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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ug 17. 2020

사람 인생이 그라고 논리적이질 못하다고!

영화 '국도극장' 대사中

마트의 필수코스! 즉석요리 코너!!!

음식들은 나에게 " 당신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돈만 내시면 돼요!"라며 말하는 것 같다.

일렬로 줄 서있는 초밥들...

생선을 좋아하진 않지만, 색깔이 예뻐 다시 쳐다보았다.


그중에서 아주 신기한 핑크색 초밥을 발견했다.

핑크색 초밥이라... 연어도 아니고 이건 뭐지?

눈이 나쁜 나는 고개를 숙여 초밥을 다시 본다.

'참치 뱃살 초밥'

근데 요놈 엄청 비싸다. 다른 것들에 비해 양도 반인데, 가격은 더 비쌌다.

나는 남편을 부르며 "여보 이것 봐. 참치 뱃살 초밥이래. 뱃살은 비싼 건가 봐. 양도 적은데 말이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더니

"네가 참치라면 몸값 좀 됐겠는데~ 뱃살, 볼살... 너 볼살이 얼마나 비싼 줄 아니? 진짜 조금 나온대... 넌 뱃살도,  볼살도... 아... 아까비"


'아오~ 한 대 때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가... 남편 말대로 내가 참치였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바이러스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경제난에 허덕이는 이 순간에 내가 참치였다면...

남편 말대로 돈 좀 만지지 않았을까?

뱃살 떼어주고 돈 받고, 또 먹고 누워있다가 뱃살 떼어주고 돈 받고....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물론 죽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백수의 발칙한 상상이라 치고 싶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무너진 순간을 살고 있다.

요즘 프리랜서들이 많이 힘든 것처럼, 나 역시 그저 그런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 (일은 아주 어쩌다 한 번씩)

게다가 나는 1년 정도 돈을 쓰는 백수였다.

"오빠 돈 좀 있어?"로 시작해 "오빠 나 이번 달 oo만원 부족하니까 보내줘."라고 말하는 나는...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도 잠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내 카드에 재난 소득 80만원이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두둑해진 지갑 덕분이었는지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

"우리 오늘 삼겹살 콜? 내가 쏠게."라며 외식을 부추겼고, "2차로 버블티 어때? 후식도 쏠게"라며 한없이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좋았다.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마음이...

차를 타고 오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여보... 나 지금 너무 좋아! 버블티도 맛있고... 일도 안 하고, 여보가 나 먹여 살려주니까 엄청 좋아!!!! 나 여보한테 이렇게 계속 빨대 꽂고 살면 안 돼?"라고 물었다.

남편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데 신호가 걸리자마자 남편은 나를 쳐다보며 "빨대가 두 개나 꽂혀서 힘드네. 그래도 어디까지 되나 맘껏 빨아봐라!"

나는 배가 불러 신이 난 건지, 남편의 든든한 이야기에 신이 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한껏 들뜬 목소리로 "오빠! 나는 버블티 먹을 때 쓰는 두꺼운 빨대 꽂을래. 후루룩 후루룩 크게 쫙쫙 빨래! 여보 괜찮지?"


그때 뒤에 앉아 있던 딸아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엄마 얇은 빨대로 빨아야지!  나야 어른되고 돈 벌면 끝나겠지만, 엄마는 아빠랑 평생 살아야 되는데... 한 번에 다 쪽 빨아먹으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얇은 걸로 길고 오래 빨아먹어!"

남편은 허탈하게 웃으며 딸아이를 향해 "야! 너 지금 한 말 꼭 지켜라! 오래 빨지 말아라! 졸업과 동시에 니 빨대는 없는 거야!"


그렇게 한바탕 삼겹살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의 일을 했다.

하지만 내 머리 한쪽에는 아이의 말이 돌아다녔다.

'엄마는 아빠랑 평생 살아야 되는데... 얇은 걸로 길고 오래 빨아먹어!'

그 말이 좋아 엷은 웃음이 지어졌다.

빨대로 쪽쪽 오래 뽑으라는 말이 아니라... '평생 살아야 된다'는 그 말...


정말 평생 함께 할 수 있을까?

얼마나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시간은 어디까지일까?


요즘뿐만이 아니라 늘 끔찍한 사고들이 뉴스를 장식한다.

바이러스로... 재난으로... 한 순간에 가족을 잃은 너무 많은 사람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된 신혼부부.

세 아이의 아빠.

두 아이의 엄마.

여덟 살 아이.

이제 막 입학한 대학생.

곧 출산을 앞둔 엄마.

혼자 살고 있는 노모...


그들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음을 알지 못했을 텐데...

영화 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사람 인생이 그라고 논리적이질 못하다고" (영화 '국도극장'에서)



그들도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을 텐데...

새끼손가락을 걸고 다짐했던 약속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던 것인지...


내가 얇은 빨대로 내 남편의 등에 꽂으면 그것이 오래도록, 평생토록의 시간을 약속해줄까?

그런 것이라면 빨대를 꽂되 절대로 빨지 않고,  열심히 노동을 하며 함께의 시간을 지켜낼 텐데...


유한하면서도,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

그저 오늘 하루도 아낌없이 사랑하며, 한번 더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작은 일에 파르르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여유로움으로 상대를 그윽이 바라보려는 마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으며 오늘도 노력해본다.


오래전 언니는 내게 이런 카톡을 보냈다.


늘 후회가 많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나의 작은 노력이 삶에 늘 따라다니는 후회를 줄여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듯,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지...


이 글을 발행하면 남편에게 멋있다고, 좋아한다고 말해줘야지!

 혹시 이 글을 읽으셨다면 같이 해야 되는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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