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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Nov 23. 2020

남편은 내가 부끄럽다고 했다.

집 앞에 대형 쇼핑몰이 생긴 이후로 우리 가족은 심심하면 그곳을 간다.

이유는 다양하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 걷기 운동을 위해.

-날이 추울 때 걷기 운동을 위해.

-돈을 쓰고 싶을 때.


어젯밤 우리는 저녁밥을 소화시킬 겸 마스크를 단단히 채우고 쇼핑몰로 향했다.

집 앞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집에서 입고 있던 티와 바지, 집에서 추울 때 걸치는 검정 뽀글이를 입고 쇼핑몰에 입성했다.

가족들과 쇼핑몰에서 옷도 구경하고, 아이 겨울 옷도 사주고 싶던 나는 가족들보다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두 걸음 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옆에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뒤에서 보니까 여보 진짜 패션 쩐다. 완전 구리다 구려. 같이 다니기 쪽팔릴 정도야~"

딸아이 역시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엄마 완전 패션 테러리스트야. 진짜 부끄럽다 부끄러..."

정말 그런가 싶어 고개를 내려 내 모습을 보았다.

"뭐가 구려? 괜찮은데~~ 한 번 멀리서 나 찍어봐. 진짜 구린가 보게."라는 말과 함께 마스크 속에서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부끄러우면 조금 떨어져서 가. 사진으로 보니 좀 구리긴 하다... 먼저 가. 괜찮아~"

그런데 남편은 갑자기 크게 팔을 들어 나를 자신의 가슴에 폭 싸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남자 내가 부끄럽다더니... 아무튼 스윗하다니까~~~'

내 어깨를 크게 감싸 안은 남편에게 나는 귀염둥이가 되어 속삭인다.

"나 부끄럽다더니... 뭘 그렇게 꼭 안고 가?~~~"

남편은 지긋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까이 있어야 니 옷이 안 보여. 떨어지지 마! 너 진짜 딱 거렁뱅이 꼴이야. 나랑 다민이라도 없으면 쇼핑몰에 시식하러 온 사람인 줄 알 거야. 최대한 가까이 붙어. 내 눈에 안 띄게!!!!"


하... 너무 편하게 살았던 것일까?

수면바지를 입고 외출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고, 수면양말을 신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으니...

나이 탓이라고 하기엔 말도 안 되는 거 같고...


최근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며 나는 더욱 당당해진 것은 아닐까?

마스크를 씌어주니 남에게 무언가 요구하기도 쉽다고 느꼈다. 심지어 짜증날 때는 마스크 안에서 실컷 1818을 내뱉고 표독한 눈으로 째려보는 데는 고수가 되었다.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그토록 본능에 충실하게 이끌었나 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망나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풀린 고삐가 한번 확 당겨지는 일이 있었으니....


수업을 하러 학교에 갔는데 다른 교수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수님~ 저 금요일에 이마트에서 교수님 봤습니다. 남편분이랑 같이 장 보러 가셨나 봐요."

놀란 나는 "아... 보셨어요? 저는 못 봤는데.... 아... 저 복장이 엄청 이상했을 텐데... 아이고 창피해라..."

"집 앞에 나오면 다 그렇죠 뭐. 남편분이랑 재밌게 이야기하고 계시길래 아는 척 할 수가 없었어요."

교수님과의 만남이 끝나자마자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금요일에 이마트 갈 때 뭐 입었어?? 교수님이 나랑 여보를 봤대. 나 그때 핑크색 수면바지 입고 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 그때 음담패설 엄청하지 않았냐? 여보가 나한테 저질이라고, 더럽다고 한 날 아니야? 들었을까? 들었으면 커피 먹자고 안 했겠지? 아 진짜 숨고 싶다ㅠㅠ"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절망에 빠진 나를 구하고자 노력했다.

'치... 부부가 야한 농담도 할 수 있지 뭐~'

'집 앞 마트인데 편하게 옷 입고 갈 수 있지 뭐~'

'어떻게 평생 각 잡고 사냐?'라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말이다.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 어떻게 24시간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한참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며 잊어버리고자 하는 순간... 내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찾아왔다.


'마스크 쓴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구나...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옷을 바꿔 입어도 내 눈만 보고 사람들은 다 아는구나. 눈빛만 보면 난 알 수가 있어~라는 건모 오빠 노래가 정말이구나...'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내 눈으로 나의 많은 것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의 마음과 생각, 감정까지도 담아내는 나의 '눈'이 좀 더 괜찮은 사람 '이한나'를 담아내기 위해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선하게 살아가야 함을 가슴 깊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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