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Wreckx, 신해경, 그리고 Summer Soul
B-Side: The less important side of a single
음악을 듣다 보면 종종 ‘타이틀곡보다 더 내 마음에 드는’ 곡들을 만나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코너 ‘B-Side’는 이렇게 다분히 사적인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출발합니다.
‘B-Side(비 사이드)’는 ‘A-Side’의 반대면, 일반적으로 7인치 싱글 LP 레코드의 뒷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A-Side에는 흔히 말하는 ‘타이틀곡’이, B-Side에는 정규앨범에 수록하기 모호한 곡이나 커버, 라이브, 혹은 리믹스 등이 부가적으로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코너 ‘B-Side’는 단어 본래의 의미보다 ‘A-Side의 바깥’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둡니다. 비록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좋은 노래들, 단지 ‘수록곡’이라는 한 마디로 묻어두기엔 아까운 노래들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캐내어 공유하려 합니다.
DJ Wreckx (디제이렉스) / Represent The Real Hip Hop
From the album [MPC with $7.99 Per Month] (2020.06.23)
한국 힙합, 소위 ‘국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시작점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름이 ‘마스터 플랜’(MP)이다. 라이브 클럽으로 시작해 이윽고 레이블로 변모하며 풍성한 디스코그래피를 쌓았던 이 브랜드는 ‘가리온’, ‘주석’, ‘DJ 소울스케이프’, ‘바스코’ (현 ‘빌 스택스’), ‘다크루’, ‘원썬’, ‘MC 성천’, ‘일스킬즈’, ‘인피닛 플로우’ 등 무수한 아티스트들을 배출하며 국힙 역사의 초창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코 빼놓아선 안 될 인물이 있으니 바로 ‘DJ 렉스’(DJ Wreckx)다.
본래 비보이로 힙합과 연을 맺었으나 DJ로 전향했고, 이후 긴 시간을 한국의 독보적인 힙합 DJ로 군림한 그는 당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트 저글링(두 장의 레코드판을 동시에 플레이하며 새로운 리듬 패턴을 창조하는 기술)을 본격적으로 구사하는 DJ였다. 더불어 비트메이커로서도 여러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겼는데 특히 컴필레이션 [MP Hip Hop 2000 超(초)]에 수록된 ‘태어나서 처음’ 등을 통해 선보인, 우리말 구연동화 레코드에서 소스를 커팅해 재배열하는 독창적인 샘플링 스타일은 그의 프로덕션을 대표하는 상징적 요소였다. (이 작법은 ‘넉살 / 악당출현’ 등 최근의 힙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앨범 [MPC with $7.99 Per Month]는 2010년대 초반 ‘MC 메타’와의 활동 이후 미국행을 택하며 사실상 국내에서의 음악 활동을 중단했던 DJ 렉스가 한국에 돌아와 두 번째로 발표하는, 그리고 앨범 단위로서는 처음으로 발표하는 작품이다. 래퍼 ‘Sikboy’, ‘Gfu’의 지원사격을 받았던 컴백 싱글 ‘Twist My Fingers’와 달리 커팅된 보이스 샘플 외에 일절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열 개의 비트를 담았다. 컨셉트는 앨범의 제목 그대로다. 샘플 구독 서비스인 ‘스플라이스(Splice)’에서 월 8달러 남짓을 지불하면 사용 가능한 비교적 ‘저렴한’(?) 소스들을 힙합의 대표적인 명기인 드럼머신 MPC로 가공해 어떤 퀄리티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실험하고 또 보여주는 것. 이것은 어쩌면 스플라이스에서 구입한 소스들을 대충 배열해 만든 비슷비슷한 비트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비슷비슷한 타입비트 셀러들이 넘쳐나는 현시대에 씬의 큰형님이 던지는 어떤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맥락에서 앨범의 첫 곡 ‘Represent The Real Hip Hop’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 힙합이라는 문화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의 표현인 동시에 씬의 후배들에게 “진짜가 돌아왔다”고 선언하는 “찐” 국힙 큰형님의 묵직한 일성으로 다가온다.
신해경 / 그 후
From the album [속꿈, 속꿈] (2020.06.16)
‘신해경’의 첫 EP [나의 가역반응]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2017년 초입의, 마치 작은 신드롬과도 같았던 그때의 분위기를 잠시 떠올려본다. 음악 팬들도, 평단도, 모두 열광하며 반응했고 덕분에 신해경과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 소식들로 한동안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음악 좀 듣는다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한 번씩은 했고, 그들 중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도 곧잘 ‘모두 주세요’를 듣곤 했던, 그런 열기가 꽤나 오래 이어졌던, 그런 2017년이었다. 당연히 나 역시도 이 아름다운 팝 앨범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마음 속에 맺힌 감상들을 글로 옮겨 적는 작업도 했다.
