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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an 11. 2021

내가 던진 부메랑!

"언니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안 좋은데?"

수화기 너머로 휘몰아치는 감정을 꾸역꾸역 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애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겐 그냥 언니가 아니다. 요리하다가 갈피를 못 잡거나, 아이가 아파 당황스러울 때나, 길을 못 찾아 헤맬 때면 바로 전화를 하고 싶은 나보다 7살이나 많은 큰언니였다.

막내인 나와 다르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큰언니가 많이 힘들었는지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냥... 별건 아닌데... 엄마 노릇하기 너무 힘들다. 고3이라 그러려니 하고... 사춘기라 이해하려 하는데... 쉽지가 않아. 나도 상처가 되네... 걔가 별 뜻 없이 툭 던진 말에 나도 너무 속상하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언니 딸이 지금 한참 예민할 때'라며 조카의 편을 들었다가도, '고3이 벼슬이냐? 언니도 가서 한바탕 해버려!'라는 말을 하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박쥐 같은 위로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나 때문에 많이 울었겠지?'


나는 어렸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성인이 돼서도 엄마를 울렸기에 아주 선명하게 기억할 수가 있다.

대학교 1학년 재학 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마를 따라 새벽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기도를 하겠다는 굳센 의지와는 다르게 따뜻한 의자에 앉자마자 몸은 점점 기울어졌고 결국 의자에 반쯤 누워 기절한 사람처럼 잠이 들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잠깐잠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처럼 기도해보려 몸부림쳤으나 결과는 '잠'의 승리였다. 그렇게 졸린 와중에도 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내 뒤에 앉았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다. '나도 쟤처럼 기도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졸리지? 아~ 난 교회에 왜 온 걸까?'라는 생각이 가득할 무렵 엄마는 집에 가자며 나를 흔들어댔다.

엄마는 교회 문을 나와 "한나야~ 너 뒤에 있는 애 말이야. 너 걔 아니?"라고 차분하게 물었고,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마를 향해 폭탄을 날렸다.

"아니~왜 그런 걸 묻는대? 내가 알게 뭐야? 마음먹고 교회 나왔는데 왜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데?!..."

그리고는 엄마를 버려둔 채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가버렸다.

 '나도 오늘 기도하려고 했는데... 새벽부터 다 망쳐서 열 받아 죽겠다고!!! 내 뒤에 있는 애 보면서 내가 얼마나 싫어졌는데!!! 하필 왜 걔 이야길 하냐고!! 진짜 기분 나빠!!!!'라며 내 감정에만 취한 채 씩씩거리며 말이다.

기분 좋게 기도하고 갑작스러운 폭탄에 만신창이가 된 엄마는 집에 돌아와 "한나야. 엄마가 뭘 잘못했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엄마도 너무 속상하고....." 라며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20대... 성인 같지 않던, 성숙하지 않던 많은 기억들...

'너 때문이라고!'

'내 기분을 나쁘게 했다고'

'짜증 낼 만한 일이었다고'

'너는 욕먹어도 싸다고' 믿어왔던 시간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확고하게 믿어왔던 순간들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내가 왜 그랬지?"

"진짜 내가 미친년이었구나..."

"와... 더럽게 싸가지가 없었네."

"철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있나?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어..."


과거에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며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고 타인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시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게 찾아왔다. 일찍이라도 깨달았다면 바로 사과라도 했을 텐데...

'나를 향한 절대적 믿음'이 나를 철저하게 변호했기에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깨닫지 못한 수많은 사건 중 한 가지가 엄마를 울렸던 시간이었는데... 그 기억은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지인들의 부모님 상으로 장례식장에 조문을 갈 때마다 엄마가 울던 모습이 마치 세트처럼 내 머릿속에 딸려왔으니 말이다.


상처를 받은 엄마만 아플 줄 알았는데... 상처를 준 나도 오랫동안 아팠다.

상처를 받은 친구만 아플 줄 알았는데... 상처를 준 나도 오랫동안 아팠다.


20년이 지난 이제야 <어른을 위한 동화_정호승 저>'상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책에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바빴던 이 서서히 아픔을 호소하며 빨간 사과에게 질문을 한다.

"사과야, 내가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사과야. 미안하지만, 얘기 좀 해보렴. 내가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사과는 말없이 한참 동안 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네가 상처가 많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상처가 널 이제 아프게 하는 거야."

칼은 사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야. 나는 남한테 상처를 주었지, 내가 상처를 받은 일은 없어."
 그때 사과는 천천히 칼에게 이야기한다.

"칼아... 남한테 준 상처가 바로 너의 상처야. 넌 칼이자 곧 상처란 말이야."  


칼이 도대체 무슨 상처가 있다는 건지 말도 안 된다며 덮어버렸던 책이었는데...

마흔이 되어서야 사과가 말해 주었던 '칼의 상처'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딸아이가 나에게 칼이 되어 상처를 주었을 때... 아이가 나처럼 아파하지 않았으면 하기에 나는 딸아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아까 엄마한테 왜 그랬어? 무슨 속상한 일 있었어?"

엄마한테 너무 오랫동안 미안해하며 칼이 입는 상처를 갖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때때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칼이 되어 나를 상처 입힐 때도 있다.

'확 F를 줘버릴까!!'

'아휴 저 싸가지!!'

'눈길도 안 줄 거야!' 했다가도...

수년 뒤에 나처럼 후회할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기에 나는 또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내본다.

'나는 괜찮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졸업해서도 꽃길만 걸으라고...'

아이들은 내 맘을 아는지 죄송한 마음을 담아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어린 시절 안하무인으로 살았던 것에 대한 대가인가?

나는 지난 잘못에 대한 값을 치르듯 갑자기 찾아온 매서운 칼날로 인해 마음이 부서지고 산산조각이 날 때가 있다. 물론 나부터 살아야 하기에 나를 챙기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가 받은 상처에 서서히 살이 차오를 때쯤이면...

지난날의 나처럼 후회와 괴로움으로 시간을 보낼 상대를 떠올려 보려 한다.


상처에 허덕이고 있을 칼에게도
손 내밀 수 있는 40대 아줌마가 되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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