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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l 26. 2020

내로남불 레전드

수줍은 17살 소녀와 18살 소년의 만남.

6개월간의 편지를 주고받고, 수많은 전화통화를 나눴지만 그를 만난 순간 얼마나 심장이 나댔는지 모르겠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민망해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던 우리.


나름의 데이트를 하겠다고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버스 안에서만큼은 옆 자리에 붙어 앉아 있었다.

부끄러워 서로 앞만 보고 앉아 있던 소년과 소녀.

그런데 그는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났고, 걸어오시는 할머니에게 많은 자리 중에서도 본인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 순간 뭐가 씐 건지  '이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어 매일 밤 그 소년과 한 침대를 쓰고 있다.


반듯했다. 그는 줄 맞추는 것, 깨끗이 청소하는 것, 자신의 루틴을 지키는 것을 좋아했다.

비록 고등학생이었지만 자신과의 약속인 '윗몸일으키기 100개, 앉았다 일어나기 100개, 푸시업 50개' 등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사람이었다.

서울에 사는 나를 만나기 위해 모의고사 문제집을 다 풀겠다고 결심하면 기어코 만나기 전날까지 문제집을 다 풀어냈고, 1등 해서 만나겠다고 결심하면 모의고사 1등을 하며 당당하게 나를 만나러 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인간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 맞긴 한가보다.

모범생인 그가 좋았다. 그리고 믿음직스러웠다. 특히 나에게는...

난 중학교 때도 수업시간에 안 들어가고, 담벼락을 넘어 밖에 나가 실컷 놀다 들어왔다.

빈 책상이 있으면 걸릴까 싶어 책상과 의자를 통째로 화장실에 숨겨놓고, 집에서 쉬다 오기도 하는 성실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이런 내가 모범생과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연애할 때 스타크래프트 하느라 정신 못 차렸어. 그래서 겜방에 있으면서 도서관이라고 뻥친 거 미안해. 결혼생활에 있어서 너한테 욕을 먹더라도 솔직히 말할게. 우리 서로 진실하게 살아가자!"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의 말이 좋았다.


성실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나와 결혼한 뒤에도 살을 빼겠다 마음먹으면 아침에는 샐러드만 먹어대며 6kg를 감량했고,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이틀에 한 번꼴로 5km를 뛰어 지구력의 끝판왕을 자랑했으며,

승진을 위한 영어점수를 얻겠다고 결심한 뒤로는 매일 밤 1시간에서 2시간씩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성실함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준법정신도 탁월했다. 법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권장하는 것은 열심히 한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그가 방역수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정말 남편이지만 존경했다.


회사의 애매한 수칙들.

<뷔페 이용하지 말 것. 샐러드 바는 가능>

아이는 우리와 그토록 애슐리 샐러드바를 가고 싶어 했지만 남편은 한결같았다.

"회사에서 가지 말라고 해서 안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안 해야지. 물론 샐러드 바는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이게 좀 애매하고 말이 안 맞는 거 같아. 뷔페와 샐러드 바라... 근데 그렇게 헷갈릴 일이면 안 하는 게 맞지. 정 먹고 싶으면 엄마랑 둘이 먹고 와."

그렇게 우리는 뷔페며 샐러드바며 가지 않았다.


강원도 여행에서도 2인 뷔페 조식권을 보며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다.

 "둘이 먹고 와. 난 국밥 먹을 테니까."

이길 수 없는 남자라는 것을 알기에 이틀간 우리는 아침 식사를 따로 하며 여행을 즐겼다.

강원도 여행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왔다.

폭우로 나가지 못할 땐 볼링이라도 칠까 싶어 남편에게 "볼링 칠까?"라고 으니, 남편은 '코로나 고위험 시설'검색하며 "안될 거 같아. 그리고 실내 운동도 금지야. 마스크 쓰더라도 회사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 안돼."라는 답변을 주었다.

나는 곧바로 "오락실은?"이라고 되물었으나

남편은  "방에 가서 과자 먹으면서 TV나 보자."라는 대답으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그래... 그래... 넌 내 남자 친구였고, 내 남편이었지.

내가 잠시 잊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했다. 오히려 이런 남자가 나에겐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제어장치이자 브레이크가 되어주는 남자.


하지만 오늘 이 남자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내가 22년 동안 겪은 모습과는 다른 모습.

