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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Dec 31. 2020

'돈워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친구들 중에 저만 학생이에요. 애들은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 벌고 있는데 저는 늦게 입학을 해서... 제가 너무 늦은 거 같아요. 한심하기도 하고요. 엄마도 저만 보면 자꾸 늦었다고 빨리 취업 준비하라고 닦달하시고... 국시 준비도 너무 힘들고... 정말 이러다 미칠 거 같아서 고른 사진이에요."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을 골랐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졸업을 앞두고 국시를 준비하며 머리가 터질 거 같은 고통,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 졸업 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괜히 카드를 들고 왔나?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하다 6개월 만에 만난 학생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귀에는 오로지 괴로움에 신음하는 소리만 들려오니 수업 시작 전부터 영~ 불편해졌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힘들었기에 잠시 고민을 했다.


'좋다! 이걸 보여줘야지!'

나는 핸드폰을 꺼내 아주 예쁘고, 꽤 멋진 커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여자 이쁘지? 엄청 이쁘지 않니???"

학생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빤히 사진을 쳐다보다가 "에이~~~ 교수님이잖아요!"라며 웃어댄다.


"나 이때 23살이었어. 이거 신혼여행 사진이야. 귀엽지? 귀엽잖아~"

아이들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 23살에 한 학기 남겨두고 결혼했어. 나도 졸업사진까지 찍었는데.... 졸업을 못했네. 친구들은 다 졸업하고, 취업하고... 난 뭐했게? 그래~ 난 애를 낳았어. 아줌마가 돼도 너무 놀고 싶더라.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고 싶고...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내가 뭐 들고 갔는 줄 알아? 맞춰봐~~~  가방에 분유랑 젖병, 기저귀를 챙겨서 애를 업고 친구를 만나러 갔어. 나는 애를 업고 다녀서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 친구들은 사회물 먹고 얼마나 이뻐졌는지 사람이 달라 보이더라. 친구들은 회사 이야기도 하고, 상사 흉도 보고 그러는데... 나는 낄 틈이 없었어. 아이는 자꾸 울어대니 친구들 대화에 내가 방해되는 거 같아서 도저히 못 있겠더라고... 나 집에 와서 엄청 울었다. 나는 언제 졸업할 수 있을까? 나는 취업이나 할 수 있을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울면서 얼마나 괴로웠나 몰라..."


아이들은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너희들 마음 알아. 남들보다 늦어서 불안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또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 힘들지?

근데... 정말 늦은 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국시 떨어진다고 인생 두 동강이 나듯 망하지도 않아. 나도 동기 중에 국시 나만 떨어졌어. 그것도 두 번이나... 근데 국시 떨어지니까 이렇게 너희들도 만나잖아. 또 다른 살 길이 열리기도 하고 그래. 늦은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면 다 비슷해지더라~ 얘들아!!! 힘 좀 내봐!!!"


아이들이 내 말을 듣고 힘을 낼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맘때쯤 '괜찮다고', '아이 키우고 해도 안 늦는다고' 옆에서 수천번 말해줬지만 귀에 씨알도 안 먹혔으니...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얘들아~~ 내가 이렇게 말해도 너네 불안해할 거야.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그렇게 계속 걱정하다가 가끔 나를 떠올려!!! '우리 교수님은 내 나이에 애 키우고 있었다고 했지? 근데 괜찮다고 했지?' 요정도만 기억해라!!"


아이들은 나를 향해 웃는다. 귀여운 것들...

아이들은 모르겠지... 나이 먹은 나도 여전히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다는 것을...

아이들은 모르겠지... 나이 먹은 나도 여전히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브런치를 통해 비밀을 털어나야겠다.

"얘들아... 국시 붙어도 하루만 지나면 취업 걱정에 불안할 거야!

취업하면 안 불안할 거 같지? 취업해도 또 불안할 거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끝이 없을 거야.

90%가 일어나지도 않을 것에 대한 걱정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수천번을 들어도 우린 계속 걱정할 거야."


그토록 불안하다는 것, 그토록 걱정한다는 것.

이것 또한 우리가 각자의 삶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의 불안과 걱정 역시 내 삶이 더 멋진 인생이 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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