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에만 입는 블라우스

by 이한나

수요일=패밀리데이=칼퇴하는 날=외식하는 날.

나는 지방에서 일을 마치고 칼퇴하는 남편을 데려갈 요량으로 남편 회사를 향해 달려갔다.


너무 일찍 도착한 나는 남편이 나오기까지 잠시 커피라도 마시며 기다리고자 회사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내가 입장하는 순간 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고, 이어 두 남자도 나를 쳐다봤다.

세명의 남자가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는 것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평소 아름다운 외관으로 이성의 눈길을 자주 받았더라면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테지만...

절대 내 인생에서 경험해 본 일이 아니였기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며 고개를 숙여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악~~~~~~~~~~~~~~~~~~~~~~~~~!!!!!!!!!!!!!!!!!!!!!!!!!!!!!!!!!"

바로 몸을 뒤돌렸다.

'문 밖으로 나가버릴까? 말까?'

'그럼 더 쪽팔리게 되는 건가?'

3초 동안 많은 생각을 했던 나는

태연하게 "어머나 이게 왜 열려있지?"라며 블라우스를 잠갔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0731165912_1_filter.jpeg 사진을 보며 그려본 내 모습 ㅜ

과감하게 풀어헤친 블라우스의 시작은 이렇다.

6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온몸이 땀에 뒤덮인 나는 집에 가기 위해 뙤약볕에 주차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창문도 열고, 에어컨도 켰지만 한껏 달아오른 열을 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서있을 때는 평평했던 나의 뱃살들이 운전석에 앉으니 다 함께 한 곳으로 모이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게 "답답해요. 겹치니 힘들어요. 옷이라도 풀러 주세요!"라며 외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뱃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블라우스를 가슴 아래로 다 풀어헤쳤고 바지 버클까지 열어 주었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순간은 해방과 자유를 맛보았지만 카페에 들어설 때 그들을 다시 속박하지 못한 죄로 밤새 이불킥을 하고 싶은 기억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를 향한 세 남자의 눈빛을 아무렇지 않은 척 외면한 나는 당당하게 앉아 노트북을 켰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현실에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 감사했으며, 끝까지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아 주문한 커피는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저 세 남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뭐 대략 '와...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냐? 진짜 최악이다.' 이러지 않았을까?


오만 생각의 끝에 남편의 전화가 왔고, 나는 마치 바쁜 듯 카페를 빠져나갔다.

남편을 보자마자 내 입은 쉬지 않고 "오빠... 나 차에서 옷 열고 있었거든. 이거 봐봐. 블라우스 말이야. 바지도 풀고... 근데 나 그렇게 카페에 들어갔는데~~~ 어쩌고 저쩌고..."

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남편은 한숨을 뿜었고, 마치 본인이 카페에서 나의 배를 본 남자들이 된 것처럼 참던 한마디를 뱉어냈다.

"안 본 눈 삽니다 했겠지 모"


난 서운하지 않았다.

뭐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자기 예쁜 배~ 나만 보고 싶은데... 속상한 걸." 요런 멘트는 1프로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몸의 전반적인 비율과는 어울리지 않는 볼륨감이 살아있는 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배는 밥만 먹었다 하면 올챙이처럼 툭 튀어나와 누가 봐도 임신한 사람으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다.

운동을 하면 배가 들어갈까 했지만 복근이 생겨도 내 배는 뭐만 먹었다 하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배가 되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쏘~옥 들어가는 배.

나는 이런 배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의 말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고 충분히 납득되었다.......고 느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은근히... 아주 은근히 서운함이 번져갔다.

"오빠... 내 배 이쁘다며? 튀어나온 거 귀엽다며? 배 나온 여자가 이상형이라며?"

남편은 이상 전선을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나름 16년 동안 나와의 대화에서 정답을 찾는 것을 훈련하며 적중률 99%를 선보였지만, 오늘은 1프로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아~ 그러니까 나만 보고 싶은 배인데 다른 남자들이 봐서 속상해서 그런 거야. 걔네들이 안 봤으면 하니까 안 본 눈 삽니다 그런 거지."


말이냐 막걸리냐!

하지만 본심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외식 메뉴로 삼겹살을 실컷 먹고 올챙이가 된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편은 "블라우스 너무 불쌍해. 비싼 블라우스... 진짜 안쓰럽다. 주인 잘못 만났네"라며 나를 놀려댔다. 딸아이 역시 "진짜 대박이다."며 핸드폰을 꺼내 내 배를 찍어댔다.


"이것들이 세트로!!!"라고 성질을 내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너무 궁금했다.

"한번 봐봐. 대체 어떤데?"라며 나의 배를 평소 내가 볼 수 없는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내 배와 딸이 정면에서 바라보며 찍어준 내 배는 확연하게 달랐다.

평소 위에서 본 배는 다소 귀엽기도 했지만 정면 샷의 배는... 남편 말대로 블라우스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사진 속 블라우스 단추들의 긴급한 구조요청을 느꼈던 나는 이후에 옷을 살 때에는 밥 먹을 것을 계산해 좀 더 넉넉한 옷을 사 입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 나에게 어쩌네 저쩌네 할 때면 '너나 잘해'라는 마음의 언어로 귀를 닫아버리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나를 향한 안티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직업상 매번 평가를 받아왔던 사람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며 어떠한 방법으로든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매번 일을 할 때마다 직접적인 평가가 따라온다.)

내 강의를 들은 교육생들은 객관식뿐만 아니라 주관식으로 강의에 대한 소감과 강사에 대한 생각을 낱낱이 적어댄다.

대체 왜 이렇게 베베베베 꼬였나 싶을 만큼 이상한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중 '강사가 화장이 너무 흐리다'는 평을 받았을 때는 반드시 필체를 확인해 "그게 대체 강의랑 무슨 상관인데요? 강의에 대한 평가를 할 것이지. 어디서 외모 지적일이야? 너나 잘해!"라고 와다다다 쏟아붓고 싶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것과 사람이 싫은 데는 이유가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기억하며 소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곤 했으나 한 가지 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었으니... 부정적인 한 마디는 그간 나를 향한 긍정적인 평가들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내며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가가 싫었고, 주관식은 더욱 싫었다.

물론 지금도 싫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모든 것이 꼭 나빴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상대의 말이 옳았건 옳지 않았건 그 말이 있었기에 한 번쯤은 주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보지 못하는 '사진에 찍힌 나'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순간이 평생 객관적일 수 없는 내 생각과 시선들의 범위를 확장해주는 시간은 아닐까?'


내 인생의 안티들이 나에게 있어 분명 마이너스만은 아니였음에 확신한다.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로 시작하는 나의 안티들이여!

내 배를 감싸고 있던 터질 것 같았던 블라우스를 알려줘서 고맙소!

이 외에도 나에게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당신들...

나를 보여주고, 알려줘서 고맙소이다.

때로는 마이웨이를 외치다가도, 한 번씩 시선을 옮기고 마음을 열어 나를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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