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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Sep 07. 2020

나는 색깔별로 명품백을 갖고 있다.

고작 명품백이 하나라고???

화장품 관심 없음.

가방 관심 없음.

옷, 구두, 액세서리 관심 없음.


나는 오로지 '먹는 것'에만 큰 집착이 있을 뿐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면...

강의할 때 입는 쟈켓은 딱 2개.

쟈켓 안에 입는 블라우스는 똑같은 걸로 7개를 사다 놓고 입을 만큼 패션에는 관심이 없다.


패션뿐만 아니라 명품이라곤 전혀 모르는 나였다.

그런 내가 명품 브랜드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야흐로 7-8년 전 남편이 베트남 출장을 가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해외 출장을 오고 가며 면세점에서 명품을 사다 주는....

그런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장면이 아니다.

남편은 호텔 앞 짝퉁 가게에 들어가 색깔별로 오만 짝퉁 가방을 사 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가방을 펼쳐 들고 "이것은 고야드! 요런 체크 가죽은 보테가! 이 금박 로고는 멀버리라는 거야! 너 이런 거 처음 봤지?"

백만원이 훌쩍 넘는 명품가방을 짝퉁으로 15,000원에 사 와놓고 신이 난 남편.

덩달아 명품을 받은 듯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보~ 이거 너무 이쁘다~ 짝퉁이면 어때~ 편하면 장땡이지!!!!"


그렇게 짝퉁 가방을 신나게 메고 다녔다. 어느 곳을 가던지 편하게 들고 다녔던 가방.

'이건 짝퉁이야.'라고 의식조차 하지 않고 들고 다녔던 가방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의식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나와 똑같은 가방을 멘 여성을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쑥스러워졌고, '저 여자껀 진짜겠지?'라는 마음에 스스로 작아지는 내가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남편은 "다음엔 오빠가 진퉁 사줄게."라는 약속을 건넸고 나는 은근히 남편의 해외 출장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외 출장을 다녀온 남편은 정말 진퉁을 사 왔다.

그 가방은 비닐에 들어있지 않았고 브랜드가 적힌 종이백에 들어있었다.

당당하게 쇼핑백을 건네는 남편은 "이건 진퉁이야. 아줌마가 이건 진짜래. 가죽도 다른 거 보이지? 이 가방은 천가방에 다시 넣어주더라니까. 이건 꽤 비싸게 주고 산거야. 봐봐 쇼핑백도 다르지?"


좋았다. 남들은 큰 명품이라고 안 하겠지만... 그런 걸 처음 가져본 나는 좋았다.

비가 오면 가방부터 움켜쥐며 보호자의 기분으로 가방을 지켰던 나였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마다 가방을 앞으로 멘 내가 있었고, 그 가방을 참 좋아했다.

그렇게 가방과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을 때쯤 친한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나는 짝퉁 가방을 선보이며 "야 보이냐? 색깔대로 있어. 흰색, 녹색,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진짜 징하지 않냐??? 근데 말이야... 나 진퉁도 하나 있어. 보여줄게."

무려 난 5개의 색깔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나의 첫 진퉁 가방을 친구들에게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내 손은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명품 좀 볼 줄 알던 나의 친구는 "야 이건 짭 같은데... 좀 짭 같지 않냐?"라고 말했고,

그 옆에 친구도 "글게... 가죽만 좋아 보이는데..."라며 가방을 이리저리 만져댔다.


"야 오빠가 딴 건 몰라도 이건 진짜래. 베트남 짭가게 아줌마가 이것만 진짜로 파는 거라고 했어."

친구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짭가게에서 이거만 진짜라고??? 좀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한바탕 웃었지만... 그때부터였는지 그 가방이 불편해졌다.

과거 여행에서 줄기차게 메고 있는 내 모습도 어쩐지 쑥스러워졌고, 가방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출장을 가는 남편에게 "다시는 짝퉁 사 오지 마. 그 가게 구경 가지도 마!"라고 단단히 일렀고, 평소 나의 가방을 눈독 들이던 둘째 언니에게 선심 쓰는 척 가방을 주었다.


 '짭 같은데' 한 마디에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나는 지난날 짝퉁 가방을 명품처럼 모셨던 내 모습이 미웠다. (물론 베트남 짭가게 아주머니 말처럼 진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말 한마디에 '가방의 보호자'에서 '가품 감별사'가 되어 철저하게 가방을 외면하는 나의 모습.


이런 느낌을 예전에도 가져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어떤 사람과 조금 가까워지려 할 때 누군가는 내 귀에 속삭여댔다.

"걔랑 너무 가까이하지 마. 걔 진짜 소문이 자자하더라. 이간질은 어찌나 잘하는지... 그리고 걔 말이야. 유부녀가 총각 혼자 사는데 가서...(중략) 아 몰라... 난리도 아니었나 봐. 거짓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그 말을 들어서였을까?

나에게 피해 준 것도 없는 그 사람으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하고, 그 사람이 주는 친절에 대해 의심부터 하게 되는 내 모습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있었기에 가품인 것을 알 수도 있었고,

이간질과 거짓말을 일삼는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을 일을 피해 갈 수도 있었겠지만...

말 한마디가 주는 위력을 다시 느끼며 과거에 메모해 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를 보며 적은 글이었다.

                                                                                                                                                            

< 예측을 해도 카메라가 돌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안정환 씨>

경험도 많고, 지식도 있고, 상황에 대한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 될 때마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하지만 나의 말로 인해 누군가가 동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말의 영향력을 알기에...

멈춘다는 것.


마흔 살에 다가가는 나의 인생에서...
한 가지 꼭 가져가고 싶은 것은...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
한번 더 상황을 돌아보며 적절한 지 고민하여 뱉어낼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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