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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y 26. 2020

초심 고자

"야! 너 글 쓰지 마!"

징징거리는 나를 향한 남편의 한마디였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남편에게 "아~~ 왜!!! 글을 왜 쓰지 말라고 하는데?"라고 물었다.


너 처음에 글 쓸 때는, 글 쓰는 게 좋아서 쓴다며 순 개뻥이네.
글 써놓고 조회수 없으면 조회수 없다고 징징!
조회수 높으면 라이킷 없다고 징징!
라이킷 늘면 댓글 없다고 징징!
나중엔 다른 글처럼 공유수 없다고 징징!
그리고 'Daum메인'에 뜨면, 맘에 안 든 글이 떴다고 징징!
넌 그냥 안 쓰는 게 나은 거 같아.
좋아서 쓰는 거 아닌 거 같아.


순간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아오 무슨 말을 저렇게 끊기지 않고 하냐...

어쨌든 이때의 상황은 내가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쓸 때의 이야기다.


나는 요즘 논문 심사가 10일 남은 관계로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브런치와 결별했다.

그런데 그렇게 브런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니, 글이 너무 쓰고 싶어 졌다.

순수하게  '조회수, 라이킷, 댓글, 공유수, Daum 메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나의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나중에라도 쓰고자 글의 소재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기록할 때면, 마음속 뜨겁게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밀려온다.


그때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의 순수한 열정과 초심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왜 하지 못할 때, 할 수 없을 때 기억이 나는 걸까...


나는 늘 그렇게 처음 마음을 자주 잊어버리는 '초심 고자'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몸이 여기저기 아파, 건강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무려 30회의 PT를 티켓팅 했다.

소도 때려잡는다는 '무이자 할부'친구가 함께 했기에 굳은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나는 4개월의 시간 동안 열심히 운동을 했고, 29회의 운동이 끝난 날  몸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인바디를 측정했다.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러나...... 갑분싸.....

지방이 늘고, 골격근이 줄었다고?

물론 몸의 상태에 따라 오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다.

나는 내 뒷목에 35kg의 무게를 올리고 백스쿼트를 하는 운동하는 여자가 되었는데...

근육이 줄고 지방이 늘었다니... 믿을 수 없는 마음, 실망한 마음, 황당한 마음으로 나는 또 징징이가 되었다.

나의 실망한 모습과 좌절한 모습을 본 트레이너 선생님은 민망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회원님, 아무리 운동해도 그렇게 많이 드시면... "


그렇구나... 먹는 거엔 장사 없지. 내가 엄청난 대식가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도 운동을 했다는 생각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하지만 제가 엄청 열심히 운동했잖아요!!!!"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때 트레이너 선생님은 뭐가 떠오른 건지 반짝이는 눈으로 이야기하셨다.

"회원님, 처음엔 살 뺀다고 하신 거 아니시잖아요. 통증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건데, 통증 없어지셨잖아요??!!"


아!! 아!! 아!!! 맞다!!!

나 아파서 피티 한 거지?!!

허리디스크, 목 디스크 초기, 어깨 충돌 증후군, 무릎 통증...

이건 뭐 관절이란 관절은 다 아팠던 내가, 통증 없애겠다고 열심히 운동해놓고선...

이제 몸이 안 아프니, 다른 생각을 했나 보다.


"선생님~ 제가 잠깐 목적을 잊었나 봐요. 나 살 빼려고 한 거 아니었는데... 요즘 몸도 안 아프고 건강해졌는데...

"


살도 빠지면 좋겠다는 욕심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건강해졌기에 따라온 생각인 걸까?

처음에 목적에서 늘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갈망이 늘어나는 나를 발견한다.

이게 정말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라는 걸까?

물론 그 욕심 때문에 살도 빠지면 일석이조겠지만...

그 욕심이 가끔은 마냥 행복한 내 삶을 초조하게도, 긴장하게도 만들곤 한다.


무엇을 하는 중에 있어서, 내가 하려는 처음의 뜻을 기억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래서 사람들이 '초심', '초심' 하나보다.


내가 얻은 깊은 깨달음을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생각났다.

매일 '새 차'를 노래하는 '징징이의 남편'이다.

이 남자는 감성이 풍부한 '밤시간'이 되면 차를 산다고 결심하고,

이성이 찾아오는 '낮시간'이면 형편과 사정을 헤아려 차를 포기하기를 3년째하고 있는 '불쌍한 남자'다.

이 불쌍한 남자에게 차를 사주진 못할 망정, 위로라도 하겠다고 맘먹은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우리가 결혼한 건 말이야.

더 큰 집에서 살려고, 더 좋은 차 타려고 결혼한 건 아니었지! 같이 함께 있으며 더 행복하려고 결혼한 거였지.

옛날 생각 좀 해봐. 애 씻기는데 물이 안 나오질 않나... 집주인이 갑자기 전화해서 집을 빼 달라고 하질 않나...

지금 빚은 많아도, 예전에 비하면 우리 완전 좋잖아! 초심을 잃지 말자고!!!"


나의 깊은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었으나, 남편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야. 더 큰 집 갈려고 마음도 먹고 욕심도 부려야 계획도 세우고! 더 열심히 하는 거지!~"


남편은 내 언어체계에서 욕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욕 말고는 아무 생각이 안 나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하루 지났으니... 글로 써서 말해봐야지.


"발전하는 거 좋은데...

지금 여기, 이 순간 우리가 함께 하기에 행복한 것도 기억하자.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기억해보라고!

23살 24살 나이에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그 순간을 담아두고, 서로 보듬어주고 살자고...

그러다가 잘돼서 큰 집으로 이사 가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우리 지금 괜찮잖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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