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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l 18. 2020

학위는 내 꺼, 고생은 우리 꺼

인터넷에 들어와 브런치를 열어야지 했는데, 나는 무심코 대학교 사이트에 들어갔다.

몇 달 동안 논문 마무리를 하던 나는 습관적으로 인터넷 주소창에 학교 사이트를 치고 있던 것이다.

논문을 쓰면서 짬짬이 글을 쓰기도 했지만, 마지막 2달 동안은 심사를 준비하며 브런치와 잠시 이별했었다.


내 나름  영혼까지 끌어모아 열심히 쓴다고는 했지만 심사위원들로부터 쓰디쓴 지적을 받았던 나는 우울 가도를 달렸고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시간의 흐름속에 끝이 있다는 것이었다.


울면서 버티고 버텼던 시간의 끝에서 5년 전 일이 떠올랐다.


학부-석사에서 했던 공부와는 다른 타전공 박사과정에 입학했던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며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동기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밤 11시에 터벅터벅 걸어가며 함께 공부하는 동기에게 "나 여기 왜 있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겠어. 진짜 나 어떡하냐... "

그때 내 이야기를 듣던 동기는 덤덤하게 말했다.

"누나. 나도 로스쿨에서 그랬어. 난 이 과정이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해. 즐기면서 타는 사람도 있지만, 죽을 것처럼 무서워서 떨면서 타는 사람도 있어.
근데 그냥 타면 돼. 무섭긴 해도 안 내리면 마지막에 같이 내릴 수 있을 거야.
누나 꽉 붙잡고 타면 돼. 끝까지 버텨!"

5년의 시간. 난 한 번도 즐기지 못했지만... 끝까지 롤러코스터에 앉아 있었고, 마침내 도착지에서 내릴 수 있었다. 잘했든 못했든, 눈물을 흘리며 탔든 웃으며 탔든... 그것과는 상관없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너무 기특할 뿐이다.

매번 포기하기를 즐겨하는 나였기에 끝마침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다.

나는 대학입시 실기시험을 보다가도 보기 싫다며 도망쳐 오기도 했고,

치아교정을 하다가도 아프다고 다 떼어버리고 치과에 가지 않았고,

하다가 좀만 힘들면 그만두는 것은 나에게 예사로운 일이었다.

물론 논문 쓰면서도 "때려칠 거야. 지긋지긋해"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나는 끝끝내 롤러코스터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롤러코스터에서 안전벨트를 풀고 내리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외부 교수님을 찾아뵙고 인을 받는 것이다.

마침내 교수님이 나의 종이에 멋진 사인을 휘갈겼을 때, 내 안에서는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예~~~~~~~~ 끝났어!!!!!!!!!!!!!!!!!!"

그러나 차분한 척 미소를 띠며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교수님은 싸인한 종이를 내게 건네며


고생 많았어요.
논문은 전 우주가 도와줘야 쓸 수 있는 겁니다.  
한 사람이라도 공부하는 것에 못마땅해하면 사실 논문 쓰기 힘들어요.
그동안 옆에 있던 남편, 자녀들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꼭 감사 인사하셔야 해요.


그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들었던 말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알 것 같았다.

'전 우주'가 도와줘야 쓸 수 있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마음 깊이 파고들며 많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싱크대 가득 쌓인 설거지를 하면서 방에 들어가 편히 논문 쓰라던 남편.

늦게 잠든 엄마를 배려해 아침이면 조용조용 혼자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가던 딸아이.

돈 못 벌고 있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여유치 않는 상황에서도 큰돈을 쥐어주며 어깨 펴고 살라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힘들다고 전화로 징징 거릴 때면 먼 곳에서 토종닭을 삶아 집에 배달해주던 엄마와 아빠.

코로나로 모든 일이 다 취소된 내가 안쓰러웠는지 논문 쓸 때 달달한 커피라도 마시라며 10만 원을 보내주던 남편의 누나.

먼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동생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틈틈이 인터넷 서점으로 에세이를 보내주던 나의 둘째 언니.

한 고비 쉬어갈 때마다 밥 사준다고 나오라던 큰 언니.

음식 할 시간이 어딨냐며 틈틈이 반찬을 만들어주시던 교회 집사님.

힘내라며 치킨과 커피 기프트콘을 맘껏 쏘던 친구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미쳤어? 그냥 해!"라고 성질내며 함께 논문 쓰던 언니.

바쁜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들려주던 나의 연구 참여자들과 매번 할 수 있다고 포근하게 안아주시던 교수님까지...


그렇게 '전 우주'의 도움을 받은 나는 오늘 논문을 제출했다.

내가 끝까지 롤러코스터에서 버티고 앉아있던 게 전부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손을 붙잡고 롤러코스터에 함께 앉아 있던 것이었다.


다시 한번 글을 쓰며 기억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전 우주'의 힘이 있었음을...

네가 하는 모든 일에도 '전 우주'의 힘이 있었음을...

그리고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브런치를 시작하려 한다.


혹시라도 기다려주신 누군가가 계셨다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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