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방정 떨지 마!

by 이한나

논문을 쓰고 나면 교수님들이 해주시는 한결같은 이야기가 있다.

"긴장 풀리면 아플 수도 있으니, 6개월 정도는 몸조심하세요."

몸조심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 중 가장 끔찍했던 것으로는 논문이 통과되었음에도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극심한 압박감과 긴장으로 목숨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강의하는 도중에 죽었다는 이야기에 정말 마음이 아팠다.)


내 주변에도 논문 통과 후 우울증으로 입원하는 사람

너무 오랜 시간 앉아 있어 허리 디스크가 터져 수술하는 사람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신경이 손상된 사람

통과가 되어도 계속 마음에 불안함을 느끼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등

다양하게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교수님께서는 뭐가 하나 박살 나야 박사를 한다는 말을 종종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박살 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철저하게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먼저 장시간 버텨줄 허리 근육을 비롯해 탄탄한 몸을 만들고자 헬스장을 가까이하는 것과 더불어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1. 면역력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면 유산균 먹기

2. 오만 과일과 야채 갈아서 마시기

3. 오래 앉아있지 않기(이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집중력이 짧은 관계로 그냥 되는 일)

4. 스트레칭 자주 하기(우리 집은 오만 스트레칭 도구로 헬스장을 방불케 한다.)

5. 날 새지 않기


나의 노력이 통한 것인지 나는 논문이 끝나도 아프지 않았다.

조금 무기력은 했지만, 괜찮았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봐봐. 여보 나는 괜찮잖아. 나 안 아파. 그리고 나는 이후에도 안 아플 거라는 거 확신해. 어쩌면 설렁설렁한 내 성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봐.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아프지 않은 건가? 어쨌든 난 계획대로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며 지금의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딱 지난주...

딱 지난주...

딱 지난주까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다.

성인이 돼서 애 낳을 때 빼고 환자복을 입기는 이게 처음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친구들과 만남을 마치고 집에 간다고 신호를 보내던 나.


집에 가보니 남편은 정말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딱히 어디가 아프다고 한 것이 아니기에 우린 평소처럼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 남편의 묵직한 톤의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는 말소리에 잠이 깬 나는 남편의 통화 내용에서 '선별 진료소', '열이 38.5도', '코로나'라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를 본 남편은 "나 열이 많이 나. 회사 못 갈 거 같아. 나 선별 진료소로 가야 된대. 검사받고 진료받고 올게. 어디 나가면 안돼"라는 말을 하고 집을 떠났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남편에게 옮은 것인지 저녁을 먹은 직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오빠 나 몸이 이상해. 무릎도 아프고, 골반도 아프고... 열도 나."


남편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진통제를 먹으며 39도의 열을 버텨낸 우리들.

안방에서 나가지도 않고 아이만이라도 살려보고자 침대에서 몸부림쳤던 우리들.

결국 다음날 나도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고, 또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그렇게 3일을 아프고, 둘 다 음성 판정을 받은 뒤에야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병명: 어쩌고 저쩌고 장염>(의학용어는 참 어렵다.)


입원 4일 차 이제야 열이 떨어지고... 천천히 글을 써본다.

나에게 병을 옮겨준 남편은 엄청난 회복 속도로 혼자 퇴원을 했다.


내가 아무리 운전 잘해도 뒤에서 박아대면 빼도 박도 못하는 것처럼 같이 사는 사람이 병을 전달하니 나도 억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괜찮다.' '나는 박살 나지 않는다.'던 말들이 얼마나 무색한지... 자의든 타의든 나도 논문을 마치고 호되게 고생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엄마가 흥얼거리던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교회 노래가 생각났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며 뭘 안다고 깝죽거렸던 건지 모르겠다.


그저 한 가지 배운 것이라면 '입방정 떨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절대 안 아플 거라는 그런 말을 어찌 그리 쉽게 했단 말인가?!...

'나는 괜찮다고!'

'나는 문제없다고!'

'호언장담?!'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다신 하고 싶지도 않은 행동이다.


근데... 또 다 낫고 이 병원에서 나가면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남편이 준 거라고! 나는 괜찮았다고'와 같은 말로 깝죽거릴 내가 확실하기에 아픈 몸을 이끌어 글을 쓰고 있다. (정말 그만 깝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내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끔찍하게 아팠던 이 시간,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순간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이 힘든 시간 속에서 감사하게도 (잠시나마) 나는 더욱 겸손해질 수 있었고,

집에서 엄마 아빠 없이 처음으로 혼자 밥해먹고사는 외동딸 아이는 자립이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딸아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엄마 안 닮았나 봐. 설거지 쌓아놓는 게 싫더라! 그래서 밥 먹자마자 깨끗하게 설거지 다 해놨어"라는 밉상의 언어로 우릴 안심시켜 주었다.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나 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공복에만 입는 블라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