이후 지난 3년간 드문드문 몇 개의 싱글을 발표하긴 했지만 다소 느릿느릿, 조용하게 행보를 이어오던 신해경이 최근에 첫 번째 정규앨범 [속꿈, 속꿈]을 발표했다. 극적인 변화의 놀라움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반가움이 앞서는 이 작품 속엔 내가 이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몇몇 이유들이 여전하다. 신해경은 여전히 좋은 선율을 지으며, 여전히 섬세하고 고운 노랫말을 쓴다. 그렇게 만들어낸 우울하게 예쁜 멜로디와 말들을 공중에 흩뿌려진 듯 퍼지고 부유하는 여러 겹의 소리들 위에 얹어 ‘노래’로 실체화하고 세상과 조우한다. 이 여전함들이 반갑다.
[속꿈, 속꿈]을 가만히 듣다 보면 이 작품이 전작 [나의 가역반응]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음악의 결뿐 아니라 가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감상하면 전작의 화자였던 ‘나’가 고스란히 이 작품으로 옮겨왔음을 감지할 수 있으며 여기서 소개하는 노래 ‘그 후’는 이를 확신케 하는, 가장 명백한 증거다. ‘그 후’의 전반부에서 불쑥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 후반부의 ‘너의 그 아늑함, 그 아련함, 기억 속에 흐려지네’ 등의 노랫말은 모두 [나의 가역반응]의 마지막 곡이었던 ‘화학평형’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앨범의 첫 곡인 ‘회상’ 역시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한다) 이 노래는 그렇게 [나의 가역반응] 속 ‘나’가 [속꿈, 속꿈]으로 무대를 옮겨 다시금 애달픈 노래를 부르게 한다. 꿈결처럼 아득하고, 꿈결처럼 결국 손에 닿지 않는, 다만 그럼에도 애타게 애타게 갈구할 수밖에 없는 ‘그대’를 향해서.
Summer Soul / 36
From the EP [NEW CLOTHES] (2020.06.11)
한국 인디 음악 씬의 비교적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씬의 일원, 혹은 주변인으로 존재하며 그 안팎을 경험하고 다양한 – 세대, 장르, 지역의 – 음악가들과 함께 일해왔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름의 경험을 축적한 입장에서 최근의 젊은 음악가들의 행보, 그들이 일하는 모습, 그들이 만들어내는 흐름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현재의 젊은 인디펜던트 음악가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과거의 음악가들보다 훨씬 영리해졌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바라보는 이들은 단지 음악을 만들 뿐 아니라 음악이 상품이 되어 리스너들에게 소비되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직접 기획하고 해내는 존재들이다. 본인들 스스로를 위한 기획자, 프로듀서,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며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고 음악을 마케팅하기 위한 전략을 스스로 수립한다. 이를 위해 외부와의 협업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위한 조율마저 손수 한다. 그렇다, 2020년대의 인디펜던트 음악가는 ‘비즈니스’를 한다. 독립적인 음악가인 동시에 독립적인 사업가이기도 한 셈이다.
‘Summer Soul’(썸머소울)은 이에 대한 모범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빠르게 디스코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으며 커리어를 확장하고 있는 그녀는 본인 스스로를 ‘DIY 아이돌’이라 칭한 것처럼 그야말로 자신의 활동의 모든 부분을 A부터 Z까지 일일이 직접 케어하며 ‘Summer Soul’이란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면모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 관능적인 알앤비 스타일의 – 음악들로 돌아온 신작인 [New Clothes]에서도 여전하다. 각 트랙마다 적절한 음악가들과의 협업,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는 작품 콘셉트를 십분 반영한 스타일링, 완전히 바뀐 음악의 스타일에 걸맞게 화려한 의상과 더불어 댄스팀을 동반한 안무까지 선보이는 타이틀곡 ‘틴더’의 뮤직비디오까지 다양한 영역을 모두 직접 기획하고 진두지휘하는 그녀의 모습은 ‘인디펜던트’ 그 자체. 이 미니앨범의 마지막 트랙은 ‘36’은 프로듀서 ‘Zodiac’(조디악)과 함께한, 관능적인 무드의 알앤비 곡으로 아마 이번 작품에서의 과감한 변화를 가장 선명히 체감하게 하는 곡이 아닐까 싶다. 서늘하고, 끈적하고, 또 축축한 분위기와 질감으로 채색된 사운드 프로덕션과 썸머의 음색은 무척이나 섹시하고 또 도발적인 무드를 만들어낸다.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팝을 주로 불러왔던 그녀가 부르는 21세기 버전의 슬로우 잼(slow jam)이다.
Editor / 김설탕SUGARKiM