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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Feb 22. 2021

'친절'하고 싶지만 '불친절'한 엄마

오전에 일찌감치 일을 마친 나는 오랜만에 언니와 카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나야 뭐 먹을래?"라는 언니의 질문에 나는 메뉴판을 빠르게 스캔하며 "1번 세트메뉴"를 외쳤다. 허기가 채워져야 말이 나오는 나는 접시에 바닥이 보일 때쯤 수다의 장을 열어댔다.


"언니 내가 아까 운전하면서 뭘 봤는지 알아? 세상에!!! 닭 차를 봤어.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야. 닭들이 좁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몸도 못 피고 죽음의 현장으로 가고 있는 닭들이 얼마나 안쓰러웠나 몰라~ 나 이제 진짜 닭고기도 줄여보려고! 정말 육식을 줄여야겠어!"


언니는 결의에 찬 내 모습이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한마디를 한다.

"야!!!! 네가 지금 먹고 있는 게 닭이거든!!!!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뭐라고? 이게 닭이야? 아!! 닭 가슴살이지~ 영어로 브레스트 파니니 쓰여있어서 닭이란 생각도 못하고 시켰네.  배고파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 정말 좀 전까지만 해도 닭고기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왔는데... 사람 바뀌기 참 힘들고만.... "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요리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육식을 줄여야겠다.'라는 생각은 운전하다가 닭 차를 보며 순간적으로 감정에 이끌린 것이기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쳐도... 나는 왜... 매번 마음먹은 일들을 지켜낸 적이 없을까?


그랬다. 나는 '새해 첫 시작, 매달 첫 시작, 매주 첫 시작'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과 각오를 하지만... 하루 이틀만 지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무색해지기 일쑤다.

더불어 2021년 '40살'이 되는 특별한 해라며 올 한 해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집안 곳곳에 붙여놓은 다짐들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딸아이와 남편은 그 종이를 볼 때마다 나를 놀려댔다.

"엄마~~ 친절 앞에 '불'자 써야 되는 거 아냐?"

"여보~ 혹시 냉장고에 붙여놓은 '친절'이 여보 자신한테만 '친절'하자는 의미야?"

 

곳곳에 붙여두면 조금이라도 의식하면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어느덧 '친절'이라는 문구는 냉장고에 붙은 치킨 메뉴판처럼 아무 의미 없는 종이가 돼버렸다.(치킨 메뉴판은 야식 할 때 쓸모라도 있지... 쩝)


'나는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사람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넓은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려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앞에서 내 고개는 좌우로 움직여댄다.

아마도 지금의 예측은 나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에 내 고개는 위아래로 흔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나 보다.


세상에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넘쳐나지만... 강력한 나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임을 알기에 오늘도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채 기도를 한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니 제발 당신의 힘으로 도와주기를...'


나는 기도를 하고 아이에게 조근조근 이야기해 본다.

"엄마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기도했어. 엄마도 다민이한테 화 안 내고 다민이 마음 알아주는 그런 엄마 되게 해 달라고..."

아이는 빙긋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넨다.

"땡큐 베리 머치~ 근데 엄마가 공부도 안 하고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엄마도 노력을 해야지~! 좋은 엄마 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면 쓰나~~!!"


내 마음에 찬물을 휙 끼얹는 딸아이를 째려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기도 덕인지 잠시 두 눈을 지그시 감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아이에 말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현재의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하고 있나 보다.

과거 어떤 수업에서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의아해하며 귀를 쫑긋거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는 지식을 담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깨우치는 '가슴'까지의 여행이 먼 여행이며, 이보다 더 먼 여행은 '가슴'에서 느끼고 깨우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손과 발'까지의 여행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 멀고 먼 여행에 어디쯤 멈춰 있는 것일까?

'손과 발'을 향하는 티켓을 잃어버려 '가슴'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손'에 잠시도 머무르지 못한 채 다시 '머리'로 돌아와 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손과 발'에 머무는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원한다.

또다시 무너질 나의 다짐인 것을 알지만... 내가 가야 할 종착지인 '손과 발'을 계속 기억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까워지지 않을까?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온즉 여러 번 가봤던 길이니 좀 더 쉽게 찾아갈 수 있진 않을까?


오랜만에 글을 쓰며 다시 나를 도닥여본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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