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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Sep 15. 2020

로또에 당첨된 남편

<월요일 아침>

"한나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한나야! 오늘 말이야. 너 가서 꼭 복권을 사야 돼! 꼭 복권을 사라~"

웃음이 핑 돌았던 나는 "왜 어무니? 뭔 좋은 일 있어요? 로또 사라는 거죠?"

"그래그래~ 아니 세상에 어젯밤 꿈에 우리 아들이 복권 50억 당첨됐다면서 나한테 돈을 주더라고. 얼마나 생생하던지. 너 오늘 꼭 가서 복권사야 돼! 알았지?"

"알겠어요~ 당첨되면 어머니 많이 드릴게요~"

어머니는 깔깔거리며 웃으시다 전화를 끊었다.


진짜 50억이 생기면 어떨까?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복권 사러 가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나의 붕어 같은 기억력을 알아서였을까?(어머니는 남편에게도 반드시 복권을 살 것을 단단히 일렀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현금 준비했어. 복권 사러 가자!!!! 오늘 사야 돼"라며 나를 독촉했다.

그렇게 우리는 집 앞 복권방에서 5,000원어치의 로또, 그리고 2장의 연금복권을 샀다.

많이 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안될 것이기에...


나는 복권을 더 사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연금복권 당첨된 사람 후기 봤어?"

"될 거면... 여기서 되겠지. 남은 3천 원으로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라고 말하며 남편을 달랬다.


그렇게 그렇게.... 화, 수, 목, 금..... 복권을 잊고 살았는데...

대망의 토요일,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유일하게 늦잠 자는 날인 토요일에 남편은 7시도 안돼 뒤척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데?"

남편은 너무 생생하다는 듯 "나 꿈을 꿨는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깼어. 세상에.... 내가 회사 주차장에서 똥이 너무 마려운 거야. 그래서 평소처럼 화장실을 찾는데 화장실이 없어. 아무리 찾아도 없어. 근데 내가 똥을 못 참겠는 거야. 결국 똥이... 똥이 나왔는데~ 내가 반바지를 입고 있었거든. 그 똥이 내 왼쪽 다리 밑으로 물처럼 흘러내리고, 막 똥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내가 회사 cctv 없는 곳으로 막 뛰어갔는데... 아무도 못 본 줄 알았는데... 누가 회사 댓상(익명의 댓글 상담실) 나 똥 싼 걸 이야기하는 거야. 너무 쪽팔려서 깼어."


"진짜 드럽다... 가지가지한다. 고작 똥 이야기로 내 단잠을 깨우냐?"

남편의 똥 이야기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이제 꿈까지 똥꿈이구나 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야~ 우리 복권 샀잖아!!! 근데 똥꿈이야~~ 대박~~~~"


맞다!! 나는 복권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될 놈'이었나 보다. 그래서 똥꿈으로 암시를 준 것이 틀림없었다.


오늘 남편의 똥 이야기가 너무 좋아졌다.

다리 사이로 줄줄 내려오는 똥이 더럽지 않았던 나는 "좋은 꿈 꿨네~"라며 남편을 칭찬해 줬고, 낮잠을 실컷 자라고 궁딩팡팡을 해줬다.


우리는 토요일 내내 50억으로 뭘 할지, 어느 아파트로 이사 갈 것인지, 어떤 차를 살 것인지, 부모님을 얼마 드릴 것인지 상상 속에서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상상했던 행복을 얻을 수 있을지 말지 알려주는 밤 9시가 되었다.


만약 로또가 되었다면... 나는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꽝이었다. 아직 연금복권 당첨 여부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 역시 기대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복권 꿈도, 남편의 똥 꿈도... 그냥 꿈이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바지에 똥을 싸가며 cctv 추격전까지 벌였던 남편이 측은했던 나는 한마디 했다.


"여보. 이후로도 여보는 로또 절대 안 돼.
그니까 하지 마. 그리고 사람이 왤케 욕심이 많아?
16년 전에 오빤 이미 로또 당첨돼 봤잖아. 기억 안 나?
16년 전... 넌 법적으로 나를 아내로 맞이했어. 이미 당첨된 거라니까~
이렇게 이쁜 여자랑 살지. 딸도 있지.
이게 로또지? 별게 로또야? 여기서 더 큰 욕심부리면 안 되는 거야~!



그때 남편은 피식 웃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한마디 했다.

"안 졸려? 그냥 자!"


신기하게도 남편의 간절한 바람대로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이 남자 말에 파워가 있나 보다 -..-)


나는 잠이 들락 말락 할 때의 몽롱해지는 기분으로 행복을 찾아댔다.

'로또는 되지 않았지만... 나는 행복해! 그래도 지금 우리 괜찮잖아~ 같이 웃을 수 있잖아~'라면서...




때때로 우울함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밀려올 때도 있지만 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남이 아닌 내가 선택한다.


물론 나도 엄청나게 큰 폭풍 앞에서는 호언장담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한나 인생의 희비극은 이한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순간순간 좋은 면, 행복한 면을 찾으려 한다.


결국 나는 우리 가족의 '로또'다.

남편 너 또한 '행운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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