.... 나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엄격한 엄마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다.

"다민아 너 이제 학교 가야 해! 7살이면 잠깐 혼자 있을 수 있잖아. 바로 엄마도 보이는데. 빨리 나가서 기다려!"

그러나 아이는 한결같았다.

우리의 실랑이를 중재하고자 선생님은 "괜찮아요. 같이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며 아이가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을 건네주셨다.

그렇게 상담이 시작되었고 나는 많은 상담의 내용 중 마지막 한 가지만 기억이 난다.

다민이 어머님, 7살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정해져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8살에 아니면 9살에 혼자 기다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가실 때 나무라지 마세요!


난 그 말 한마디에 학교를 결정했고, 아이는 방학을 슬퍼할 만큼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16살된 아이를 키우며, 오래전 이 일을 떠올리게 된 이유가 있다.

바로 캐나다로 이민 간 언니가 보낸 카톡 때문이다.

12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의 둘째 언니.

밤 10시 38분에야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 하러 간다는 언니...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넌 언제까지 엄마가 재워줘야 돼?"

"언제까지 엄마가 책을 읽어줘야 돼?"


물론 나도 힘들어서 한 질문이었겠지만,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 중에는, 먼저 엄마가 된 누군가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동네에서 만난 할머니는 우리 아이를 보며 "나 때는 돌만 지나면 다 기저귀 뗐지. 얘 말귀 다 알아들을 텐데 뭘 기저귀를 자꾸 채우려고 해?" 라며 육아의 기본기를 알려주신다.

웃으며 "네네"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집에 간 나는 딸아이를 변기에 앉힌 뒤 "쉬~~!!! 쉬~~~~~~~"를 수십 번 외친다. 정말 내가 오줌이 마려울 정도로 외치니, 아이도 나의 정성을 알고 배를 움찔움찔하며 쥐어짜듯 몇 방울의 오줌을 싸곤 했다.

 

또는 육아서적이 주는 <몇 개월이면 무얼 하고, 몇 개월이면 무얼 하고...>의 지식에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물론 아이를 처음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의 발달 과정을 알아가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기준에서 뒤처지는 것도 빨리 알아내 병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러한 육아서적의 지식을 쪽쪽 빼먹고, 거기서... 정말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육아서적의 기준처럼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냈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제 ~~~~ 할 나이 아니야?"


스스로 자립심을 요구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와 상관없는 내가 원하는 기준이요.

'옆집 잘하는 아이''못하는 우리 집 아이'의 비교이자, 질책이었다.


딸아이는 14살 중학생이 되어도, 한 여름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이 들었다.

무섭다며 잠들기 전 잠시라도 같이 있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넌 적어도 중학생이잖아"라며 아이의  소리를 외면했다.

결국 잠이 들면 온 몸에 범벅이 된 땀을 식히고자 이불을 발로 걷어차던 아이...


아이는 그저 어두움이 찾아오면, 자신을 위협하는 무언가를 느끼며 두려워 눈을 뜨지 못하는,

남들과는 마음의 성장시간이 다른 아이였는데...

철저한 나의 기준으로  아이의 외침에 귀를 막아버린 것이다.


16살이 된 아이는 이제 공기청정기 불빛도 밝다며, 취침모드로 바꾸고, 커튼을 쳐 빛을 가린다.

그리고 이불을 가슴까지만 덮은 채 그렇게 잠이 든다.

그저 남과는 달랐던 아이의 시간을 이해해주지 못한 엄마여서 마음 한켠이 뭉클하다...


이런 글을 써서 일까?

나는 아이가 자려는 방에 들어가 "엄마가 노래 불러줄까?"라고 물었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더니 "응"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기 때부터 불러주던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열심히 불러댔다.

아이는 노래를 듣더니 말한다.

 " 다 불렀으면 이제 나가! 잘 거야!"

좀 컸구나... 그래...

내일부터는 엄마가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다시 찾아볼게... 잘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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