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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Nov 25. 2020

급똥과의 한판 승부

'망할 놈의 장 같으니라고!!!!'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앉아있다 일어나면 대부분 똑같은 말을 한다.

"너 또 똥 싸러 가지??"

커피숍에서 커피 한 모금만 마셨다 하면 내 장은 성급히 똥을 밀어내려 한다.


나는 정말 똥쟁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만 먹어도 똥을 싸고,

-쉬하러 갔다가도 똥을 싸고,

-엎드려서 핸드폰을 하면 똥을 싸고 싶고,

-아침에 쌌는데도 점심 먹고 싸고...


다행히 훌륭한 의사 선생님을 만난 덕에 내 장은 많이 고요해졌다.(빠른 대사는 막을 길이 없다고 했다.)

나 또한 나름 화장실을 갈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는 물도 커피도 마시는 것을 주의한다.

그럼에도 간혹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나타나는 급똥은 나를 미쳐버리게 한다.


국도를 타고 산속 깊숙이 숨어있는 연수원으로 강의를 가는 날이었다.

신호가 온다. 배는 미친 듯이 아파오고, 장 속에 모여있던 똥들이 "곧 나가요! 임박!"이라며 스물스물 밀어 나오기 시작했다.

침을 꼴깍 삼키며 나는 되뇐다.

'나는 참을 수 있어!'

'난 괜찮아. 40분만 더 가면 돼. 깨끗한 화장실에서 싸는 거야! 힘내자'


하지만 똥이 직장에 임박함을 느끼는 순간에는 입 밖으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참을 수 있어!!!"

"난 이겨낼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내 삶에 가장 긍정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안전한 주행을 위해 '장'과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느낀 나는 기름이 가득한 차를 주유소에 데려간다.

도착한 나는 창문을 내리고 아주 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2만 원이요."

이윽고 카드를 건네며 우아한 미소를 지은채 묻는다. 

"혹시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그렇게 화장실을 안내받은 나는 아주 태연한 모습으로, 급똥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느릿느릿 화장실로 걸어간다.

걸어가면서도 "다 왔어. 잘 참았어. 역시 넌 해냈어. 급하게 생각하지 마. 이제 다 온 거야!"라며 나를 달랜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급하게 화장실 문을 연 순간!!!

"우웨~~~웩!!!! 으~~~~더러워~~~"

끔찍한 화장실에 비위가 상했지만 나는 도닥거리며 스스로를 달랜다.

"이번 한 번 만이야. 그래 어쩔 수 없어."


일을 마친 그 순간...

내 장속에 나타난 평화사절단과 함께 화장실을 기꺼이 내어 준 주유소를 향해 '대박'을 기원한다.

그리고 '더러운 화장실은 갈 수 없어!'라고 외치던 과거 철없던 나와는 다른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는 나를 칭찬한다.

'사람이 급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야!!!'


더러운 똥 이야기. 짜증 나게 만드는 급똥...


하지만... 모든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숱한 급똥과의 전쟁을 통해...


더러운 화장실에서도 내 비위를 누를 줄 아는 재주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갖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기술을 연마하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장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차에 올라탈 때마다 얻는 성취감.

'나는 참았다', '견뎌냈다', '인내력 넘치는 항문 근육' 등 스스로를 향한 칭찬 세리머니를 통해 그 순간만큼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 같았고, 그날의 강의만큼은 왠지 자신 있었다.


나는 급똥으로 만들어진 나 자신을 향한 긍정과 신뢰의 경험을 남편에게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옆에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여보, 급똥이 꼭 나쁜 건 아니야. 급똥이 좋은 점도 분명 있었어... 어쩌고 저쩌고~~~~"


남편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너 너무 갖다 붙인 거 아니야? 무슨 똥으로 긍정을 만들어? 성취감까지??? 비약이 심하다. 이거 글로 쓰지 마. 이상해..."


하지만... 난 엊그저께 더러운 화장실에서도 "이 정도쯤이야!"라며 나를 이겨냈다.

심지어 똥을 참으며 외쳐댔던 "할 수 있어!!"라는 말은 나의 긍정의 언어 습관을 만들어냈을 것이라 예상한다.

급똥... 넌 100프로 원수는 아니었어...
세상에 100프로 나쁜 건 없나 봐...


똥이 준 선물을 모두와 나누고 싶지만... 똥이었기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버리고 싶지 않았던 글인지라 좋아하는 지인 몇 명에게만 글을 보여주었다.

그때 한 분이 글을 읽고 내게 카톡을 보냈다.


희귀성 난치 질환과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 그 외에도 수많은 질병으로 0.1초도 아프지 않은 순간이 없다고 말하는 작가님...

마약성 진통제를 시간 맞춰 먹으면서도 웃음을 띄고 말하는 작가님.

말이 천천히 느려지다 기절을 반복하면서도 내가 놀라진 않을까 걱정하는 작가님.


나는 똥으로 글을 썼지만...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고통으로 인해 짧은 시간 깨어있음에도 그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그녀.

아무리 인생이 양면이 있다지만 '장점'을 찾아내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 또한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며...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내가 보지 못한 '다른 면'을 찾아가야 함을 다시 한번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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