오늘은 이 남자가 그간 영어시험을 준비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검증받는 시간이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까지 남편은 "이거 시험 볼 때 많이들 소주 마시고 가던데, 나도 한 잔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 진짜 가서 대답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말로 불안감을 내비치며 파이팅을 외치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 뒤에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시험장에서 나왔고,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난 묻지 않았다.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 뭐라고 대답했는지 묻는 순간 남편이 우울해질까 싶어서...


그런데 딸아이는 달랐다. 너무 궁금해했다.

"아빠 시험 잘 봤어? 뭐 물어봤어? 대답 잘했어? 말 좀 해봐. 뭐 물어봤는지."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직업 뭐냐고, 어렸을 땐 어떤 곳에 살았고, 지금 어디 사냐고, 어떤 식당 좋아하냐고, 주로 어떤 음식 먹냐고... 뭐 그런 것들이지."

"아빠 뭐라고 대답했어? 한 번 해봐."

"뭘 해봐... 관심분야를 체크하고 사전조사를 하거든. 아빠는 직업 없음, 혼자 살고 있음, 일없음 이렇게 표시했지 뭐. 그래야 질문이 복잡해지지가 않는다고 하더라. 직업 있다고 하면 하는 일 자세하게 설명해야 되고, 가족이랑 산다고 하면 가족들 세세하게 이야기해야 되고, 암튼 골치 아파진다고 해서 그랬지. 그리고 어떤 식당 좋아하냐고 할 때는 외국 사람들이 잘  아는 KFC, 버거킹 같은데 좋아한다고 했지."

"아빠 우리 동네에 KFC랑 버거킹이 어딨어? 그리고 왜 거짓말을 쳐? 아빠 직업 있고, 우리랑 같이 살잖아."

"다민아 원래 그런 거야. 이건 다 그렇게 하는 거야. 아빤 오늘 가서 아이 라이크 햄버거, 피자, 후렌치 프라이하고 왔어. 걔네가 떡볶이 말하면 아냐? 다 걔네들 채점하기 편하라고 아빠가 편하게 이야기해 주는 거야. 이런 건 거짓말이 아니야.  어렸을 때 어디서 사냐고 묻는데 시골집 말하면 모르니까 아파트 살았다고 하고, 내가 비록 논바닥에서 놀았지만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놀았다고 해야지. 걔네 채점 못한다니까"


나는 기가 막혔다.

아이도 많이 놀랬다.

"아빠 거짓말하는 거 엄청 싫어하면서 지금 진짜 잘한다. 채점자들이 와서 다 조사해야겠네."라며 묵묵히 아귀찜을 뜯어먹는 아이.

물론 오픽 영어 선생님이 알려준 팁이고 점수를 높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아빠가 아직 영어가 서툴러서 상황을 잘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리고 이건 영어 말하기 능력을 보기 위한 시험이야. 그래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말하기 실력을 보여주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  이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라서."라고 말했다면 좀 더 괜찮았을 텐데.

무슨 채점자를 생각해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한다는 건지... 에라이!!!


난 실컷 놀리고 싶었다.

"오빠! 거짓말 싫어하는 바른생활 사나이가 영어 하나에 금방 무너지네. 웬 아이 라이크 피자, 치킨, 음~~~~ 후렌치 프라이 웃기고 있네."라고 놀리자마자 남편은 나를 째려보며 "너 다음 달 시험 나랑 같이 보자. 내가 네 것만 듣고 있을 거야. 너 지금 해봐. 어디 한 번 보게~ 해 봐!"라며 나를 뒤쫓았다.


둘이 키득키득거리다가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냥 좀 의외였어. 반듯한 이미지랑 안 어울렸어."

그때 남편은 묵묵한 표정으로 말했다.

"개인의 정의(justice)는 개인의 정의(definition)로 만들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다 본인 기준이야."


'오... 웬일? 나름 멋있게 이야기하는군. 그 시간에 영어공부나 해라!'라고 하고 싶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스러운 아내의 정의(definition)는 남편의 말에 공감하는 모습이었기에 온화한 표정으로 "내가 정의로운 것도, 내가 친절한 것도, 내가 상식선이라고 말하는 것도 내가 정의(definition)한 기준에서의 정의(justice)겠지. 오빠 말이 맞네."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맞았다.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 정의(justice)와 비슷하면 나와 잘 맞고 통하는 사람이라 분류하며,

내 정의(justice)에 어긋나면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곤 했다.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저...

나에게는 여전히 엄격한 정의(justice)를 내세우되,

남에게만큼은 조금 너그러운 정의(justice)로 포용할 수 있길.

내 정의(justice)로 남을 비난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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