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TV 드라마에 속도위반 장면을 보거나,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거나, 본인 생일일 때면 항상 똑같은 질문을 한다.
엄마, 아빠 속도위반했어?
그때마다 남편과 나는 정말 어이가 없다. 젊은 엄마, 아빠라는 이유로 이 질문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짜증과 정색 섞인 목소리로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
뜬금없이 그건 왜 자꾸 묻는데?
또는 “엄마 공부하니까 조용해라!”라는 말로 답변할 값어치 조차 없다는 것을 누누이 알려준다.
수그러들까 했는데 아이는 어제도 “엄마 솔직히 말해봐. 난 괜찮아. 속도위반한 거 맞지?”
대체 왜 그리도 물어볼까 싶어... “근데 왜 자꾸 물어봐?”
“친구들이 엄마 아빠 나이 말하면 백퍼 속도위반이래.”
남편은 답답한 마음을 꺼내서라도 보여주고 싶은지 “아빠가 엄마 너무너무 좋아서, 빨리 장가가고 싶어서 결혼 일찍 한 거라니까...!!!” 그 말을 하고는 꼭 내 볼에 뽀뽀를 한다.
그럼 아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늘 그 순간을 넘겨왔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아이는 영어를 잘하지만, 그 쉽고도 쉬운 산수 계산을 어려워한다. 우리 결혼기념일과 본인 생일이 불과 5개월 차이밖에 안 나는데도 눈을 치켜뜨고 계산하다가 포기한다.
그런데 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집에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질문의 빈도가 매우 잦아졌다. 피자를 먹다 물어보고, 빵빠레를 들고 방에 들어가면서도 물어본다.
나는 거짓말하는 것에 지쳐 “피자 그만 먹고 싶냐? 빵빠레 그만 먹을래?”라고 되묻는다.
아이는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나는 대학교 4학년 1학기 재학 중 아이를 임신했다.
5월 정도에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병원에 갔던 친구는 ‘이제 어떡하냐’며 너무 걱정했지만, 난 똑똑히 기억이 난다.
내 안에 아가가 있대. 너무 신기하다. 나 너무 행복해!
의사 선생님은 아직 초기라 위험하다며, 2주 뒤에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 길로 남자 친구가 있는 대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안에 ‘우리의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제대하고 복학한 3학년 남자 친구는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이후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고민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교를 다녔다. 임신한 누구나처럼 너무 힘들었고, 정말 배고팠다.
어느 날은 키위가 너무 먹고 싶어, 장에 가는 엄마에게 키위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장에 다녀올 엄마만을 기다렸는데 봉투에는 '토마토'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엄마 키위는??"
엄마는 무덤덤하게 "키위 없어서 토마토 사 왔어. 그거나 먹어."
나는 토마토 봉지를 들고 대성통곡을 했다. "내가 키위 먹고 싶다고 했잖아. 나 토마토 안 좋아하는 거 몰라?"
미친 듯이 소리 내며 우는 나에게 엄마는
아이고... 임신한 여자처럼 왜 저런대?
내 마음에 훅 잽을 날린 엄마의 말에 나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버렸다.
왜 그리도 배가 고팠을까?
학교를 마치고 대학로 거리를 지날 때면 '훔쳐서라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배고픔'이라는 본능 앞에 졌다.
가난했던 대학 시절, 지금에라도 용서를 구해야 하겠지만,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고 그 돈을 보태 햄버거를 사 먹었다.
늘 고기가 먹고 싶던 시절, 참치캔 하나를 사 밥에 쓱쓱 비벼먹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남자 친구는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아끼고 아낀 용돈으로 고기를 사주곤 했다.
고기를 구우며 내가 먹는 것을 바라보던 남자 친구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이 날 듯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갔다.
이제 우리는 말해야 될 때가 되었다.
글에 적고 싶지 않을 만큼 눈물 흘리며, 마음 아팠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2004년 8월 14일에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는 “이 더운 날 결혼하는 애들은 다 사고 쳐서 결혼한 애들이야!”라고 말씀하셨고, 정말 폭염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만큼 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아주 낡고, 허름한 곳에서 둘이 살게 되었다.
막달이 될 때까지 배를 감싸 쥐고 날을 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도 있었다.
부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나날들이겠지만, 난 한 번쯤은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때 나름의 행복이 존재했다.
2000원으로 장보기에 도전하며 밥을 차려 서로를 마주 보고 먹던 그 시절.
소시지 하나를 두고 "여보가 먹어"라며 건네주던 그 마음.
내가 이 글을 발행하는 순간 나의 구독자인 내 딸은 글을 볼 것이다.
남편은 20살에 알려주자고 했지만, 현재 많은 시간을 함께 있는 딸아이의 잦은 질문에 10년은 더 늙을 거 같고, 매일 나와 싸우며 "날 사랑하기는 해? 나 왜 낳았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답변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
“다민아~ 글 다 읽었지? 엄마, 아빠 속도위반했어.
하지만 기다리지 않은 아이, 불쑥 찾아왔던 아이가 아니라 너의 심장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너란 아이가 너무나도 궁금했고,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너를 손꼽아 기다렸어. 돈은 없어도 네가 처음 입는 옷만큼은 새 옷을 사주고 싶어 아빠랑 엄마랑 백화점에서 너의 옷을 골랐고, 꼭 이 옷을 입혀달라고 부탁했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네가 응애하며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는 너에게 푹 빠져버렸지.
다민아 엄마 글 보고 속도위반했네~ 위반했어 이런 말 하면 정말 한 대 맞을 거니까 입 다물고 있어!
그리고 아빠와 엄마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또 속도위반할 거야.
그래야 널 만날 수 있으니까..."
추가로 지금의 내 마음을 남기고 싶다.
아이는 글이 완성되면 꼭 내 무릎에 누워 "엄마가 읽어줘"라고 말한다. 오늘은 직접 봤으면 했지만, 아이의 말에 용기를 내고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본다.
덤덤하게 읽으려고 했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 와락 쏟아지고 목이 메여 글을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아이 역시 내 무릎에 고개를 묻고 울고 있었다.
글을 다 읽은 뒤에는 "사랑해"라고 속삭이며 아이를 쓰다듬었고, 아이는 새빨간 눈으로 웃으며 "거짓말쟁이"라고 하고는 방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는 방에서 큰소리로 "오늘은 고기 먹자!" 라고 외친다.
한 가지 숙제를 브런치를 통해 했다. 오늘 숙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