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온몸이 땀에 뒤덮인 나는 집에 가기 위해 뙤약볕에 주차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창문도 열고, 에어컨도 켰지만 한껏 달아오른 열을 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서있을 때는 평평했던 나의 뱃살들이 운전석에 앉으니 다 함께 한 곳으로 모이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게 "답답해요. 겹치니 힘들어요. 옷이라도 풀러 주세요!"라며 외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뱃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블라우스를 가슴 아래로 다 풀어헤쳤고 바지 버클까지 열어 주었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순간은 해방과 자유를 맛보았지만 카페에 들어설 때 그들을 다시 속박하지 못한 죄로 밤새 이불킥을 하고 싶은 기억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를 향한 세 남자의 눈빛을 아무렇지 않은 척 외면한 나는 당당하게 앉아 노트북을 켰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현실에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 감사했으며, 끝까지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아 주문한 커피는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저 세 남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뭐 대략 '와...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냐? 진짜 최악이다.' 이러지 않았을까?
오만 생각의 끝에 남편의 전화가 왔고, 나는 마치 바쁜 듯 카페를 빠져나갔다.
남편을 보자마자 내 입은 쉬지 않고 "오빠... 나 차에서 옷 열고 있었거든. 이거 봐봐. 블라우스 말이야. 바지도 풀고... 근데 나 그렇게 카페에 들어갔는데~~~ 어쩌고 저쩌고..."
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남편은 한숨을 뿜었고, 마치 본인이 카페에서 나의 배를 본 남자들이 된 것처럼 참던 한마디를 뱉어냈다.
"안 본 눈 삽니다 했겠지 모"
난 서운하지 않았다.
뭐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자기 예쁜 배~ 나만 보고 싶은데... 속상한 걸." 요런 멘트는 1프로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몸의 전반적인 비율과는 어울리지 않는 볼륨감이 살아있는 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배는 밥만 먹었다 하면 올챙이처럼 툭 튀어나와 누가 봐도 임신한 사람으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다.
운동을 하면 배가 들어갈까 했지만 복근이 생겨도 내 배는 뭐만 먹었다 하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배가 되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쏘~옥 들어가는 배.
나는 이런 배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의 말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고 충분히 납득되었다.......고 느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은근히... 아주 은근히 서운함이 번져갔다.
"오빠... 내 배 이쁘다며? 튀어나온 거 귀엽다며? 배 나온 여자가 이상형이라며?"
남편은 이상 전선을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나름 16년 동안 나와의 대화에서 정답을 찾는 것을 훈련하며 적중률 99%를 선보였지만, 오늘은 1프로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아~ 그러니까 나만 보고 싶은 배인데 다른 남자들이 봐서 속상해서 그런 거야. 걔네들이 안 봤으면 하니까 안 본 눈 삽니다 그런 거지."
말이냐 막걸리냐!
하지만 본심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외식 메뉴로 삼겹살을 실컷 먹고 올챙이가 된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편은 "블라우스 너무 불쌍해. 비싼 블라우스... 진짜 안쓰럽다. 주인 잘못 만났네"라며 나를 놀려댔다. 딸아이 역시 "진짜 대박이다."며 핸드폰을 꺼내 내 배를 찍어댔다.
"이것들이 세트로!!!"라고 성질을 내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너무 궁금했다.
"한번 봐봐. 대체 어떤데?"라며 나의 배를 평소 내가 볼 수 없는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내 배와 딸이 정면에서 바라보며 찍어준 내 배는 확연하게 달랐다.
평소 위에서 본 배는 다소 귀엽기도 했지만 정면 샷의 배는... 남편 말대로 블라우스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사진 속 블라우스 단추들의 긴급한 구조요청을 느꼈던 나는 이후에 옷을 살 때에는 밥 먹을 것을 계산해 좀 더 넉넉한 옷을 사 입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 나에게 어쩌네 저쩌네 할 때면 '너나 잘해'라는 마음의 언어로 귀를 닫아버리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나를 향한 안티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직업상 매번 평가를 받아왔던 사람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며 어떠한 방법으로든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매번 일을 할 때마다 직접적인 평가가 따라온다.)
내 강의를 들은 교육생들은 객관식뿐만 아니라 주관식으로 강의에 대한 소감과 강사에 대한 생각을 낱낱이 적어댄다.
대체 왜 이렇게 베베베베 꼬였나 싶을 만큼 이상한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중 '강사가 화장이 너무 흐리다'는 평을 받았을 때는 반드시 필체를 확인해 "그게 대체 강의랑 무슨 상관인데요? 강의에 대한 평가를 할 것이지. 어디서 외모 지적일이야? 너나 잘해!"라고 와다다다 쏟아붓고 싶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것과 사람이 싫은 데는 이유가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기억하며 소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곤 했으나 한 가지 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었으니... 부정적인 한 마디는 그간 나를 향한 긍정적인 평가들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내며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가가 싫었고, 주관식은 더욱 싫었다.
물론 지금도 싫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모든 것이 꼭 나빴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상대의 말이 옳았건 옳지 않았건 그 말이 있었기에 한 번쯤은 주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보지 못하는 '사진에 찍힌 나'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순간이 평생 객관적일 수 없는 내 생각과 시선들의 범위를 확장해주는 시간은 아닐까?'
내 인생의 안티들이 나에게 있어 분명 마이너스만은 아니였음에 확신한다.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로 시작하는 나의 안티들이여!
내 배를 감싸고 있던 터질 것 같았던 블라우스를 알려줘서 고맙소!
이 외에도 나에게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당신들...
나를 보여주고, 알려줘서 고맙소이다.
때로는 마이웨이를 외치다가도, 한 번씩 시선을 옮기고 마음을 열어 나를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