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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y 10. 2020

열여섯 살 아이가 차려준 첫 밥상

어버이날 이야기 <2>

엄마! 내가 요리한 거 글로 써주면 안 돼?
엄마 글 보니까... 완전 나 사고뭉치로 되어있잖아.
이렇게 끝나면 안 되지!
사진 찍은 것도 올리고 글로 써줘!


딸아이는 자신이 요리한 것을 꼭 브런치에 남겨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나 역시 어제의 저녁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들어오라는 7시에 맞춰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띠띠딕!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누르고 현관을 연다.

사고뭉치가 어버이날을 맞이해 첫 요리를 한다고 하니.... 믿어본다고 했지만, 불안감을 숨길 수 없었다.

발을 현관에 들이는 순간, 예민한 후각은 "통과"를 외쳤다.

일단 탄 냄새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아이를 쓱 쳐다보는데... 황당...

친구들 만날 때처럼 화장을 하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화사한 아이.

그 아이는 나를 보더니 "엄마 가서 예쁜 옷 갈아입고 와. 우리 분위기 내야지. 화장도 하고 나와. 내가 세팅해놓을게."


하.... 그래... 시키는 대로 해야지.

퇴근한 남편 역시 셔츠도 벗지 않고, 드레스룸에서 숨죽이며 아이의 호출을 기다렸다.

10분, 20분, 30분....  짜증 폭발 직전.

나는 참지 못하고 "다민아! 엄마 배고프면 짜증 장난 아닌 거 알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엄마 진짜 거의 다 됐어. 딱 3분만!!!!"

남편은 배가 고픈 거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싱글벙글 웃어대며, "내가 벌써 딸한테 밥상 받을 나이인가? 나 아직 40인데... 너무 감회가 새롭다. 아 너무 기대돼!!! 너 표정 관리 잘해! 무조건 맛있다고 해!"

 그렇게 서로 다짐을 하던 중 아이는 우릴 불렀다.


와~~~~~~~~~ 일단 그림은 성공이다.

근데 맛을 보니 더 맛있다. 정말 너무 맛있다!

처음 하는 요리를 얼마나 잘했는지.

기다림에 지친 우리 부부는 폭풍 흡입하는데.... 신기하게 아이는 잘 먹지 않는다.

나는 "왜 안 먹어? 배 안 고파?"라고 물었다.

평소 먹는 거에서 빠지지 않던 아이가 먹지 않고 계속 설명만 해댄다.

"엄마 내가 말이야. 백종원 아저씨가 하란대로 했어.

그리고 말이야. 뭐든 제일 비싸고 좋은 걸로 샀는데. 맛 정말 괜찮아?

근데 한우는 정말 비싸더라. 그건 내가 가진 돈보다 비싸서 못 샀어.

엄마! 고기 굽는 영상 많이 보면서 공부한 건데 엄마 좋아하는 스타일만큼 구워진 거 맞아?

참! 아빠! 엄마 옆에 꽃은 어때? 너무 이쁘지? 저거 엄청 비싼 거야!

그리고 파스타는 괜찮아? 좀 짜지 않아?

스테이크는 질기지 않고?

엄마 이거 허브솔트랑 먹으면 맛있다길래 사봤어.

그리고 양파 썰 때 진짜 눈 맵더라. 나 그거 사람들이 연기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막 눈물 나더라고..."

 (이보다 10배는 더 많았던 아이의 이야기)


평소 같았으면 "야~ 랩 하냐? 천천히 말해. 먹고 말해!"라며 쏘아붙였을 못된 엄마인데, 오늘 나는 아이의 음식 설명에 마음이 따뜻했다. 특히나 아이의 손등을 보았을 때...


하나라도 빼놓을까 손에 장 볼거리를 적어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올 때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서툰 실력으로 요리를 하고, 엄마 아빠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하는 초롱초롱한 눈빛.

양이 부족할 거 같은지 자신은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다며 천천히 움직이던 젓가락.

정말 맛있는지 솔직히 말해달라던 아이의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담긴 표정.

요리 비법을 알려달라는 엄마의 부탁에 그저 "하란대로 하면 돼"라며 수줍게 웃는 모습까지...

그리고 허겁지겁 먹던 엄마 아빠의 젓가락이 느려지니, 그제야 스테이크를 먹던 아이를 보며.... 마음이 시큰해지기까지 했다.


부족한 엄마 밑에서 이만큼 자라 준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어버이날이라고는 하지만...  날 어버이로 만들어 준 네가 있음에 감사했다.

철부지 같은 답답한 나를 '엄마'라 부르며, 끝까지 따라 준 네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나는 아이가 주는 사랑에서 행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드라마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배가 부르니 내 뒤에 있는 세트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 바닥이 기름 천지로 미끄러워 발을 디딜 수가 없었고, 싱크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아이는 청소도 자신의 몫이라며, 우리를 한사코 말렸지만....

나는 친절하게 "음식한 사람은 쉬는 거야!!! 가서 쉬어~"라며 훌륭한 가식을 연기했다.

'얘야.... 널 믿는 것은 음식 하는 거까지 만이야!!! 청소까지는 정말 못 믿겠다. 저리 가 있거라!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믿어보려 노력해볼게ㅜㅜ'

나는 남편과 쉬지 않고 소주를 뿌려가며 바닥을 닦았다. 남편은 이게 현실이라며 나를 찍었다.



그래도 좋았다. 행복했다.

이 예쁜 기억은 때때로 힘들고 지친 우리네 일상을 잘 버티며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선물이 되겠지...

그 기억을 이렇게 글로 담아서, 오랫동안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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