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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y 27. 2020

 반려견과의 비지니스

개통령 강형욱선생님은 개를 키우면서 견주가 해야 할 의무중 하나로 '산책'을 강조한다.

심지어 반려견의 문제 행동을 교정받는 프로그램에서도  "일주일에 산책 몇 번 세요?"라는 질문을 빼놓지 않는다.

동물훈련사 강형욱  (출처: 국민일보 2020년 4월 27일자)

개와 관련된 TV프로그램을 보며, 나 또한 사랑이를 산책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다.

짬짬히 시간을 내서라도 사랑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노력하지만, 현재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다.

산책을 할 때면 개도 웃는다는 것을 알려준 사랑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에, 나는 '딸찬스'를 쓰기로 했다.

"다민아~ 엄마가 요즘 너무 바뻐. 너도 알지? 개에게 산책은 본능같은거래. 꼭 해야 되는데... 사랑이 산책좀 다민이가 시켜주면 안될까?"

늘 사랑이를 부둥켜 안고 자는 딸이기에, 당연히 오케이 할줄 알고 물었던건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왜?"

순간 열이 받았다. 짜증게이지 폭발 직전인지라, 이 놈의 입이 움찔움찔하더니 속사포 랩을 쏟아놓는다.

"개 누가 키우자고 했어? 이건 뭐... 개랑 관련된 일은 다 엄마몫이야?

밥주고, 오줌 똥 치우고, 산책시키고, 씻기고... 엄마는 안 힘들어? 그리고 너 참 그렇다. 혼자 자기는 싫어서 밤마다 사랑이랑 같이 자면서 넌 사랑이를 위해 그 정도도 못하니? 어떻게 너 좋은것만 하냐?"

"알았어. 산책시킬게"라는 답변을 기대했는데.... 이는 상상에서 그쳤다.

딸은 또 정말 어이없는 말을 한다.

"엄마! 나는 사랑이랑 give & take 관계야. 비지니스 관계 같은거야. 나는 혼자자기 싫어서 사랑이랑 자지만, 얘도 내가 좋아서 같이 자는게 아니라 푹신한 침대에서 잘려고 오는거라고. 우리는 그냥 서로 그런 관계야. 굳이 내가 왜 산책을 시켜줘야 돼? 얘는 나 좋아하지도 않는거 알잖아!"


아.... 너는 아빠를 닮았나보다. 참 말도 잘한다. 근데 묘하게 설득이 된다.

생각해보니... 사랑이는 딸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 싫어한다.

이유는 명확히 모르겠다. 딸이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쇼파에 앉아있던 사랑이는 재빨리 사료를 먹는 척 한다. 밥을 먹을땐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갑자기 사료 먹는 모드로 돌입한 사랑이.

그리고 딸이 방으로 들어가면 다시 쇼파로 온다.

게다가 딸아이가 사랑이가 쉬고 있는 소파옆에  앉을려고 치면, 송곳니를 번쩍 드러내는 못돼먹은 개다.


아이도 상처를 받은게 분명하다.

사실 몇년전만해도 본인 용돈을 다 털어서 개 용품을 사던 아이였다. 사랑이 옷이며, 빗이며, 물통이며... 쓰잘데기 없는 것을 사다 나르던 아이였는데... 아이는 이제 사랑이에게 명확한 선을 그었다.

'give & take 관계'


그럼에도 아이가 여전히 사랑이를 사랑하는게 느껴진다.

여행가서도 사랑이가 잘 있을까 궁금해하는 아이.

사랑이가 푸들중에 제일 예쁘게 생겼다고 말하는 아이.


그러나 그토록 자신을 싫어하는 사랑이에게 '나는 그래도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긴 아이도 힘들었는지

비지니스 관계를 자청했나보다.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릴 때면 "아휴~ 싸가지없는 것"이라며 휙 돌아서버리는 아이.

그런 딸에게 나는 더이상 사랑이를 이름처럼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어쩌면 스스로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한 하나의 선을 만들었으니, 그 선을 존중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알바할래? 산책 20분에 천원 어때? 씻기는 건 안해도 됨. 엄마가 할게."

아이는 "콜!!!"을 외친다.


때로는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관계에 대한 정립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너무 힘들어지는 관계라면... 굳이 직진하지 않아도 좋은거 같다.

상처받는 일이 잦아진다면, 마음 주는 것을 잠시 멈추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상처를 받을지언정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도 생긴다.

때때로 힘든 일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누군가에겐 가족이 될수도, 누군가에겐 애인이 될수도, 누군가에겐 친구가 될수도...


남편은 나와 8년이라는 세월을 연애하며 내게 한차례 이별 통보를 했다.

하... 내가 싫었나보다. 오래 전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는데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나쁜새끼.

(물론 나도 한번은 남편이 싫어 똑같이 복수해주었으니 쌤쌤이라고 치겠다.)


그간의 시간을 뒤로한 채 서로를 향한 모진 말들은 내게 상처가 되었고, 아픔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난 그가 좋았다. 함께 하고 싶었다. 힘들었던 순간을 다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언젠가는 그런 존재가 나타나겠지? 그 때 이겨내도 늦지 않겠지....


다만 아이는 더 이상의 상처가 싫어 자신과 사랑이의 'give & take 관계'를 선포했으니, 난 그저 돈을 주며 그들의 비지니스 관계를 이용할 수 밖에... 다행히 싼 가격이니 그래도 할 만하다;;;


나를 보호하면서... 때때로 나를 희생하면서... 아픔을 감수하면서 만들어지는 관계를 아이도 서서히 알아가겠지.


하지만 기억할 것!
엄마는 무조건 딸 편!
아빠도 무조건 딸 편! 오늘도 아빠는 딸을 향해 으르렁 거리는 사랑이를 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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