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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pr 08. 2020

한 입만!!!!!

"한 입만~~~"

남편은 바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남편은 내가 하는 말 중에 '한 입만'이 제일 싫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어하는 '한 입만'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다.

남편이 자주 먹는 죠스바수박바.


오늘도 어김없이 수박바를 먹는 남편에게 "한 입만"을 말했고,

남편은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너 초록색 먹을 거지?"라고 물었다.

(끄덕끄덕)

남편은 "아 진짜 짜증나... 맛있는데만 먹냐? 그거 아껴놨다가 마지막에 먹는 거 몰라?"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아래 한 입 확 베어 물고 도망갔다.

남편은 '짜증나'를 세 번 정도 외치더니 "그래도 한쪽 남았으니까 이따 먹어야지"라며 긍정을 쥐어짜고 있었다.

(미안해 여보!)


나도 모르겠다. 왜 많고 많은 아이스크림 위치에서 비율상 조금밖에 안 들어 있는 초록색이 맛있는지.

내 생각에 수박바의 묘미는 빨간색을 인내하며 먹은 뒤 얻는 초록색이다.

이건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거꾸로 수박바가 나왔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전에 먹던 초록 맛이 아니라고 했다.

정말 다른 거였을까?

호불호가 있겠지만,  그전에 먹던 수박바가 더 좋다고 했다.


오늘은 남편이 내 옆에서 죠스바를 먹고 있다.

난 죠스바를 보며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대체 왜왜왜 조금 있는 아래만 맛있냔 말이야!!!!'


나는 고민의 기로에서 순간! 바로 그 순간!!

'조금밖에 없어서 맛있는 게 아닐까?'라는 위대한 깨달음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중학생 때 배운 '희소성의 원리'까지 끄집어냈다.

어이없는 깨달음일지언정  '조금밖에 없어서 맛있는 거다'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남편이 죠스바를 먹는 모습을 보며, 철학가마냥 생각에 잠겨 한마디 던졌다.

"여보... 우리 인생이 꼭 수박바나 죠스바 같지 않냐?"

"넌 또 뭔 헛소리냐?"

개똥철학이긴 한데...
우리의 삶을 수박바 초록색처럼
여겼다면 어땠을까?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아끼기도 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기대하기도 하고...

근데 우린 말이야...
수박바의 빨간색처럼 사는 거 같아.
많은 양이 빨간 부분이니 영원히 살 것처럼...
서로를 미워해도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싸우고 잠들어도 내일도 눈 뜰 사람처럼...
그렇게 내 삶이 수박바의 빨간색처럼 엄청난 줄 알고 말이야...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알았어. 죠스바 아래 줄게"라며 내민다...

아니라고!!! 나 지금 철학 중이라고!!!! 그래도 주니까 한 입 아작!!



난 가끔 횟집 앞을 지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넌 1번 광어

난 2번 광어

모두 광어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수족관에 들어와 새로운 곳에 정착했다며 즐거워하는 광어 가족...


횟집 주인이 뜰채로 잡아가면 그저 끝인데, 수족관에서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미친 듯이 물어뜯어대진 않았는지....


기억하고 싶다.  

내 인생은 수박바의 빨간색처럼 나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른 시간임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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