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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Dec 16. 2020

우리 부부에게 허락되지 않는 '불금'

'불금??? 누가 금요일을 불태우라고 했던가!!!
금요일 밤을 태운 자! 주말을 뺏기리니...


금요일을 불태운 자들의 결말은 아래 사진과 같다.

딸아이는 그만 좀 자라며 우리 모습을 찍었다.


토요일 일요일 내내 병든 닭처럼 밥만 먹으면 소파와 한 몸이 된 우리들.

그저 금요일이라고 불태워봤자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방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를 보는 것뿐인데... 우리는 격렬히 전사했다.


누군가는 우리 모습을 보며 '고작 새벽 한 시까지 봤다고 저렇게 잠만 자다니...'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물론 저질체력이 원인도 될 수 있겠지만 우리 부부가 피곤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유인즉슨 방송이 끝난 뒤 속상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냐?! 왜 떨어진 거야?? 솔직히 무대 장난 아니었잖아. 완전 멋있었는데!! 왜 떨어지냐고?!!"

"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 무대 완전 찢었는데... 진짜 너무 속상하다."

매번 우리가 응원하는 가수는 떨어지기에 TV를 볼 때도 서로를 향해 엄격한 눈빛을 날리며 말한다.

"야! 응원하지 마! 여보가 좋다고 하면 떨어지니까~ 좋아하지 마!!!"


그저 나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은 탈락한 가수의 노래를 실컷 듣고 또 듣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평소처럼 지난 무대를 아쉬워하며 노래를 듣고 있던 나를 향해 남편은 말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무대가 계속 떨어지는 거 보면... 사람들은 그런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하나 봐~ 우리가 대중적이지 않은 걸까?? 늙어서 그런가?"

"하긴~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거라 그런건가? 그 말 들으니까... 좀 그런 거 같기도 하네. 아 몰라... 떨어져서 짜증 나!"


그렇게 우리는 금요일 밤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밤 11시에 울릴 것 같지 않았던 내 핸드폰이 소리를 냈다.

 '카톡'

 "강사님! 0월 0일 00강의 가능하신지요?"

카톡을 보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거친 말들을 뱉어댔다.

"미친 거 아니야?  밤 11시에...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안녕하냐는 인사도 없이... 강의 가능하냐고?? 매너를 밥 말아먹었나?!!!"


각 맞춰 빨래를 게던 남편은 날 보며 무언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여보~ 우리 회사 댓상에(댓글상담실) 이런 글이 올라왔었다. 어떤 사람이 업무 관련 단체 채팅방에 업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인사부터 하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고 글을 올린 거야. 지금 여보 상황 같지??"

"당연한 거 아니야? 일도 일이지만... 사람이 일하는 거잖아. 서로 인사도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그 사람 말 한번 잘했네! 사람들이 말이야...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이어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정말 웃긴 건 뭔지 아냐? 나 진짜 깜놀했어. 댓글들을 보니까 엄청 반대가 많은 거야. '뭐 굳이 인사해야 되냐?~ 업무 관련 방인데 그냥 바로 업무 이야기하면 되지 뭐 어떠냐!' 이런 댓글이 더 많더라고... 신기하지?"

"진짜?? 진짜로?? 그런 댓글이 많았어?"

"어~~ 물론 지금 여보 상황이랑은 다르긴 하지.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연락한 거랑은... 근데 그때 내가 뭘 느꼈냐면... 내 생각이 다수에 있는 건 아니더라고... 당연히 남들도 나처럼 생각하겠으려니 했는데... 나랑 다른 의견이 훨씬 더 많은 걸 보니까 신기하더라."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빨리 다이어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적었다.

물론 다수에 있다는 것이 꼭 옳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다수'라는 말이 주는 느낌... 그 단어는 나에게 있어서 '보통의', '대중의', '일반적인'과 같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했었다.

나는 늘 내가 '다수가 있는 곳'에 서있다고 믿어왔다. 그랬기에 나는 지극히 보통이며 평범하고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스스로에게 '보편적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배려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기본이 안됨'이라 정의했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몰상식'이라 정의했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 능력치를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능력'이라 정의했다.


왜? 나는 보편적이니까! 내 기준 역시 보편적이니까!


그랬다. 내 생각은 많은 이들도 수긍할 만한 것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 놓고선 강의할 때면 선한 미소를 잔뜩 지으며 청중을 향해 말한다.

"우리가 오늘 매너를 배우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혹시라도 오늘 배운 매너를 기준으로 '저 사람 매너가 없네! 매너 좀 배워야겠어! 이 강의 추천해야겠는걸~'과 같은 말을 하며 상대를 향해 손가락질하게 된다면 오늘 교육은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의 지식이 타인을 평가하는 것에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어쩌고저쩌고~~"


말만 번지르르했다.

나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남에게 피해 안주고 선량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이런 쓸데없는 자부심은 나를 지독히 괜찮은 사람 다시 말해 보편적 인간으로 견고하게 만들어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문득 친구가 말할 때마다 추임새로 쓰는 한 문장이 생각난다.

"야~ 내가 틀린 말은 안 하잖아!"

나는 친구에게 브런치를 빌어 말해본다.

"야! 나도 틀린 말 안 하는 줄 알았어! 내가 지극히 옳은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나한테만 안 틀린 거더라!!!"


나는 조용히 카톡 창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글을 써나간다.


당신에게 매너가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인사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나만의 배려를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오죽 급하면 11시에 카톡을 보냈을까?'라는 공감하는 마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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